한국 vs 폴란드(유럽)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2년 넘게 찾아가지 못한 한국.
마침 최근에야 격리 해제가 된 덕분에 한국을 무사히 다녀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때가 5월 하순이었는데, 이미 28-3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였다. 폴란드보다 습하고 더운 날씨라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공항을 내리자마자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 뜨거운 더위에 실외에서도 열심히(?)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 가끔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지만, 길거리에 지나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끼고 있어서, 나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 더위를 많이 타는 데다가, 습한 무더위에 마스크로 숨쉬기를 하려니 꽤나 답답했고 이 때문인지 불쾌지수가 더 오르는 듯했다.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더욱이 습한 날씨로 끼고 있는 안경에는 김서림까지.. 불편한데도 너도나도 다 끼고 있어서 벗기가 무안할 정도였다.
5월 초부터 야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모두가 철저하게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폴란드(유럽)의 경우를 살펴보자.
코로나19 유행 초기 한국을 비롯 아시아권은 팬데믹 내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였다. 반면에, 유럽 대부분의 국가나 지역에서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찬반론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뒤늦게서야 마스크 착용을 의무 시행한 곳이 많았다. 또 마스크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팬데믹 초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어려웠다는 해석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많은 유럽인들이 마스크 착용을 기피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폴란드이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신이 보급되기 전에, 코로나 감염 확산이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높은 사망률을 기록할 때에도,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단속하는 경찰, 군인들이 거리에 다닐 정도였다.
착용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냥 봐도 대충 낀 것 같은 모습, 또는 마지못해 입만 살짝 가린 듯한 사람들.
(정확한 착용법을 몰라서여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ㅎ)
기차, 버스,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마트, 백화점 등을 들를 때면, 단속이 없는 경우에는 눈치껏 마스크를 벗는다던지 하는 사람들이 항상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ㅎ
올해 상반기에 들어오면서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병원, 보건소 등의 몇몇 의료기관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넘어갔다. 이를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 지금은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을 보기가 매우 힘들 정도이다.
지난달 서울에서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폴란드에 도착했구나!’라고 실감했던 것은 바로 공항 내에 마스크 없이 활보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벗으니 시원하고 편해서 너무 좋지만, ‘이렇게 계속 벗고 다녀도 될까?’ ‘이대로 안전할까? 혹시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어떡하지?’ 하며 매일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생각해보면 불편하기는 했지만 어디서든 마스크를 착용하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안전을 위협하는 듯한 불안감은 없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음에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유럽의 모습이다.
이렇게 마스크를 놓고도 행동 양상이 너무나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폴란드(유럽):
최근 수년간 온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테러에 대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유럽의 주요 도시가 테러 온상으로 전락하면서 무차별 테러의 공포에 휩싸였던 유럽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배경으로 마스크 착용처럼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혐오감을 조장하기도 하고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복면금지법이 있을 정도이다. 또 한편으로 평소에 마스크를 낀 사람에 대해 ‘감염 리스크가 큰 환자’인 것으로 받아들여 자리를 피하거나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마스크의 효능을 모르는 것도 큰 이유인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심각한 수준의 전염병을 겪은 적이 없는 유럽이기에, 집단적인 감염예방 수칙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마스크 수칙과 손 씻기 수칙의 생활화로 일반 독감 감염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의 선택과 자율결정권이 비교적 존중되는 유럽의 개인주의 사회 분위기가 한몫하는 듯하다. 그것이 타인이듯, 사회적인 시스템이듯, 유럽인들은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으려는 개인주의 경향이 강하다.
vs.
한국:
마스크 수칙이 완화되었음에도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해석이 다양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큰 진통을 앓았던 몇 번의 유행성 바이러스, 또 대기오염까지 마스크 착용이 아예 습관화가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이면에는 남의 눈치를 잘 보는 국민성, 민낯 보이기를 부끄러워하는 국민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그동안 사스(2002년 SARS -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2012년 MERS - 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을 수차례 겪으면서,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해 유럽인들보다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가장 손쉬운 생활수칙으로서 마스크 착용의 효능을 제대로 인식하고 마스크가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본다. 지금과 같이 마스크 착용이 더 이상 의무사항이 아닌 마당에, 다들 자신의 편의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도 있다. 누구라도 체험해봤듯이 마스크를 끼다가 벗으면 정말 날아갈 듯 시원하고 숨쉬기가 편해진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마스크 착용의 의미는, 끝날 줄 모르는 팬데믹에 나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타인의 안전도 함께 배려하려는 의지와 노력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사회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일종의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아가 공동체 사회의 안전과 상호 보호를 위한 의미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 점이 개인의 편의와 자율을 중시하는 유럽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자율과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마스크 착용은 정부에 의한 의무화 여부를 떠나서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서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의지가 드러난 무언의 약속이다.
역대 어떤 전염병보다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 앞으로 이와 비슷한 유형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인류를 덮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고한다.
한국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율적인 선택과 의지의 표현으로 마스크를 계속 끼지 않을까? 즉, 마스크 착용이 강제성이 있는 규칙으로서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일종의 매너와 에티켓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