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바르샤바인들의 텃새
방학이나 주말을 낀 연휴가 시작되는 때이면 바르샤바 시내는 놀라울 정도로 한가해진다.
갑자기 텅 빈 느낌이 드는 도시의 모습이 평소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폴란드 친구에게 오래전에 이런 점을 물은 적이 있다.
„그냥 ‘스워익’들이 떠나서 그런 거야.”
„뭐? 스워익?”
이 ‘스워익’ 이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흥미롭게 여겨졌다.
잼이나 절임용 병을 뜻하는 단어가 바로 폴란드어로 słoik (한국어 발음: 스워익) 이다.
앞서 올렸던 브런치 글에서 폴란드의 절임문화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스워익’은 폴란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친숙한 소재이며
집집마다 몇개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단어가 일종의 은유적인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전세계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일테지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는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
이들 대부분이 학업을 위해
또는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좋은 대학교와, 중앙정부, 명성있는 기업들,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수도 바르샤바는 지방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지방에서 올라와 바르샤바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스워익’ 이라고 한다.
이들은 병에 담아온 음식으로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힘겨운 타지생활을 달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 절임병들은 물가가 비싼 수도에서
생활을 연명하는데 고마운 보탬이 되기도 할 것이다.
바르샤바에서 자신들의 꿈을 향해 달리는
스워익들을 소재로 유머 섞인 풍자적인 어조로 풀어낸 소설도 있다.
소설명: Zachłanni (한국어 발음: 자흐와니 | 의미: 탐욕자들)
작가명: Magdalena Żelazowska
스워익과는 반대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자라난 토박이 바르샤바인을
Warszawiaka (한국어 발음: 바르샤비아카) 라고 한다.
의외이긴 하지만,
토박이 바르샤바인들을 바르샤바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필자 역시 바르샤바에서 살면서 알고 지내는 ‘바르샤비아카’ 지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몇이 안된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만 보아도
나이드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여담이지만, 몇년 전 참석한 워크샵 모임에서
참가자 한명이 자기소개 마지막에 ‘바르샤비아카’ 임을 언급했다.
그때 그 표현이 나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 그 찾기 힘든 바르샤비아카이구나?’
신기하게도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람 얼굴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자기소개는 제대로 한 것 같다.
토박이 바르샤바인이 ‘스워익’에 대해 유머를 섞어 풍자한 노래도 있다.
아티스트명: Teściowa Śpiewa
노래제목: Warszawski słoik
유트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Y3UCqE2Xe0&t=116s
아래 노래 역시 ‘스워익’의 삶을 이야기한 노래이다.
아티스트명: Big Cyc
노래제목: Słoiki
유트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yw0iYHG3tY
‘스워익’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혼잡해지는 바르샤바가
이전과 같은 도시의 낭만을 잃어감을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엿보아 온 ‘스워익’이라는
익살스럽고 유머적인 표현이
맥락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집값 상승, 교통체증, 주차문제 등등…
도시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문제들의 원인이
마치 ‘스워익’ 때문인 것처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탓하고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의 표현이 SNS에 가끔 올라와 시선을 끌기도 한다.
사방팔방 어디를 가도 ‘스워익’ 천지가 되어 버린 도시.
불법주차, 쓰레기투기, 이웃간의 불친절 등
바르샤바에 대한 애착 없는 듯한 일부 ‘스워익’들의 무심한 태도와 행동.
여기서 토박이 바르샤바인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소수로서의
위화감 또는 이질감이 텃새부리기로 나타나는 것일까?
번잡한 도심 속. 너도나도 온통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
자기도 모르게 느끼는 짜증과 피로감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이와는 반대로 바르샤바를 탈출하여
비교적 한적한 외곽도시나 근교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런 양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삭막하고 북적거리는 수도보다
지방이나 작은 도시에서의 삶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추세로 계속 간다면
앞으로는 ‘바르샤비아카’, ‘스워익’ 이라는
단어의 의미 구분 자체가 무색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