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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닉사라 Jul 11. 2023

하루아침에 이름이 두개가 된 폴란드 만두

우크라이나식 만두 vs  러시아식 만두

1년전부터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폴란드 만두가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Pierogi Ukraińskie).


폴란드어로 만두를 뜻하는 피에로기(Pierogi)에다가

'우크라이나의' 또는 '우크라이나식' 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인

우크라인스키에(Ukraińskie)로 조합된 단어의 만두가 바로 그것이다.


피에로기는 폴란드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가장 대중적인 요리 중의 하나이다.

폴란드를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꼭 먹어봐야 할 폴란드 음식 BEST로

피에로기가 단연 1위로 꼽히기도 하다.  




피에로기에 대해 약간의 주석을 곁들이자면,

피에로기는 한국의 만두피보다 도톰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만두요리이다.

속은 야채나 버섯, 절인 양배추가 들어간 피에로기부터,

각종 고기를 주재료로 한 피에로기,

치즈나 제철 과일이 들어간 단맛의 피에로기까지,

여기에다가 각 지방 특유의 피에로기까지 포함하면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다양한 피에로기 종류



이 피에로기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 새로운 이름의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이다.


이 피에로기는 만두 속에 삶은 감자와

흰 코티지 치즈에 볶은 양파를 으깨,

약간의 소금과 후추로 양념해 만든 요리이다.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과 무난한 맛에

폴란드 음식이 낯선

외국인들의 구미에도

잘 맞는 음식 중에 하나다.




이렇게 폴란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음식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하였으니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이지 않을 수 없다.


작년부터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로 그 원인이다.

난데없이 전쟁과 만두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Pierogi Ukraińskie)

라고도 불리기 시작한 이 만두의 원래 이름이

피에로기 루스키에(Pierogi Ruskie)이다.

만두를 뜻하는 피에로기에다가   

루스키에(Ruskie)라는 단어가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루스키에(Ruskie)의 의미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자 한다.    

 옛 폴란드 남동부 영토에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걸친 지역

('Ruś Czerwona' 루시 체르보나 라고 읽음)으로

폴란드의 동쪽 지역을 넓게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는

'러시아인'이나 '러시아식' 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 피에로기 이름을 새로 짓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야만적인 전쟁을 일으켜 전범국가로 전락해버린 러시아.


피에로기 루스키에를 늘상 먹고 애용하는 폴란드인들에게는,

전쟁이 터진 이후로

어느새 이 만두 자체의 단어가

주는 어감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식당 메뉴판에서 피에로기 루스키에(pierogi ruskie)라는 이름이 지워진 모습. https://miastokolobrzeg.pl/



피에로기를 취급하는 폴란드 레스토랑,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에로기 루스키에가 아닌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로

메뉴와 상품 이름을 바꾸겠다고 말이다.


이에 소비자들, 그러니까 폴란드인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하루 아침에 바뀐 이름에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이름에 익숙해지려는

폴란드인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나도 피에로기를 정말 즐겨 먹는다.

식당에서도 먹지만,

슈퍼나 식료품 가게에서 피에로기를 사서

집에서 먹기도 한다.


TV에서 피에로기의 새 이름에 대한

보도를 들은 작년 그 날,

집근처 가게에서 피에로기를 사려고

여느때와 똑같이 무심결에

"피에로기 루스키에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가게 주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오늘부터 피에로기 루스키에는 안팝니다.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Pierogi Ukraińskie)로 하루아침에 이름이 바뀐 폴란드 만두. 폴란드인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만두 중의 하나임.




이전 브런치 글 달라진 폴란드의 모습 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달라진 바르샤바의 모습을 소개한 바 있다.


바로 옆나라의 전쟁으로

폴란드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져 버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정을 되찾고

모두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였듯,


개인적으로는

피에로기 이름을 둘러싼 폴란드인들의 저항 역시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해버린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 이름으로

다시 되돌아가지 않을까 라고 예측도 했었다.


그런데 전쟁발발 후 1년 반이 넘어가는 지금도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이름을 밀어내고

곧 폴란드 '대표만두'로 그 입지를 굳건히 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배달의 민족과 같은

폴란드 대형 배달 포털사이트들을 둘러 봐도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는

어느새 폴란드의 정식 메뉴로 버젓이 자리잡았다.


아래 세 사이트는 폴란드의 주요 음식배달앱

1. https://www.ubereats.com/

2. https://glovoapp.com/

3. https://www.pyszne.pl/



아래 사이트는 폴란드의 각종 가정/전통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음식 체인점으로,

HomePage (mlecznebary.pl) 

전쟁이 터지자마자 자사의 모든 식당에서

피에로기 루스키에라는 메뉴판을

없애겠다고 발표하여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물론 피에로기 루스키에 라는 예전의 이름을

여전히 사용하는 식당이나 가게들도 있다.


그러나 이왕이면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를 쓰자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는 때문인지,

단어 선호도 면에서 우크라인스키에 쪽이 더 높은 것 같다.


나도 이제는 피에로기를 파는 그 가게에 가면

이렇게 말한다.

"피에로기 우크라인스키에 주세요"




전쟁에 대한 저항의식을 기지를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그것도 전국적인 규모로

일사분란한 실행력을 보인 점.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도록

폴란드인들이 기울인 의식적인 노력.


결국 하루아침에 오랜 언어습관마저도 바꾸어 낸

폴란드인들에게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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