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나라의 비애
폴란드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때였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소포가 있어 우체국을 들렀다.
소포물의 수신인 정보란에 국가명을 Korea라고 기재해 두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우체국 직원이
"남쪽이에요? 북쪽이에요?"라고 물었다.
"예?"
순간 질문의 뜻이 이해가 안 되어 대답을 머뭇거렸다.
직원이 다시 천천히 물었다.
"한국의 남쪽이에요? 아니면 북쪽이에요?"
그제야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서투른 영어로, "당연히 남쪽이죠!"라고 퉁명스레 되받아쳤다.
'아니, 한국은 한국이지 웬 남한, 북한 그러지?'
나에겐 그 질문 자체가 참 황당스러웠다.
그런데 폴란드인들과 어울리는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자기소개를 하고 나면 반드시 돌아오는 질문이 바로 그거였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아, 어느 쪽이죠?"
이런 질문에 "남쪽이에요."라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이 다소 귀찮아서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할 때
"남한 출신입니다."라고 덧붙인다.
Korea = 한국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이곳.
그도 그럴 것이, 폴란드를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에는
북한 대사관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오래전부터 북한과도 인연이 많다.
625 한국 전쟁 후 부모를 잃은 북한 고아 약 5000명을 폴란드로 데려와
수년간 폴란드의 보육기관이나 일반 가정집에서 돌본 사례도 있다.
또 사회주의 체제 당시 폴란드 정부는 동맹국 간의 교류 차원에서
북한의 학생들을 초청하여 폴란드에서 유학을 시키거나
북한 근로자들을 흡수하여 자국 내 탄광이나 농업에 종사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출신이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보는 것은
폴란드인들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이전 브런치 글에서도 소개한 바 있듯,
최근 방위산업을 비롯하여 한국과 폴란드 간의 활발한 경제적 교류로
한국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대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한국은 그냥 머나먼 아시아의 한 나라 정도로
이해도가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남한과 북한의 차이조차 구별하지 못할 만큼
아시아 지리나 정세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많았다.
남쪽, 북쪽이라는 지리적 개념보다 때로는 좋은 쪽 vs. 나쁜 쪽
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다.
좋고 나쁨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해서 피식 웃기도 했다.
우체국에서 겪은 일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준 일화였다.
인식의 상대적인 차이를 '무지함'으로 몰고 간 나 자신의 경솔함도 반성하였다.
그와 더불어, 한 번도 북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나라.
한때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서로 반대편에 서서 총을 겨누고
현재는 극과 극을 달리는 두 민족.
남쪽 북쪽이라는 지리 혹은 체제적 구분의 불편함도
결국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겪어야 할 몫일 것이다.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이 사라지고
Korea = 한국 이라는 등식이 온전히 성립되는 때가 오기를...
이 바램이 결코 허상이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