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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마녀 Sep 06. 2020

성공한 인생이란? 벤로막

위스키를 통해 만난 사람, 그리고 인생이야기 2

찰리 할아버지.


다른 증류소와 동떨어진 곳에 있지만, 더프트타운에서 인버네스로 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면 들릴 수 있는 벤로막 증류소. 벤로막은 작고 따뜻한 증류소다. 가족들이 대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고, 효율성과 비용보다는 전통을 중시하며,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특히, 오크통에 직접 사람손으로 채우는 법을 고수한다.) 매쉬툰과 스틸이 모두 한 곳에 있어 실질적으로 공장의 규모는 매우 작다. 워시백도 모두 나무를 쓰고 있어서 고전적인 느낌을 더한다. 벤로막 위스키는 대부분 약한 피트 향을 품고 있다. 과거에는 스페이사이드도 석탄을 공급하기가 어려워 피트를 사용했었기에,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벤로막다운 특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로 된 워시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사용한 지 얼마 안된 워시백은 나무색이다)


공장의 크기는 매우 작지만, 증류소 자체의 부지는 매우 넓다. 가이드도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 앞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할 정도로, 산책길과 주차장도 넓게 잘 되어 있다.


투어는 제일 먼저, 증류소에 대한 설명 비디오가 재생되는 룸에서 시작된다. 과거 영상도 볼 수 있어서 가족적인 벤로막의 운영방식(현재도 실질적으로 위스키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인원은 5명 정도라고 한다.)이 인상 깊었다. 전반적인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별도 공간과 시간을 할애하여, 증류소 역사를 심도 있게 설명해준 투어는 거의 없었는데, 과거(전통)에서부터 내려오는 무엇인가를 중요시하는 벤로막의 정신이 처음부터 느껴졌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증류소를 나올 때쯤 20명 정도 단체 미국인 투어객이 우르르 입장을 했다. 보통 단체손님들을 환영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카운터 직원은 순간 얼굴이 하얘지며, 우릴 보고 눈짓으로 혀를 내두르는 시늉을 했다. 소규모 벤로막에선 조용한 일상을 더 선호하는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가 갔던 타임에는 우리밖에 투어객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프라이빗 투어가 되었다. 증류소를 돌고, 귀엽게 꽃과 그림액자들로 꾸며진 넓은 테이스팅룸에서 설명을 듣고 난 후, 시간 여유를 가지며 여유 있게 시음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가이드는 엄청 유쾌한 40대정도 아저씨였는데, 커플사진 찍어주시는데 굉장히 열심히셨다. 벤로막 사진스팟들마다 열심히 찍어주셨다.
테이스팅 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벤로막 위스키들.

벤로막 증류소 방문 전날, 카두 증류소 투어를 갔었다. 우리 말고 다른 가족 투어객과 함께 증류소 투어를 했는데, 가족 구성원 중 80대는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에게 예전에 알았던 사이인 듯 인사도 하고, 굳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는 증류소 직원도 있어서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투어가 끝날 무렵,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겨 어떻게 직원분들을 아냐고 여쭈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라프로익, 라가불린, 그리고 마지막으로 벤로막에서 은퇴를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일라 섬도 좋았지만(라프로익, 라가불린 증류소가 있는 곳) 본인은 벤로막이 특별하다면서, 오래 일을 했다고 하셨다. 내일 우리가 벤로막 증류소를 들릴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걸 기억하고 우리가 있나 보러 오신 거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본인의 카메라를 가져와야겠다며 잠시 나가셨다.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가자, 문 뒤로 벤로막 직원들이 할아버지를 엄청 챙기고, 예우를 다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가이드가 다시 들어왔고, 찰리를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다. 어제 투어에서 만났다고 하자, 찰리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처음 증류소에 왔을 때 봤던 비디오에 등장하는 벤로막 오픈 멤버이자, 비디오 룸 한켠에 빛바랜 오크통 사진이 있었는데, 그 오크통에 적힌 ‘찰리’도 할아버지라고 했다. 벤로막 넓은 증류소 부지 안에는 작지만 예쁜 집들도 몇 개 보였었는데, 찰리 할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증류소 안에 있는 그 집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종종 직원들을 위해 빵을 직접 구워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다른 증류소에 본인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투어도 즐기고, 여전히 위스키도 즐긴다고 하셨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구식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찰리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가이드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구식 카메라로, 역광 조절도 잘 안되고 화질도 안 좋았지만 열심히 우리를 찍어주었다. 찰리 할아버지도 다양한 포즈를 함께 요구하며 지금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했다. 내 독사진도 찍어주면서 귀여운 손녀를 보는 듯한 따뜻한 눈빛을 느꼈다.


찰리할아버지와 헤어져서 나오는 그 날, 나는 정말 마음속 가득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으로 차오른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위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본인이 살아온 인생이 결국 나중에 본인 얼굴에, 아우라에 묻어난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도 나중에 80대 노인이 되어서 찰리처럼 따뜻한 정을 나눠줄 수 있고, 순수한 눈빛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의미가 있던 공간에서 살면서, 그 공간의 사람들에 매일 아침 빵을 구워주는 하루하루. 이보다 더 성공한 삶이란 게 있을까?  


벤로막에서 찰리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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