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통해 만난 사람, 그리고 인생 이야기 1
나는 운명론자다. 우연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감정이 동요하고 추억이 되고 의미부여가 된다. 글렌드로냑과의 만남은 나에게 운명이었고, 좋은 추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인생의 소재’들 중 한 개가 되었다.
글렌드로냑은 어쩌다 보니 스코틀랜드를 가기 전 한국에서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코틀랜드 증류소 여행 계획에도 없었다. 스코틀랜드 중에서도 스페이사이드라고 불리는 지역 쪽 증류소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들은 보통 차로 30분 거리 내에 모여 있다. 그러나, 글렌드로냑은 1시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본인들 스스로도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애매하긴 하다.)
비행기 티켓을 끊고 보니, 돌아오는 날이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페스티벌’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페스티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괜히 욕심이 났다. 워낙 증류소 투어 정보 자체가 희귀한 한국이기에, 페스티벌 정보는 더더욱 없었고,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의 홍보성 멘트에 잔뜩 기대감만 부풀려져 변경 수수료까지 물면서 돌아오는 날짜를 하루 미루었다.
페스티벌 첫째 날, 좋았지만, 하루면 충분하다 싶었다. 굳이 추가 수수료를 낼 필요가 있었나 싶기는 했다. 증류소별 페스티벌 리미티드 버전을 팔거나, 시음회를 여는 형식이 주였다. 시음회는 테이스팅 투어로 이미 충분했고, 페스티벌 리미티드 버전까지 사가기엔 관세 통과가 무서웠다. 그 날밤, 어쨌든 ‘쉐리 성지 3개 증류소(멕켈란, 글렌파클라스는 이미 다녀왔고, 글렌드로냑이 남았다.)’ 도장깨기나 해볼까 심정으로 다음날 글렌드로냑 증류소에 들렀다 공항을 가기로 했다.
글렌드로냑은 스페이사이드 증류소가 아니니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았고, 외곽에 있다 보니 투어객이 없었다. 프라이빗 투어가 된 거다. 이렇게 나와 글렌드로냑의 운명적 만남은 시작되었다.
‘피오나’라는 가이드는 스코틀랜드 억양과 영어가 주는 언어의 장벽 너머에서도 ‘소녀의 감성’이 느껴졌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상세한 묘사와 개인적인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위스키의 가장 주재료가 되는 ‘보리’. 위스키를 만드는 가장 첫 단계로 보리를 위스키용으로 다듬어 주어야 하는데, 적당히 발아시킨 뒤 건조해야 한다. 증류소마다 다른 보리를 쓰고, 발아시키고, 건조하는 방법이 달라서 다듬어진 보리에서부터 증류소의 특징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주 예민하지 않은 나로서는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들의 건조된 보리는 약한 훈연 향이 나거나, 그냥 보리차의 고소한 향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피오나는 글렌드로냑 보리향을 맡으면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남편은 아일라 증류소의 훈연 처리된 보리향을 맡으면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맡던 아궁이 냄새가 기억난다고 했다. 글렌드로냑 가이드와 한국에서 온 30대 남자애가 위스키가 되기 전 보리향을 맡으며 비슷한 기억을 떠올린다니. 투어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감정이 주체 없이 피어올랐다.
피오나는 기억으로 이끌어주는 매개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것을 보거나, 맡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맛보았을 때, 느끼는 감각이 과거의 어떤 따뜻하고 좋은 기억으로 데려가 그 시절의 좋은 감정까지도 되살아나게 하는 것. 글렌드로냑을 먹으면서 자신과의 투어를 떠올려달라는 말이 너무 따뜻했다.
글렌드로냑 증류소는 피오나의 말처럼, 모든 관광객들이 이 증류소를 왔다가 돌아가서 다시 글렌드로냑을 맛보았을 때 아름다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 주려는 듯한 곳이었다. 분지형태의 지형에 위치하여,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었다. 피오나는 아름다운 환경이 위스키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며, 글렌드로냑은 이 증류소의 아름다움을 담아서 더 맛있고 특별한 거 같다고 말했다. 과거에 글렌드로냑은 외부인(특히 주류세 담당 공무원)들이 오면 까마귀 지저귐에 알아채고, 세금을 덜 내기 위한 준비들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귀히 여긴다고.
글렌드로냑은 3대 쉐리 성지라는, 조금은 상업적이고 대규모 증류소의 느낌이 느껴지는 타이틀과는 굉장히 먼, 감성적인 증류소였다. 멕켈란보다 훨씬 장난기 없이 진지하고, 글렌파클라스보다 감성적이고 따뜻했다.
언제가부터 진지하고, 감성적인 것들에 대한 호불호가 사회에 생긴 것 같다. ‘진지충’이라는 부정적인 단어와, ‘감성돌’이라는 긍정적인 단어가 혼재하는.
어린 시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들은 오히려 로맨티시스트였다. 귀여니 소설을 모두가 읽던 때였다. 주인공들을 실사화한 영화를 보고 오글거려서 충격을 받고, 모든 귀여니 소설 영화가 망한 걸 보고 나서야 실존에 존재하지 않는 일들임을 알았지만, 실제로 완벽하게 존재한다면 너무 멋진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투투’(사귄 지 22일 되는 기념일) 선물을 위해서 친구들에게 100원씩 돈을 모았고, 화이트데이에 전교에 한 명 정도는 점심시간에 퀵 아저씨에게 사람만 한 곰인형을 배달받았고, 100송이 장미 꽃다발도 생일이라고 집 앞에서 건네주곤 했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내 주변 커플들을 보면,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걸 쿨한 현대인의 연애상처럼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마스, 생일조차도 일상과 동일하게 지내는 걸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크하다, 쿨하다, 는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이 되었다. 감성적이거나, 느낌을 말로 조금만 형용사를 붙여서 설명하면, ‘오글거리다’라는 부정적인 말이 돌아오기까지 한다.
평소에도 “말 안 해도 알잖아.”, "바쁜데 내 맘 알지" 라며 표현을 아낀다. 말을 안 하는데 대체 어떻게 안다는 걸까. 마음을 표현하는데 30분이 걸리는 게 아닌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인간관계(연인, 친구, 가족 모두)에 반대한다. 365일, 50년 이상을 함께 보내는 인생에,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작은 경험들을 많이 쌓고, 느끼는 걸 바로 말하며 감정을 공유하면, 인생은 더 풍성해진다. 굳이 가벼운 인생을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보면 피오나는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었고, 오글거리는 표현들을 말로 서슴지 않고 표현했다. 나는 한없이 오글거려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모두가 사실은 오글거리는 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그 오글거림을 보여줄 때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물론, 술이 더해지면 훨씬 그 본성을 드러낼 용기를 가지기 쉬워진다. 그래서 술이 좋기도 하다. 피오나와 우리는 잠깐이었지만, 어릴 적 기억을 나누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했다. 지금까지도 글렌드로냑을 먹으면서 피오나와의 투어를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는 행복은 그때 우리들의 오글거림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오글거리는 것들을 가져보고자 한다.
좋은 기억으로 데려다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들이 많아야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쿨하게 사는 인생보다는, 많은 걸 느끼고 잊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