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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마녀 Jun 17. 2020

나의 사랑 스모키함에 대하여;아일라섬 여행기 맛보기 2

애주가, 위스키를 만나다 4


개성을 가진다는 것.


아일라섬 증류소를 직접 가보면 더 놀랄 수밖에 없다. 처음엔 규모에 놀란다. 너무 작아서. “여기가 정말 그 라가불린이야? 그 온세계의 라가불린이 여기서 나오는 거야?” 글로벌 기업이지만, 대규모 공장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작고 전통적인 건물들 몇 개로 보통 이루어져 있다. 리셉션과 샵이 보통 같이 있는데, 방하나 정도 크기이다. 그런데 여기에 온갖 희귀병과 한국에선 본 적도 없는 소장욕을 일으키는 위스키 관련 용품들이 있다. 


위스키 진열대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면, 대뜸 아무렇지 않게 시음 잔에 더블샷 정도의 양을 부어준다.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라고 인심 좋게 내어주고, 시인 같은 테이스팅 설명까지 늘어놓는다. 직원이나 손님 복장도 쉽게 말해 당장이라도 러닝이나 등산을 갈 차림이다. 워낙 바람도 많이 불고 험한 자연의 아일라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아일라 여행은 제주 오설록 뮤지엄 관광과 같은 느낌인 것 같다. 조부모와 아기가 함께인 가족여행객도 많고, 트레킹을 하면서 투어를 하는 여행객도 많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좋은 자연과 위스키를 편하고 재미있게 즐기는 분위기. 한국 위스키 바에 앉아 위스키를 마셔서는 위스키의 본모습을 절대 절대 알 수 없다고 확신한다.


특히 라프로익, 아드벡, 라가불린 증류소가 있는 동네에 가보면 스모키함을 느낄 때 오감으로 느낀다는 표현을 실감할 수 있다.


아일라를 대표하는 킨들턴(이 지역에 있는 명소) 3 총사로 불리는데, 실제로 나란히 붙어 있고 예전에는 경쟁도 했지만 지금은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해안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고, 자전거 혹은 트레킹으로 3 증류소를 투어 할 수 있도록 올레길처럼 표식도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섣불리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했다가는 한국의 올레길과는 차원이 다른 오르막길과 강풍에 중도포기를 하고 말 것이다, 나도 그랬다.)

자전거길과 평야, 바다가 어우러진 곳
포트앨런에서 이 길만 따라가면, 라프로익 / 라가불린 / 아드벡이 차례대로 나온다. 


바닷바람을 머금을 수밖에 없는 환경,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이 좋은 공기와 물이 온전히 위스키에 담길 것 같은 풍경이다.


같은 지역의 스모키 아일라 위스키로 분류되고, 심지어 3 증류소는 엄청 가까이 붙어 있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3 증류소는 느낌이 다르다. 각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그 증류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차별화되게 느껴진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라프로익. 큰형, 남자의 느낌이다. 마당에는 재미있는 커다란 ‘타일 장벽’ 이 있다. 타일마다 위스키 관련 유머와 명언들이 그려 넣어져 있는 벽이다. 장벽을 지나 실내에 들어서면 리셉션과 작은 전시실 겸 바가 연결되어 있어서 꽤 넓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그니처 초록색의 느낌이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관광객이 홀릭할 만하게, 시음 잔을 목걸이 형태로 제공해서, 너무 귀엽다. 라프로익 10년을 먹으면, 나는 바로 스모키함을 강한 펀치로 남자답게 맞는 기분이다. 그리고 오히려 뒤로 갈수록 깔끔해진달까. 증류소도 군더더기 없고, 남자의 터프함이 느껴졌다.

라프로익은 이렇게 찍으면 가장 예쁜 지, 라프로익을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샷을 나도 찍어 보았다.
라프로익 타일 장벽, 재미있는 위스키 관련 농담/명언들이 적혀있다. 
라프로익 잔을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면서 투어하고 테이스팅을 한다.


라가불린은 너무 작은 리셉션 겸 상점이 우릴 맞이한다. 좁은 복도를 지나면, 안락한 소파들이 있는 휴게실이 별도로 있다. 아기자기한 작은 건물들이 많은데, 각각 테이스팅룸이나 바들이 있다. 테이스팅룸도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바다 가까이에는 산책하기 좋고,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데크도 설치되어 있다. 라프로익과 비교하면 좀 더 여성적이다. 실제로, 라가불린 16년을 입에 머금는 게 익숙해지면, 쉐리 캐스크의 향이 꽤 강하게 나서 부드럽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해서 오히려 뒤에서 강하게 스모키함으로 인증을 하는 느낌이다.

라가불린 Sensory Tour를 신청하면, 테이스팅을 위한 키트를 준다. 위스키의 향/맛의 베이스가 담겨 있다.
Sensory Tour는 예쁜 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듣는다. 아름다운 투어다.

아드벡은 확실히 대중적이다. (증류소의 이미지가 대중적이다는 뜻이니, 오해는 말길!) 3 증류소 중 유일하게 레스토랑이 있어서, 주변에 식당조차 마땅치 않기 때문에, 식사는 아드벡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맛이 좋다. 사람들도 가족단위로 많이 북적인다. 음식에 맞추어 대중적인 아드벡부터 희귀한 아드벡까지 시켜먹어 볼 수도 있으니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리셉션과 상점도 대기업(?) 소유 증류소답게 널찍하고, DP도 꽤 세련됐다. 아드벡은 년수로 구분하지 않고, 별명들로 이름이 붙은 위스키들이 유명한데, 별명마다 독특한 스토리와 문양이 있어서 더 재미있다.

아드벡은 좀 더 상업적, 기업적이라는 느낌이 곳곳에서 들었다.
킨들턴3총사 중에 유일하게 레스토랑이 있는 증류소는 아드벡이다. 그러나, 다른 곳이 있었어도 안 갔을 것이다. 너무너무 맛있다!


아일라 섬에는 킨들턴 3총사 말고도, 포트샬롯 부근에 보모어, 브룩라디, 킬호만, 섬 위쪽에 쿨일라, 부나하벤 등 5개의 증류소가 더 있다. 19년에 새로 오픈을 한 증류소도 기대된다. '스모키'라는 특징으로 묶기에는 각자의 개성이 너무 다른 아일라 증류소들이다. 스모키 자체의 농도에 변화를 주거나, 다른 향과 맛과 섞어 보거나, 아예 unpeat를 도전해보거나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가득하다. 3000명 정도가 사는 이 작은 섬에서 8개의 증류소가 모두 각 증류소의 아이덴티티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특히 증류소 직원들이 본인의 증류소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넘치는 점도 멋지다. 


직접 아일라 섬을 방문하지 못하더라고, 집에서 홈 투어로 라프로익, 라가불린, 아드벡을 함께 시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일라증류소들 중에서도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고, 어느 위스키보다 강하게 스모키함을 내세우는 3 증류소의 각기 다른 개성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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