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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 Nova Apr 30. 2021

1. 거식증과 관계 불안이라는 감옥

감옥 1. 영혼과 몸을 파멸시킨 거식증


오랜 시간 동안 지옥 같은 삶에서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늘 그리워하고 동경해 왔다.

20대 초반인 어느 날 만나게 된 구원자가 있었지만, 2년 정도 이후 헤어지고 나서부터 거식증이라는 감옥의 문은 나를 향해 반갑게 손짓하고 있었다. 흔쾌히 응하였다. 그것이 영혼과 몸을 파멸로 이끌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구원자와의 이별의 경험은 ‘아무런 잘못이 한 게 없는데 강제로 다시금 지옥으로 가라고 하는 손짓’과 같았다.


또 다른 구원자를 만나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지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나만 알고 있는 내면 깊은 곳에서 말도 안 되는 발버둥들을 쳐야만 했다. 구원자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 나를 향해 보는 관심 어린 시선, 그토록 원하는 ‘사랑’을 갈구하고 또 갈구했다.


나는 마치 헤어진 연인과 이별하고 나서 상처 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불쌍한 사람,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 연약해 보이는, 가녀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헤어짐의 상실의 아픔을 다른 방법으로 이겨내려 했다.

더 예쁜 나로, 그리고 가녀린 나로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을 일으키는, 보살핌의 욕망을 불러일으킬 모습으로 만들어 갔던 것이다.


이 상황들을 더욱 촉발하는 사건들이 동시에 등장했는데 그 당시 실제로 많은 이성들이 한꺼번에 관심을 보였고 접근을 하였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해야만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비참하게도 말도 안 되는 공식이 뇌 속에 뿌리 깊숙이 각인되었다.


한 끼당 300칼로리로 제한하면서 운동은 하루에 1시간씩은 꼭 하였다. 얼굴살은 절대 쪄보이지 않기 위해서 마사지와 경락 운동을 아침저녁으로 했다. 하루에 적어도 4-5번은 꼭 몸무게를 쟤야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얼굴과 다리가 부어있는지 혹은 살이 쪘는지 확인해야만 속이 편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씹고 뱉었다. 씹고, 뱉고 또 씹고 뱉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먹고 난 후 돌돌 말아서 휴지통에 넣었다. 처음에는 집에서만 하다 나중에는 밖에 사도 시간만 나면 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었지만 결코 멈출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몸을 ‘관리’ 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먹는 시간은 최대한 7시, 12시, 5시 이렇게 맞춰서 먹으려고 하였고 그렇게 되지 않는 날에는 하루 전체가 망쳤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게 책망을 하며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절대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되었다. 단 것, 빵, 과자 아이스크림이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땐 저녁에 자기 전에 꾹 참고 또 참다가, 침대 맡에 두고 잤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먹었다. 배고파 잠이 안 올 때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루틴(routine)으로 생각하고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불안감들과 그 행위들과 함께 강박적이고 대단히 의무적으로 동거했다.


살이 41kg가 되고 나서 사람들의 ‘왜 이렇게 말랐냐, 다리 진짜 얇다. 예쁘다. 연예인 x 닮았다.’와 같은 목소리들로 나의 영혼의 가치를 채워갔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날에는 극도로 불안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으며 마치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얼굴이 그 사이에 살쪘나? 다리가 굵나? 어제 마사지를 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오늘은 언급을 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들 뿐이었고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가련한 비련의 주인공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서서히 감옥으로 더욱 이끌어 갔다.

감옥의 공간들은 점점 좁혀져 갔다.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스스로 더욱 조여갔다.


더, 더, 더. 난 더 필요해.


그렇게 감옥에 수감된 지 1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남편을 따라 무작정 일을 그만두고 천국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하와이로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20대에 범불안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어서 수많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함께 할 동반자도 있으니 인생의 새로운 2막이 다가올 거라 믿었다.


내 몸과 마음, 영혼은 이미 소멸될 때로 소멸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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