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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 Nova Apr 30. 2021

2. 감옥 탈출기

1) 내 안에 내면아이들 01.


01. 내 안에 내면 아이들과 재회하다


한국에 돌아와 한의원 치료를 받고 동시에 심리치료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수많은 내면의 아이들이 있는데 이를 표현해보자고 제안하셨다.


말로 하기에는 추상적일 수 있으니 내면에 있는 것들을 실제로 시각화하여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름도 붙여보면 실체가 보이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말이다.


제안을 하심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하나씩 그려가기 시작했다. 색도 원하는 대로 뭐든 쓸 수 있었고 자유롭게 무의식에 몸을 맡기며 그렇게 내면의 아이들을 도화지에 하나씩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각각의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하나씩 붙여줘도 보고 가장 많이 걔네들이 쓰는 문장을 한 문장씩 적어보기도 했다.


미술치료를 활용하여 내 안에 숨겨진 내면의 아이들을 만나다.


맨 위쪽 주황색 화살표시는 억압하며 부정하는 나라서

 ‘부정이’

물병 모양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는 그림은 ‘희생이’

화난 얼굴로 뭐라고 쏘아붙이고 있는 그림은 ‘닦달이’

두 번째 아래 도화지에

사람 몸에 채직을 하고 있는 그림은 ‘채직이’

파란색 물방울이 크게 드리워져 있는 그림은 ‘포기’

마지막으로는 분홍색깔로 눈과 얼굴만 약간 빼꼼 드러내고 있는 그림은 ‘빼꼼이’ 였다.


설명한 순서는 그림을 그린 순서인데, 무엇을 먼저 그리는지 또한 유의미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지나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가장 먼저 그리는 그림이 내 안에서 가장 익숙하고 크게 작용하는 내면 아이의 목소리인 것 같다.


내면의 아이들 한 명씩 자세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 아이만 하여도 이야기할 것들이 굉장히 많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많이 때문에 차차 하나씩 공유하도록 하고 오늘은 내면 아이들을 만나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고자 간략히 설명하는 정도로만 쓰겠다.


첫 번째 ‘부정이’의 내면 아이는 ‘엄마’로 인해 형성된 아이이다.

엄마는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하여 옳고, 타당하다고 들어준 적이 거의 없고 엄마 의견과 말이 다 옳다고 하시는 분이셨다.

이로 인해 나는 내 존재가 늘 부정당해 왔고,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스스로를 믿어주거나 자신감을 느낄 수 없었다. 무조건 엄마와 타인의 말이 다 옳기 때문이다.


이 부정의의 감정은 가장 강렬하게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파멸로 이끈 존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부정의의 감정만으로도 사실은 거식증과 관계 불안의 근원이라고 말하여도 근거는 어느 정도 효력이 있다.

그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넌 어차피 해봤자 안돼.”였다.


두 번째로 ‘희생이.’

희생이는 관계 불안과 연관이 많이 되어 있다. 타인이 나를 싫어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남에게 희생하고 퍼주는 삶, 나는 없고 타인만 있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희생이가 과부하가 걸린 채로 말하고 있다.

“나 이제 그만 하고 싶어.”


세 번째로 ‘닦달이’  

-“빨리 그다음에 뭔가를 해야지!!.”

뭔가 늘 편히 쉬는 꼴을 보지 못하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뭔가를 하라고.’ 닦달하는 친구다.

닦달이는 다음 편에 바로 닦달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정리할 예정이니 그때 자세하게 더욱 다루도록 하겠다.


네 번째로 ‘채찍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잘못했어. 왜 그랬어. 왜 또 그래? 불안하면 안 되고 우울해서도 안돼.’

내 안의 초자아(superego)로서 율법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채직을 하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섯 번째, ‘포기’

-“다 끝났어. 그냥 끝내 버릴까?  

‘부정이’의 영향으로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결과 포기하고 학습된 무력감과 우울감을 쥐어준 아이이다.


여섯째, ‘빼꼼이’

-“나도 있는데....”

희망을 주는 존재가 생겼다.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타인 목소리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아 생겨난 아이이다. 본연의 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그 모습이 흐릿하다. 필압이 가장 낮고 그림 중에 제대로 형체가 갖추어져있지 않다.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닦달이의 ‘얼굴’, ‘채직이’의 몸.. 그리고 팔은 처음 그린 ‘부정이’ 의 화살이 마치 사람 모습으로 한 몸을 이룬 것 같이 보인다.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닦달이, 채직이, 부정이가 하나의 완전체의 모습으로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의 모습들이 바로 ‘희생이’와 ‘포기’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나는 닦달이의 얼굴을 잘 드러나지 않은, 아직은 세상이 두렵고 무섭기만 하여 빼꼼 내밀고 있는 본연의 나의 모습 ‘빼꼼이’를 얼굴로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스스로를 채직하며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와 같은 내면 아이들을 만나는 작업은 한 번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진행하게 되면 우리 안에 내면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끼리 하나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서로 간에 통합할 수 있게 된다.

다음에 한 번 더 이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같은 아이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내 안에 나를 향해 외치고 있는 영혼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자 지금 이 시간, 우리 안의 내면의 아이들을 그려보면서 그들을 소환시켜보면 어떨까?

바로 지금 떠오르는 감정의 생김새와 그 이름,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많이 당신에게 하고 있는 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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