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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 Nova Apr 30. 2021

2. 감옥 탈출기

2) 꿈 분석, 영혼의 울림 01.


01. 사지가 절단이 나는 채로 돌아다니는 꿈


2019.12.21

나는 죽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차라리 총을 맞거나 가스실에 들어가거나 불에 타버리거나 순간의 아픔으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국남자조쉬가 내 등을 뒤에서 칼로 찔러서 죽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쓰라린 그 아픔이 다 느껴졌다.
의식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확인한 흑인 여자(이름은 욜란다)가 나를 보더니 칼로 다시 반토막을 내서 이빨을 다 뽑고 사지를 토막 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있었고 그 모든 아픔들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안 보이는 틈을 타 내 잘린 몸을 다시 붙여서 도망을 나왔다.
나는 사지가 덜렁거리는 그 채로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데 학창 시절 실제로 날 소외시키고 이간질했던 A와 B가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그들에게 ‘내가 빨리 고쳤졌으면 좋겠다.’ 고 얘기를 했지만 ‘힘이 없어서’ 그냥 그들이 하는 데로 따라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들에게 ‘외과’로 가자고 내 생각을 표현했고 그들은 외과로 데려갔다. 외과의사에게 사지가 덜렁거리는 몸을 꼬매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고 덜렁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나를 계속 ‘방치’ 해두고 있었다.
나는 그 몸을 이끌고 내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세상에서는 내가 죽었다고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신분을 숨기고 아닌 척을 해야 해서 내과는 갈 수가 없었다. A, B가 나를 진정으로 대한 다는 느낌보다는 쌀쌀 맞고, 믿지 못하며 언제라도 배신할 기세를 띄고 있었고 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어 보였다.



꿈 분석
-이대로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이제껏 나는 내 영혼과 마음의 상처들을 봉합해주고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사지가 반토막이 난 상태로 방치하여 피가 그 사이로 철철 흐르고 상처가 더욱 덧나고 썩나 버린 상태로 그대로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스스로를 돌봐주고 바라봐 줬어야 했는데 계속 채직 해왔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갈 힘이 없는데 스스로 더욱 몰아가면서 돌보는 시간조차 억지로 해야 할 사항으로 책망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돌보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잘 돌보고 있는지 평가하며 채직’을 하며 보내지 않았을까.


꿈에서 살펴보면 나에게 면박을 주고 이간질을 시켰던 A, B에게 내 상태를 얘기했고 아파서 그들을 주도하려고 하기보다 여전히 끌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가 그들에게 ‘외과’를 가자고 얘기를 했다는 것은 내 영혼이 그만큼 급한 위기상황에 놓여있는데 더 이상은 타인이 하자는 대로 따라 사는 삶에 대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평상시에 영국남자조쉬와 욜란다(미드에 나오는 재벌 가정부)는 내게 있어서 내가 가질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평상시에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부러웠고, 이를 무의식적으로 나도 갖기 위해 평상시에 노력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하여 화살을 쏘았고, 생각하고 기대하는 만큼의 자기 돌봄을 할 수 없으니 나에게 가혹한 처벌을 하며  난도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은 스스로를 돌보는 단계가 초보 단계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난도질을 하여 책망의 자리, 다그치는 자리에 두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살아있었고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한 외침은 계속되었다.


한편, 스스로를 바라볼 때 이러한 모습들이 미성숙한 모습이라고 대개 판단을 하기 때문에 A, B가 내 능력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발현될 수 있다.

내 안에 A와 B를 통해 내면화된 스스로에 대한 평가의 에너지가 너무 강하여 현재에도 자신의 능력, 자기 효능감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한다고 해석이 되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꿈에서 조차 내 영혼은 죽은 것 같았지만 살아있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쭉 살아있을 거라는 것이다. 세상이 바라는 내 모습으로 그대로 살지 않을 것이고 오롯한 나로서, 신이 주신 독특한 나로서 살아 낼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돌보지 않고 싸매어 주지 못한 상처들이 덜렁거리면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세상이 바라는 나로, 타인이 생각하고 바라는 나로 그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는 감정과 욕구를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표현하고 싶고 그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와의 관계만이 나의 전부이고 정체성이었던 나는 이제는 내 안에 ‘희생이’를 안아주며 내 안에 보듬어 주는 사랑의 언어들을 마구마구 매 순간마다 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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