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허기짐과 기아상태를 극복하는 방법
거식이든 폭식이든 섭식장애(또는 식이장애) 회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부터 이상한 경험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뒤돌아 서면 또 음식이 먹고 싶어 지는 증상이다. 이를 극도의 허기짐 (extreme hunger)라고 하는데 그동안 기아상태(starvation mode) 였던 우리의 몸이 다시금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여태까지 먹지 못했던 것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계속 음식을 갈구하고 갈망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 경우는 마치 임산부가 된 거 같은 느낌이었다. 온종일, 24시간 동안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음 끼니, 그리고 다음날 끼니까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쉬지를 못했었는데 뭔가 특정한 음식이 갑자기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먹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단현상을 겪었다. 몸이 떨려왔고 집중이 되지 않고 당장이라도 먹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주변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시간 동안 (짧게는 1년, 길게는 적어도 10년 이상) 음식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거식, 폭식, 건강 강박, 운동 강박 등) 제한하고 미워하며 통제해 왔다. 그러다 다시금 음식이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 오랜 세월 off 시켜놨던 몸의 시스템에서 여러 기능 들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정확하게, 통제해 왔던 그 양만큼, 어쩌면 그만큼의 시간일지도 모르는 정도의 ‘음식에 대한 기억’ 들을 다시금 심어 주어야 하는 과정이 당연시하게 필요한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섭식장애의 회복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가?
그 해답은 매우 단순하다.
거식이든, 폭식이든 상관없이 잃어버렸던 정도만큼 다시 음식을 채워주면 된다!
음식을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세끼와 식간에 간식들을 먹는 것이다. 비건이건, 세미 비건이건, 펠레오건, 일반식이건, 저탄고지, 고탄저지.. 개인의 취향이니 어떠한 식단이든 다 괜찮다. 다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양하고 충분한 영양분을 골고루, 충분히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계속적으로 먹어주면 된다. 오랜 세월 폭식, 거식, 운동 강박 어떤 방법으로든 음식을 제한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체구는 정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영양실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비타민, 미네랄 모든 영양소들을 골고루 챙겨 먹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세끼와 식간에 간식을 먹었어도 혹 저녁에 자기 전에 음식이 먹은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는 다면 (소화기관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간단한 것을 먹고 자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심각하게 음식에 알레르기가 생겼었고 소화기관은 다 망가질 대로 망가졌었기 때문에 야식을 먹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였다. 대신 기본 세끼와 간식을 먹고 대신 원하는 만큼 양껏 먹어주었는데 그렇게 하면 대개 밤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었다. 물론 초반에는 간혹 나타났었지만 어느 적정 기간을 지나니 괜찮아졌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동안 배부름이 뭔지 잘 모르는 순간들을 맞닿게 된다. 그래서 얼마큼 먹어야 배가 적당히 부른지, 많이 부른지, 적게 부른지..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하여서도 다시금 음식과 함께 연습을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는 소화 관련 글을 쓰면서 함께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위의 얘기들을 들은 여러분은 다음에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렇게 식단을 지켜야 하는지?
정확한 기간이 있었으면 좋겠고 마치 끝이 있을 것 같지만
기간은 없다. 회복이 되고 나서도 계속적으로 유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섭식장애가 여러 번 재발하고, 또 재발의 경험을 겪으며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나로서 내린 결론이다.
답변 없는 이 답변이 다소 실망감이 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섭식장애의 룰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음식을 먹는 다는 행위는
절제해야 하며 미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의 신호에 대하여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하고
우리 몸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일정한 기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몸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는 순간, 그리고 치유가 되었다고 느끼는 그 이후에도 위의 방법을 지속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아마도 규칙적으로 먹다 보면 몸무게도 다시금 돌아오고 몸도 예전보다 힘이 생기게 되고, 에너지와 피가 자동적으로 돌면서 몸이 다시 따듯해지고, 생리도 돌아오며 빠졌던 머리들도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몸이 회복이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어 나도 모르는 그 찰나에 예전의 습관으로 되돌아가버리고 재발하는(relapse) 상황에 맞닿게 된다.
‘아. 이 정도면 이제 다시 식단 관리를 해야겠지?’
‘아. 몸무게 다시 돌아왔으니까, 생리 다시 돌아왔으니까. 다시 운동을 하면 되겠다.’
등의 생각들은 다시금 섭식장애의 지름길로 인도하는 가장 빠른 사고다.
섭식장애는 몸과 음식과 관련한 질병만이 아니다. 다시 음식을 먹어줌으로써 몸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회복될 수 없다. 위에서 얘기한 방법은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식이장애는 본질적으로 마음이 아픈 것이다. 영혼이 아픈 것이고 대부분 몸과 얼굴에 대하여 심각하게 자아상의 이미지가 깨져버린 상태다. 그러니 이 마음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몸부터 다시금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힘을 얻어 진정한 자기 사랑(self-love)을 이뤄가지 않겠는가?
어느 순간이 되면, 그러니까 여기서 어느 순간이라는 것은 음식에 대한 병적인 갈망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말한다. 그 순간이 오게 되면 한 끼 정도는 간식이 생각이 안나기도, 먹는 만큼 양을 그렇게 많이 먹고 싶지 않기도, 과도하게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초콜렛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그 순간을 만나게 된다. 먹방을 중독적으로 보면서 그 음식이 먹고 싶어 미칠정도의 마음이 먹어지지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나는 그 순간이 섭식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에는 의식적으로 세끼를 먹고 간식을 먹지 않아도, 그 뒤에 식단을 짜지 않아도, 하루 종일 머릿속에 음식 생각이 없고 그저 나의 현재의 삶에 몰두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혹시 내가 그런 순간이 올까? 나에게도 오기는 할 건가. 하며 마음이 지치는가?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먹고 싶을 때는 안 먹고 제한하다 결국 모든 음식의 알러지가 다 생겨버렸던 몸이라 이제는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되니 2배로 더 고통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알러지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어 여전히 못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함은 있다. 그래서 더더욱 평생 음식으로부터 자유해질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늘 의구심이 들었는데 정말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알러지 반응이 심하여 먹지 못하는 음식에 대하여 생각나고 그런 것은 있지만 그래도 다음끼를 생각하느라 일상적인 일들을 하지 못하거나 하루 종일 음식 생각을 하는 것은 사라졌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 있는 나조차도 어느 정도 이겨내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당연히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금 음식으로부터 자유함을, 음식과 진정한 화해를,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분 자신과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고 그럴 의무와 권리, 자격이 충분히 있다.
거식증의 회복의 여정을 다시금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2달 정도가 지난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시부모님께서 남편과 나를 보러 오셨고 함께 덕분에 가보지 못했던 주변들을 여행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여행을 다니니 먹고 싶은 대로 먹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이 느낌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염려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저녁쯤이 되어 시부모님과 함께 마트에 갔다. 도착함과 동시에 갑자기 체리가 너무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알러지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었다.) 과일코너에 들어서니 체리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상태는 마트를 가건, 어디를 가건 음식이 보이면 마치 그들이 나를 향해서 “제발 날 먹어줘.” “이제 그만 나를 미워하고 그냥 먹어줘 제발.” 이런 목소리를 들었던 때였다. 오랜 세월 음식을 제한하고 먹지 않고 건강한 음식,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과도하게 나누며 강박적으로 그렇게 음식을 제한했던 결과였다. 그 당시 남편에게만 살짝 얘기를 한 상태였고 시부모님은 전혀 모르고 계셨다. 체리를 먹고 싶었지만 카트에 넣을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이라면.. 눈치 보건 말건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말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싶다고 얘기를 하고 넣었을 테지. 결국 넣지 못하고 먹지 못하여 체리 생각으로 몇 일밤을 지새워야 했고, 결국 여행이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 한동안 체리만 몇 통을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쌓아두고 먹어야만 했다.
만약 여러분이 섭식장애를 겪고 있고 이를 회복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상황이 주어진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 믿을 만한 사람들, 가족들에게 얘기하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는 도움과 이해를 바랄 필요가 있을 듯싶다. 왜냐하면 회복을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 억압했던 식욕과 음식에 대한 갈망들이 폭풍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인데 이러한 당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응원과 지지, 격려의 손길을 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회복이 되는 그 길을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과 환경이 좋지 않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어도 괜찮다.
다만 회복의 여정을 걷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많이 먹어야 하거나 위와 같은 에피소드처럼 먹어야 하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병적으로 심해져있는 상황인데 단체, 사회생활을 하는 도중이라면 반드시 사람들은 당신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이 먹어?’,
‘다이어트 안 해?’,
‘배가 많이 고팠나 봐?’ 등등
여러 가지의 말들로 당신의 회복의 여정을 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말들을 할 수 있다.
그때에 나는 자신 있게 섭식장애를 치료하는 중이라 이렇게 잘 먹어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그런 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제가 요즘 몸이 새롭게 치료되는 과정 속에 있는데 좀 많이 잘 먹어줘야 하거든요’ 하고 웃으면서 넘기는 것도 좋다. 이러한 사람들의 눈치, 평가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섭식장애의 회복의 길을 가는 것을 멈출 순 없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거의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을’ 뿐이다. 그런 소음에 귀 닫고 입 닫자.
소중한 우리의 영혼의 여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