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했던 거식증의 신체적인 이상반응들
지난 11년 동안 거식증을 앓으면서 회복해가는 중이다. 지금도 물론 완전히 완치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특별히 거식증을 겪으면서 경험했던 신체적 이상반응들을 공유해봄으로써 개개인마다 증상과 반응들이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와 비슷한 증상들을 겪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
거식증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살이 쭉쭉 빠지니 몸이 가볍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원래 영양분이 섭취가 되지 않으면 몸에 힘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충분히 먹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넘쳤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태양이 내리쬐는 넓디넓은 바닷가 주변을 몇 키로 이상을 뛰었고 심지어는 그 후에 피곤할 법도 한데 무산소 운동이나 요가로 마무리를 했었으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뭔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 커피 한 10잔 정도들이부은 듯한 그런 느낌 그러니까 자율신경의 각성이 극도로 되어 있는 상태, 기분이 확 좋아지고 텐션이 올라가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조증 증상이 함께 왔던 거 같기도 하다.
그 당시 이런 증상들이 찾아왔을 때 조금 이상하다 신호를 느꼈어야 했는데, 오히려 살은 빠지고 기분은 좋고 활력이 솟구치니 오히려 '아 역시 먹는 것을 덜먹고 운동을 이 정도로 하니 더욱 건강해지나보다.'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몸은 모든 음식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지 않으니 비상사태를 맞이한 느낌이었으리라. 몸은 빨간 비상벨을 누르며 온 몸의 장기들과 세포들에게 비상사태임을 알리면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 모드(survive mode)로 전환하여 여태까지 축적해왔던 모든 에너지들을 힘껏 끌어당겨 탕진을 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부터 불면에 자주 시달려왔었지만 거식증으로 인해 각성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잠을 깊게 자는 것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중간에 작은 소리에도 깼으며 한번 깨면 그 뒤부터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그 날밤은 꼬박 새우게 되곤 하였다.
다낭성 난소증후군(PCOS)은 절식과 음식을 제한하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PCOS를 치료하기 위한 식이습관으로 보통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단을 추천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식단을 바꾸었다. 그러나 문제는 극강으로 탄수화물을 줄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탄수화물을 줄였으면 저탄고지식으로 건강한 지방과 단백질을 풍부하게 먹었더라면 몸이 이 정도까지 심하게 망가지진 않았으리라. 그 당시 나는 지방 자체도 기피했었기 때문에 거의 칼로리가 낮은 단백질 위주로만 식단을 이어 갔으니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리 또한 끊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거식증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머리를 빗으면 한 움큼씩 손에 쥐어질 만큼 빠졌고 늘 화장실 배수구는 머리카락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조금 지나자 원래 사용하여도 아무 이상이 없었던 샴푸, 바디로션을 썼는데 머리와 몸이 마구 가렵기 시작했다. 몸의 면역체계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 6시 조금만 넘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온몸에서 열이 나고 식은땀이 나며 숨이 가빠지고 힘이 쭉 빠지는 증상, 온몸에 근육이 풀리면서 눕고만 싶은 상태가 되었었다. 이때부터 몸에 이상 징후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두고 의학적인 도움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왜 그랬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독소를 배출한다고 내 몸을 망가뜨리며 깔라만시 원액을 물에 타서 자주 먹었었다. 깔라만시를 시작으로 과일을 먹으면 몸이 가렵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 받았고 점점 모든 영양소와 음식들 전체에 알러지가 생겨버렸다. 흰 죽도 겨우 목에 넘기던 그때의 내 몸무게 34kg. 이미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버린 상태였다.
머릿속에 24시간 음식 생각뿐이었다. 먹방을 계속적으로 보았고 일어나서도 먹는 생각, 자면서도 먹는 생각을 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집중을 할 수 없으니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조차도 머릿속에 오로지 음식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시간에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없었다.
소화기능의 저하에 대해서 전에 글들에서 소개를 해왔다. 모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목과 명치가 조여왔으며 심장의 통증, 숨쉬기가 어려웠고 명치와 위쪽이 타는 느낌이 자주 일어났다. 목에는 늘 가래가 들끓었고 그로 인해 만성 인두염까지 앓게 되었다. 잘 먹지 않다 보니 변비는 덤으로 앓아서 변비약을 먹어야만 겨우 대변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
일명 '씹뱉(씹고 뱉는)'을 많이 한 결과이다. 정해놓은 일정량을 먹고 나면 양이 절대 찰 일이 없으니 그 후에 꼭 먹고 싶은 것을 몰래 씹고 뱉어서 휴지로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또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얼음을 녹이지 않고 씹어 먹는 것을 자주 하였다. 이로 인해 치아의 뿌리가 염증이 생기거나 측두하악관절 장애로 인해 3차 신경통, 그러니까 치아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음식을 조금이라도 씹으면 모든 이빨이 빠질 것 같이 아픈 것들을 경험했다. 입이 잘 벌어지지 않고 질긴 것은 씹기 어렵게 되었다.
그 외에도 기립성 저혈압, 몸이 많이 추워져 한 여름에도 옷을 여러 겹 껴입었던 것, 근육이 손실되고 점차 기력이 쇠퇴해져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체력이 고갈됨, 무릎이 시려지고 뼈마디가 쑤신다 등이 있었다.
다음에는 거식증을 경험하면서 개인적으로 겪었던 심리적인 특성에 대해서 나눠보고자 한다.
본 내용은 전문적인 의학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증상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식이장애와 관련하여 다양한 증상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 및 의사와 상의하시길 권장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