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직원들이 너무 남용한다는 한 임원의 말을 들은 적 있다. 조금만 힘들면 번아웃이라고 하는 것 같다며 유행어처럼 퍼져 있다고 했다. 그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돌고 있다는 말 자체에 주목할 만하다. 어떤 단어가 사회에 등장하고 나면, 이전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경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뒤 이와 관련된 신고 건수가 늘었다거나 '소확행'이라는 개념이 커피 한잔, 예쁜 구름처럼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을 자주 기록하도록 이끈 것과 마찬가지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말로 고통을 느끼는 나의 상태를 표현했을 것이다. 여전히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됨에도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쓰인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한시적 상태를 넘어 일종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 덕분에 사람들은 단순히 "힘들다" 보다 더 정확히 자신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번아웃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쉴 줄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는 듯하다. 각종 제도를 통해 근무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지 잘 쉬는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월요일의 필수 스몰토크인 "주말에 뭐 했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나 고단했던 프로젝트가 끝난 후 연차를 쓰고 온 동료의 휴일 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잠을 푹 잤고, 넷플릭스를 봤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쉬면서도 때때로 마음이 공허해지고 다가오는 평일은 더욱 고통스러웠으며 수명이 닳은 배터리처럼 쉽게 방전되곤 했다.
잘 쉰다는 것은 뭘까? 평소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거나, 트레이너로부터 개인 훈련을 받는 사람이라면 휴식과 회복의 차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스포츠과학에서 휴식이란 운동이나 활동을 멈추고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상태, 말 그대로 쉬는 것을 말한다. 잠을 자거나, 운동을 쉬는 날을 가지거나, 멍하니 있는 것처럼 신체의 부담을 줄이고 피로를 완화하는 것이 휴식이라면 회복은 단순히 쉬는 것 이상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를 통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영양을 보충하고, 가벼운 조깅을 통해 근력운동 후 쌓인 젖산을 풀어주는 등 조금 더 능동적인 활동이다. 회복은 운동으로 인해 손상된 근육, 관절, 신경계, 에너지 시스템을 정상 또는 더 나은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휴식은 회복을 위한 준비과정이지만, 휴식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순한 휴식만으로는 운동 중에 손상된 근육과 에너지를 복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하게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는 휴식뿐 아니라 회복의 과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비단 운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휴식은 더 이상 힘을 쓰지 않는 상태이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밀린 잠을 자고, 누워서 휴대폰을 하고, 독서를 통해 잠시 현실을 잊는 것은 휴식이다. 이것은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 시간을 통해 피로를 회복하고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을 통해 일상을 버티고 있다. 휴식이 없다면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피곤하고, 공허하고, 무기력해진다. 일 때문에, 관계 때문에, 욕심 때문에, 때로는 딱히 큰 문제없이도 늘어날 대로 늘어난 고무줄 마냥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회복을 위한 시간'이다. 몸과 마음을 멈추는 휴식에서 더 나아가, 멈춘 자리에서 내가 왜 지쳤는지 돌아보고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복을 위한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 상 중요한 것은 두 종류의 시간이다. 첫 번째, 나를 마주하는 시간. 우리는 남들과 잘 지내려고 애쓰려다 나와 잘 못 지내고 산다. 하지만 가장 오래 함께 하는 것은 나 자신. 그러므로 가장 잘 지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친구의 안부를 묻듯, 나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너(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너(나)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자꾸 궁금해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읽어보지 않을 일기를 쓰는 것. 다시 읽어보지 않을 것이므로 솔직하게 현재의 마음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내 마음의 좌표를 가늠해 볼 수 있고, 좌표가 있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다.
두 번째 필요한 시간은 내 시간의 주인은 내 것이라고 감각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해야 할 일'로 채우며 살아간다. 그것은 대부분 타인을 위한 시간, 결과를 위한 시간이다. 일도, 관계도, 심지어 휴식마저도 타인의 기준일 때가 많고, 이것은 작은 바람에도 마음을 쉬이 나부끼게 한다. 내 시간은 내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늦잠 없이 일찍 일어나 집 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산책을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고,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해보는 것. 이건 내 삶의 핸들을 다시 내 손에 쥐는 것이다.
그러니 잘 쉰다는 것은 자꾸 움직이고, 나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존재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 찾아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나를 쉬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해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것들을 하면서 나를 지키는 시간을 갖는 것,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저 번아웃인 것 같아요"하는 직원들을 나무라기보단 어쩐지 글이 쓰고 싶어지는 노트 한 권 선물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