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H기업에서 주니어들을 위한 성장지원 체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다. 프로젝트의 목표가 '주니어 직원들의 성장'이기에 '성장'에 대한 정의부터 논의되었다. 그즈음 H기업 경영층의 메시지 중 하나는 '모두가 프로여야 한다'였고, 자연스레 '성장'은 '전문성을 갖추어 프로가 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팀원들은 '모두가 프로여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큰 여과 없이 받아들였지만, 나는 내내 '프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목구멍 끝에서 숨 고르기 하고 있었다.
대체 프로란 무엇이고, 또 누가 프로인가. 그것은 어떤 수준이나 경지인가, 그렇다면 "유레카! 나 이제 프로다!"하고 탕에서 뛰쳐나오는 프로의 순간이 오는 걸까? 주위를 둘러본들, "삐빅, 당신은 프로이군요" 혹은 "안타깝지만 당신은 프로가 아닙니다"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프로'가 어떤 것인지 선명히 그릴 수 없었다. 선명히 그릴 수 없으니 목표로 삼기도 어려웠다. 프로가 무엇인지 몰라도 밥값은 해야 했기에 묵직한 목구멍으로 일하던 어느 날, '최종_최종_마지막_최종_최종'으로 보고서를 수정하던 중 팀원에게 "뭘 그렇게까지 해?"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뭘 그렇게까지 해"의 역사는 학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창 시절 시험 날을 떠올리면 중학교 체육시험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체육 필기시험도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50분의 시험시간이 주어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20분 이내로 시험지 마킹을 끝낸 후 엎드려 잔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50분 동안 꼿꼿이 앉아 다 푼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창문으로 솔솔 여름 바람 불어오고 모두가 맘 편히 평안한 시간, 조금 외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50분을 성실히 채웠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체육시험을 뭘 그렇게까지 하니" 하셨다.
그 이후로도 "뭘 그렇게까지 하니"의 순간은 많았는데, 이를테면 행사를 준비할 때 더블에 더블에 더블체크를 하느라 휴대폰 어플에 몇 만보의 걸음이 찍힐 때, 보고서의 자간, 행간, 색상 균일화 작업에 밤샘 작업을 할 때, 설득을 위해 몇 시간이고 릴레이 회의를 진행하고 녹초가 될 때, 대부분 알아채지도 못할 보고서 한 귀퉁이 예시 사진을 작업하느라 주말까지 출근할 때. "뭘 그렇게까지 해"는 타인에게 듣기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기도 하는 말이었다. 정말로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으면서도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사람인 것을 어쩌나' 한숨 한번 쉴 뿐이었다.
'프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하는 중 "뭘 그렇게까지 해?"라는 팀원의 말은 내게 일종의 '유레카?(!가 아니다)' 순간이었는데, 프로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언제쯤, 어떤 수준을 넘어야 프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프로의 마음이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건 "뭘 그렇게까지 해"의 태도이다. 프로는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 사람. 그래서 프로의 마음이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 마음. 아무도 모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를 수 있는 디테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마음. 그리고 그건 조금 더 해보려는 태도인 것 같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한 끗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 끗 차이로 완성이 완벽이 되는 결과를 자주 보곤 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요리를 완성할 수는 있지만 요리사들은 간장을 약간 태운다거나, 액젓 한 방울로 감칠맛을 더하는 것으로 최상의 맛을 낸다. 그저 요리를 맛보는 우리는 "정말 맛있다"겠지만 그 뒤엔 한 끗 차이의 디테일이 있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은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을 감는 속도, 기울이는 고개의 각도까지 세밀하게 연기한다. 관객은 그 디테일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 배우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이유는 몰라도 너무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좋음의 기저엔 저런 디테일이 있을 것이다.
프로의 일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하나하나 일일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 "뭘 그렇게까지 해"의 순간이 지속되길 바란다.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적당히 이기는 노하우가 쌓여도 쉽게 타협하지 않고, '이만하면 됐지'의 순간을 계속해서 미룰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