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가?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정의 어떤 순간을 가장 좋아하는가?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 타입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여행에서 돌아오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이제 집에 간다!' 하는 순간으로, 말하자면 나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할 수 있다. 무릇 여행이란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돌아올 곳이 없는데 떠나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일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퇴사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의 존재였다. 내가 실패해도, 실패해서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돌아갈 집이 있고 반겨줄 가족이 있다는 사실. 가족이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나를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보게 했다.
좋은 조직이 갖추어야 할 요소로 최근 부각되고 있는 개념 중에 '심리적 안전감'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정의로 '구성원이 업무와 관련된 어떤 의견을 제기해도 처벌을 받거나 보복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심리적 안전감이다. 쉽게 말해 조직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믿음인데, 이것이 나는 조직이 구성원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 안전감이 화두로 떠오른 건 빠르게 변화하면서 복잡해지는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둔화된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실수를 인정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늘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도전적인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이전의 세대와는 성향, 가치관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MZ세대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변화의 동력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 속에서 출범한 트렌드가 '주니어보드'이다. 경영진과 직원 간의 소통을 통한 조직문화의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협의체의 성공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실패의 경로는 대개 비슷하다.
트렌드에 민감한 A기업, 젊은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주니어보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누구나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경영진의 의욕적인 선언과 함께 주니어보드 멤버가 선발된다.
주니어보드 출범 초반, 회의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경영진은 제안한 아이디어들을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한다. 선후배 동료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의에서 논의된 안건들을 공유하며 적극적인 멤버들은 자신이 회사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껏 고민해서 낸 아이디어들이 번번이 무산되고 가장 긍정적인 답변이 '검토해 보겠다'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멤버들은 의견이 묵살되는 경험에 자기 검열이 심해지고 결국 침묵을 택하게 된다. 이제 주니어보드는 형식적인 모임이 되어버렸다. 그저 무난한 이야기를 하는 게 이 무의미한 회의를 빨리 끝내는 방법이다.
흔히 MZ세대는 '참지 않는 세대', '할 말 하는 세대'로 인식되어 있지만, 아무리 자기주장 강한 개인일지라도 조직의 관행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말하지 않는다.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개인의 특징보다 조직의 특성에 가깝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 혼자 책임지는 거 아냐?', '괜히 의견 냈다가 찍히는 거 아냐?', '괜히 튀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결국 '말하지 않는 게 제일 안전하다'라는 결론을 만들고, 스스로 자유를 걸어 잠근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 중 가장 놀라워하는 것 중 하나는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지갑과 같은 귀중품을 그 자리에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된다는 점이다. 귀중품을 두고 자리를 편하게 비울 수 있는 것은 내가 자리를 비워도 귀중품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다. 안전함을 느끼면 우리는 훨씬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새로운 경험에 뛰어들 용기를 주기 위해선 '이곳에선 그렇게 해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즉, 내가 속한 팀이 혹은 나의 리더가 내가 비빌 수 있는 언덕이어야 한다.
제너럴리스트는 동시에 많은 그룹에 소속된다. 그 안에서 그룹을 리딩하기도, 지원하기도, 관리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소속은 너무 많은 해야 할 일로 이어진다. 구멍 난 배의 물을 퍼내는 심정으로 일하다 보면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는데 바로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태도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이 배를 침몰시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옳고 그름 따지기'라는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속도를 올린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태도는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감을 뺏는다. 그것은 크건 작건 논쟁을 유발하고, 논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의견을 나누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거부당한 경험은 다음번에 의견을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지게 하고, 내가 어떻게 말해도 받아들여진다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심리적 안전감을 잃게 된다. 그래서 대개 논쟁에서 이긴 쪽이 얻는 결과보다 진 쪽의 대미지가 크다. 따라서 반드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들 필요가 없다. 틀린 것으로 보이는 의견이라도 일단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틀림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는 마음으로 일을, 동료를 대한다면 우리는 더욱 자유롭고 더욱 창의적이고 더욱 도전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