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란 참으로 독특해서 조사 하나로 말의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애는 착해'가 있다. 어쩐지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살려 "애~는 착혀어~"하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이 말은 '애가 착해'의 조사 '가'가 '는'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애가 착해'가 그 사람의 착함을 순수하게 칭찬하는 말이라면 '애는 착해'는 그 사람의 무지나 무능을 착함으로 두둔하는 것으로, 상황에 따라 조롱이나 비난의 용도로 사용되곤 한다. 우스갯소리로 "사람은 착해"라는 말은 직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욕 중 하나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그 말의 앞뒤에 "일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혹은 "그런데 센스가 없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직장인에게 "센스(혹은 일머리)가 있다"라는 말만큼 기분 좋은 칭찬도 없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 중에 센스라는 단어만큼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 "사람이 센스가 없네"라는 말로 뭉뚱그려 비난하고 말아 버리는 것만큼 무책임한 피드백이 없다. 센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으니 이것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난감할 수밖에. 대체 센스란 무엇일까?
센스 혹은 일머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맡은 일을 잘 해낸다를 넘어 일에 대한 거시적 이해력과 상황판단능력, 문제해결능력 같은 것들이 종합된 개념이다. input을 넣으면 output이 나온다고 했을 때, 센스나 일머리는 input과 output 사이 process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냉장고 속의 재료(input)로 요리(output)를 내놓을 때, 요리 방법이나 요리에 걸리는 시간 같은 것(process)들이 센스인 것이다. process에 따라 output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줄어들거나, 훨씬 좋은 output이 나올 수 있다.
센스는 흔히 타고나는 것, 어느 정도 선천적인 재능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경험이 쌓이면 누구라도 업무에 능숙해진다. 하지만 업무 경험이 거의 없는 인턴사원들과 일할 때, 같은 업무를 시켜도 업무에 능숙한 이들이 해내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원들이 있다.
1. 상황 : 행사장에서 사용할 다과를 준비한다
- 직원 A : 맛있어 보이는 다과를 사서 박스를 차례대로 뜯어 놓는다.
- 직원 B : 개별포장 된 다과를 사서 박스에 보기 좋게 줄 세워둔다.
2. 상황 : 100명 이상의 명찰을 제작한다
- 직원 A : 제작 완료한 명찰을 20개씩 묶어서 정리한다.
- 직원 B : 제작 완료한 명찰을 가나다순으로 분리하여 정리한다.
3. 상황 : 비품실에서 포장용 박스를 챙겨달라고 요청한다
- 직원 A : 비품실에서 포장용 박스를 챙겨 온다.
- 직원 B : 비품실에서 포장용 박스와 박스 테이프, 칼을 챙겨 온다.
여기서 센스 있는 직원은 당연히 직원 B이다.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센스란 마치 지능처럼 타고난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하지만 타고나지 않은(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상한 얘기 아닌가. 그래서 직원 B의 행동을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혹시 직원 B의 행동이 학습을 위한 예시로써 너무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가? 그러나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그 정도를 하는 사람은 잘 없는 법이다. 여기서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직원 B가 사고하는 방식이다.
직원 A와 B의 결정적인 차이는 '어느 쪽에 서서 사고하는가'이다. 내가 해야 하는 행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A와 달리 B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먹을 사람'이 편하고 보기 좋은 방식으로, '명찰을 찾을 사람'이 편한 방식으로, 포장용 박스를 '주문한 사람의 입장'에서 박스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사람을 배려하게 된다. 배려하기 위해 관찰하게 되고, 말이나 일의 맥락을 고민하게 된다. 마치 연애를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어 종종 대는 마음과 같다. 그래서 센스란 결국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정말 센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로 박경림 님을 꼽는데,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서 그의 착장은 늘 화제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제작발표회에서는 극 중 진행요원의 핑크 슈트를 연상케 하는 착장을, 영화 '검은 수녀들' 제작발표회에서는 수녀를 연상케 하는 올블랙 드레스에 십자가 목걸이를, 드라마 '체크인한양' 제작발표회에서는 청춘 로맨스 사극에 어울리는 화사한 한복 스타일을 입었다. 작품의 장르나 분위기에 맞춰 세심하게 의상을 골라 입은 모습은 나보다 영화가 돋보이도록, 즉 상대방을 생각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센스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이것은 가위를 전달할 때 가위의 손잡이 부분이 상대방에게 향하도록 전달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다 보면 배려하게 되고, 배려하려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하다 보면 상대방보다 상대방을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그 지점이 바로 센스의 지점이다. 일머리도 마찬가지. 파트너, 클라이언트, 동료, 상사가 원하는 바를 빠르게 캐치하는 것. 심지어 그들이 원하고 있다고 몰랐던 것에 대해서도. 그러니 우리 배려해보자.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내게 유리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