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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06. 2020

글쓰기를 한다는 일은 마음껏 슬퍼하는 일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메멘토

"글쓰기를 한다는 일은 마음껏 슬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슬퍼한다는 것은 온전한 내가 되는 일 같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후련하게 말하기. 기쁨을 내밀듯이 슬픔을 꺼내놓는, 존재의 편안한 열림을 글쓰기가 돕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열어젖혀진 존재 위로 또 다른 말들과 생각들이 날아들 것이다"


마포도서관에서 예약도서 대출 안내 문자가 왔다. 

예약한 기억도 없고 홀린 듯 구매했던 책들과 노조책방에서 빌려온 책들이 잔뜩 쌓여있어 예약을 취소하려고 했다.


멍하니 인스타를 보다 사적인서점이 잠실교보에 입점한다는 피드를 보고 이 책을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났다. 몇 달 전 책읽아웃에서 사적인서점 운영자이자 작가인 정지혜님이 가장 많이 처방했던 책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던 그 책이었다.



"글쓰기라는 장치를 통해서 나를 세속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는 것들과 잠시나마 결별할 수 있으니, 관성적 생활 패턴에서 한 발 물러서는 기회만으로도 글 쓰는 시간은 소중하다"


"내남없이 그렇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쓸모를 세뇌당한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쓸모의 척도는 물론 화폐다. 내 앎이, 내 삶이 교환가치가 있는가. 잉여가치를 낳는가. 제도교육은 남보다 교환가치가 있는 인간, 곧 임금 노동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육 과정이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품으로 맞춰지면서 본성은 찌그러지고 감각은 조야해진다"



갑자기 꽂혔다가 금세 잊히는 것들을 적어두는 노트를 한참 찾아보니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나답게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적어두었다.


나답게 쓰는 법이라. 


개조식의 문장을 작성하고 문장을 뒷받침하는 갖가지 근거들을 고객님이 좋아하는 용어로 정리하고, 컨트롤 알트 엔과 더블유를 오가며 한 단어가 쪼개진 채로 줄바꿈 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수년 간 반복하면서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점점 어색해졌다.


내 상태를 인지하지도 못하다가 어느 순간 깨닫고 덜컥 겁이 났던 내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어떤 대단한 담론 논쟁이 오간 게 아니고 저마다의 소소하고 때로 절절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뿐인데 잔잔한 깨침이 온다. 아마도 한 존재의 깊고 내밀한 느낌은 사적인 게 아닌 것 같다. 모든 존재가 깊은 심연에서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받아 든 책은 많은 이의 손을 거친 듯 해지고 낡아있었지만 누군가의 에코백에서 스며든 것인지 아니면 어떤이의 방에서 입혀진 것인지 모를 향기가 책장마다 은은하게 배어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었을 향기로운 누군가 덕분에.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 막힌 삶을 글로 뚫으려고 애썼다. ...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7월 어느 날, 

레몬오일을 품은 초가 타고 있고, 적당히 시원하고 쾌적한 여름 저녁에 어울리는 재즈가 가득 찬 책상에서 책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내가 만들어 둔 작은 상자를 두드리고 두드리다가 바닥이 조금씩 넓어지는 그림이 떠올랐다.


내가 만들어 놓은 작은 평면이 조금씩 넓어지는 느낌. 


여전히 벽은 높고 두껍지만

여전히 내게 보이는 하늘은 아주 작고 멀리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고 생각을 하고 이런 과정을 계속 거치다 보면 약간은 더 넓은 하늘을 보고 생을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아예, 벽을 뛰어넘고 다른 상자를 만들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날아다니며 상자를 고르거나 아예 저 구름 옆으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이번엔 어떤 상자로 가볼까, 하고 골라 볼 수 있겠지.


고맙다.


고맙다.


나에게 고맙다.


찰나에 스쳐 지나간 그림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사색할 기회를 준 내가 고맙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조용하지만 꽉 찬 환희와 벅참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환한 빛을,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자.



"다만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 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우리 어서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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