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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Jun 25. 2020

나 스스로에게 사려 깊은 사람

애쓰다 지친 나를 위해, 서덕, 넥스트북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내 의식과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은 관습이 나를 쥐고 흔들 때 '아니 얘, 잠깐만' 하고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다른 이들도 '노력'해야 되는 일이라는데 나도 '노력'하면 되겠지! 하는 용기.


'무엇을 해야 잘 쉬는 걸까'

'특기는 애쓰기와 버티기였다. 특기 덕분에 밥을 사 먹고 월세를 낼 수 있었는데, 특기 때문에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을 얻어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지기도 했다.'


책 제목만 보고 뻔한 위로의 글인가 싶었는데,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을 보고 망설임 없이 골랐다.


문장 하나하나, 전부 내가 쓴 줄 알았다.


"쉼에 있어서도 쓸모를 생각하기만 했다. 생산적인 취미 따위를 하며 쉬었고, 인간관계를 위해 사람을 만나며 쉬었다. 마냥 쉬더라도 그 쉼에는 명분이 있었다."


취미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 나를 위해 선택했고,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일에도 의미부여를 해가며 무언가를 남기려고 했다. 그게 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이렇게나 생산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야! 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몸은 피곤해서 쉬고 싶어 하는데, 나A는 절박하기만 해서 나를 한계치로 밀어붙인다. 견디지 못한 나B는 파업을 일으킨다. 소소하게는 집중하지 않고 딴 짓하는 형태로, 크게는 몸의 주도권을 빼앗는 공황이란 형태로."


지난 2주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난주는 완전 그로기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넷플릭스를 bgm 삼아 폼롤러 위에 누워 한동안 가만히 있어야지만 어찌어찌 씻고 잠을 잘 수 있었고 주말 이틀 내내 꼼짝도 안 하고 내리 잠만 잤다.


이번 주는 매일 부러 일찍 퇴근했음에도 머리와 마음이 버석거리는 상태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조책방에 주문 요청한 책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읽을 책도 많고, 수채화가 하고 싶어 주문한 컬러링북도 2주째 펴보지도 못한 채 책장에 그대로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5시 20분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져서 수영은 꼬박꼬박 잘 갔다. 수영 갈 생각만 하면 어찌나 신이 나는지 마음은 참 신기하다)


일이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지칠만한 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마어마하게 지쳐버렸다.

예전 같으면 뭐지, 왜 오바하지, 뭘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 허덕거리지, 그냥 하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닌가- 했을 텐데. 이제는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 꽤나 일을 재밌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실은 정말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구나- 하고 알아준다.


"뭐든 생산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계속 안절부절못했고, 불안한 나에게 나는 계속 말을 건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던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9월부터 쉬겠다고 결정한 것도 겉으로는 책임감 있는 결정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내 상태를 내가 못 견딜 것 같은 두려움이 큰 거다. 내가 나를 두려워하다니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내가 나를 못 믿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여전히 우울과 불안은 불쑥불쑥 찾아온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정체모를 감정이 아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나는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대략은 안다. 나를 관찰하는 내가 있기에, 나는 이제 그 감정들의 원인들을 안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안다. 물론 그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은 어설프고 버벅대지만, 조금씩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나와 꽤나 오래 함께한 불안과 눈물에 고마워하며 마음과 머리와 몸이 전부 버석거릴 때까지 몰아치지 않고 쉼을 허락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가만히 침잠하는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모두들, 잘 쉬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잘 무의미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잘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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