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취향, 김민철, 북라이프
"수많은 실패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로늦게'를 응원한다. 아직 우리에겐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니까."
친한 언니가 바로 곁에서 '달라도 괜찮다, 좀 흔들려도 괜찮다, 너무 늦은 것 같아 조바심 나는 그 마음도 괜찮다'라고 조곤조곤 말해주는 것 같은 책.
"믿을 수 없겠지만 내 기준에서의 여행 준비는 '어느 도시에 갈 것인가?', '그 도시에 얼마나 머물 것인가?', '어떤 숙소에 머무를 것인가?'가 거의 전부다 ...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갑자기 숙소 사이트를 켜고 '이 집에 머무르면 어떨까?'를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유형이랄까. 말하자면 여행 준비를 공상에 다 쏟아붓는 사람이 바로 나다. ... 숙소에 짐을 풀고 나면 그제야 허겁지겁 가이드북을 뒤적이다가 결국 되는대로 돌아다니는 게 나의 여행 취향이다"
살면서 만나 본 적도 없고 (아마도) 앞으로 만날 일도 전혀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과 취향을 완벽히 공유하는 느낌은 짜릿하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하는 묘한 안도감과 본인의 취향을 글로 풀어내고 책으로 엮어 내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이 동시에 튀어 오른다.
출근하면 일단 카약에 들어가 세계지도를 펼쳐두고 당장 출발할 수 있는 항공권을 검색하고, 트립어드바이저에 전 세계인이 남긴 리뷰를 읽어보고, 에어비앤비에서 숙소와 트립을 검색하는 일련의 루틴을 거쳐야 그나마 업무를 시작할 힘이 생긴다. 일하는 나를 끄집어내기 위한 일종의 달래기 행위인 것이다.
여행을 상상하는 일은 행복하다. 여행 준비가 귀찮고 번거로워 패키지여행이 편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행'이라는 일련의 행위에서 가장 신나는 파트가 준비하고 공상하는 일인 나는 아마도 저 말을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내게 여행 준비는 숙소와 비행기를 정하는 일이다. 다이빙을 하는 여행이라면 다이빙 샵을 정하는 일까지만. 일하다가 갑자기 꽂혀서 어딘가로 가는 티켓을 구매해 두고, 가기 직전에 느닷없이 또 꽂혀서 숙소를 정해두면 그걸로 끝이다. 그 사이에나, 그 이후에는 심드렁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아 여행 왔지' 하는 마음이다.
어디서 뭘 먹을지, 어떤 곳을 방문할지 이런 건 가서 정한다. 카페에서 놀고 싶으면 놀고, 걷고 싶으면 걷고, 사람 구경하고 싶으면 하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 되는대로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짜인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오면 '내가 이렇게나 무계획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언제까지 계획에 갇힌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고 잠깐 비관에 절었다가 금세 '나 님 먹이고 입히려면 그래도 일을 해야지' 하고 슬슬 달랜다.
"팔레르모 대성당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취향이 조화롭게 빛을 발하는 사람. 하루는 이 취향에 푹 빠지고, 하루는 저 취향에 목을 매고, 또 하루는 또 다른 취향에 기꺼이 마음을 뺴앗겨버리는 사람. ... 그리하여 모든 취향의 역사를 온 몸에 은은히 남겨가며 결국 자기만의 색깔을 완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오래 걸리더라도 팔레르모 대성당처럼"
'팔레르모 대성당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고 한 대목에서 조르바같이 살겠다던 나의 결심을 떠올렸다. 이제는 대체 조르바가 어떤 인간인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예전의 결심이지만.
대학 생활 내내 도피처였던 도서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고 난 이후로 '역시 적당히 사는 게 좋은 인생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조르바를 찾았다. 꽤 오랜 기간 자주 찾았다. 심지어 대학원 졸업기념책자였나, 아무도 읽지 않는 그런 기록물에 다들 '부모님 교수님 랩실사람들 감사합니다'를 외칠 때 '나는 조르바같이 살겠다!' 고 공표했었는데, 잊었다. 몇 년 동안 완전히.
지난달 서울 집에 다녀오며 조르바를 들고 왔다. 새로 사도 되는데, 내가 읽고 또 읽었던 꼭 그 책이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라 굳이 들고 왔다. 읽을거리와 볼거리는 넘치고 내 마음에는 아직 여유가 없어 조르바를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너 왜 그렇게 사니- 하고 조르바에게 엄청 혼나는 느낌일 것 같아 피하고 있다.
조르바처럼 살겠다는 다짐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하는 마음도, 다 내가 만들어낸 틀이고 구속이다. 다짐하며 스스로를 달래온 것도 나고, 까맣게 잊고 귀와 눈을 닫은 채 산 것도 나다.
선택은 나에게 있다. 내가 만든 지옥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관대하게 나를 나 자체로 받아들이고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관대하다니, 이건 욕인가 칭찬인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분야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