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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19. 2020

한 달

자연이 주는 위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지낸 지 벌써 한 달이다.

애초에 인간은 가만히 쉬면서 자연을 만끽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물론 여전히 느닷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기도 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그냥 이대로 증발해버리면 좋겠다고 악을 쓴다.


많기도 많고 높기도 높은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오른쪽 뒷바퀴가 빠져서 차가 전복되거나 마주 오는 차와 충돌할 것 같은 생각에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그러니까 매일 여러 번) 내 단골 증세들이 나타나고(그래도 점점 나아지는 중이라 운전은 계속한다),


인적이 없는 숲이나 오름을 걸을 때면 내가 당장 무참히 살해당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안 써도 되는 에너지를 엄청 써버리기도 한다. (이건 좀 강해서 이제는 유명한 오름만 간다)


...


다들 후루룩 사진 찍고 떠나는 광치기 해변에 멍하니 앉아 파도를 보며 마음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평생 가지고 있던 이 불안은 파도처럼 왔다가 파도처럼 가는 녀석들이고 앞으로도 쭉 품고 가야 하는 나의 일부라는 것.


존재 자체를 외면한 채 평생을 억누르고 부산하게 살다가 이제라도 알아 주니 대책 없이 높은 파고와 파장을 갖고 있던 녀석들이 아주 조금씩 몸을 낮추고 있다는 것.


...


오랜 시간 달고 살았던 오른쪽 무릎 통증의 원인이 발에 있다는 것을 제주에 오기 직전에 알았다.


신기하게도 오자마자 등록한 요가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발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 걸음마를 새로 배우는 사람 마냥 발 사용법을 익히자마자 온갖 치료를 받아도 그대로던 통증이 줄어들고 있다.


발에 힘주는 법을 배우고서야 서서히 사그라드는 통증처럼

불안과 우울을 품고 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나면 나의 모든 증상들도 서서히 사라지겠지.



매일 흙과 모래를 밟고 햇빛과 바람을 만끽하면서 힘을 기르는 중이다.


그 힘을 다 기를 때까지는 여기서 자연이 주는 위로를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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