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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듬 Oct 01. 2020

제주

Sep.19, 2020~


눈을 뜨자마자 매일 다른 모습의 성산일출봉과 일렁거리는 일출을 마주할 수 있는 곳

제주에 왔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슬렁슬렁 운전을 했고,

배를 구경할 새도 없이 새우마냥 쭈그린 상태로 꿀잠을 자다가 제주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 제주에 왔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리고 일출봉을 보며 멍 때리기 연습을 하고,

시간 맞춰 요가원에 가고 좋은 이들과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날이 좋으면 오르기 쉬운 오름을 가고

날이 흐리면 미술관에 가거나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수채화 놀이를 한다


집 앞 오일장이 열리면 좋아하는 무화과를 잔뜩 사두고 갈증이  때마다 썰지도 않은 무화과를 수시로 먹다가

마음이 내키면 근처 산책을 하고 동네 밥집에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잔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왔다


어디를 다닐지, 무엇을 먹어볼지, 언제 어디로 돌아갈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일출봉 사진을 하나씩 찍는 것 말고는, 주 3일 요가원에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일정이 없다


제주 다이빙 포인트를 싹 훑고 갈 계획은 있었는데

해투를 못 간 다이버들이 몰려 정신이 없고 시야마저 너무 안 좋다는 요가원 친구 얘기에

굳이 안 해도 아쉽지 않은 마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조급해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하루 만에 적응했고 벌써 열흘이 지났다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 날짜 개념도 요일 개념도 사라졌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를 생각해보려고 왔는데 그런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때가 되면 생각하겠지




지금은 그저 이 평온함을 충분히 누려야지


 왔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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