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쌤앤파커스
"인생의 어떤 구간을 건널 때 누구나 항아리를 받게 된다. 정확한 명칭은 '눈물항아리'인데, 각자의 신장에 따라 1리터 짜리 항아리를 받기도 하고 3리터짜리나 12리터짜리를 받기도 한다. 눈물항아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마음속에만 존재하는데, 그 안에 든 눈물을 다 쏟을 때까지 슬픔과 고통은 지속된다. 그것은 일종의 숙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숙제를 하듯 매일 눈물을 쏟았다"
3월의 어느 토요일, 작년 여름부터 매주 하고 있는 심리상담을 하러 연남동으로 가는 길. '산문집이니 가볍게 읽을 수 있겠지, 다들 집콕 하는 중이니 카페에 자리가 있겠지'하고 대전에서부터 책을 들고 갔다. 상담이 끝나고 간 좋아하는 카페에는 놀랍게도 자리가 없었고 맥이 빠진 채 다시 대전으로 들고 온 뒤 책상 귀퉁이에 두었다. 그렇게 읽기를 미루고 미루다 반납이 하루 남은 날, 밀린 숙제를 하듯 책을 펼쳐 들었는데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프롤로그를 읽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내가 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왜 사람이 자꾸 사라질까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도서관에서 책은 안 읽고 사라진 사람들을 상상하고, 새로 온 예의 없는 사람들은 미워하고 다음 날 다시 그리워한다. 앞으로도 여행 갈 일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여행 보내는 일을 반복할 것 같다"
작가가 도서관에 대해 쓴 생각들을 읽다 보니 나의 도서관 생활이 생각났다.
말도 안되는 입시 기간을 견디고는(누가 보면 공부 정말 열심히 한 줄 알겠지만, 매일 밤 정지영의 스윗뮤직박스와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꼭 들어야했고, 틈나는 대로 명동과 광화문 한복판에서 친구와 데굴데굴 구르기 직전까지 웃어야 살 것 같던 고등학생이었다) 어영부영 공대에 갔다. 그러다 나와 맞지 않는 수학 수업들이 전부 '필수 교양' 수업인 걸 보고 '아 인생 망했네. 이제 어떻게 살지' 하다가 도서관 서가로 피해버렸다.
"나는 나에게서도 달아났다. 상습적으로.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도 애인도 해변에 쓸려온 미역 줄기처럼 쓸리는 대로 살았다"
공대 공부가 재미없었던 나는 학비의 억울함을 책으로 풀었다.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원이니 만 원 짜리 책을 400권을 읽으면 일단 돈은 아깝지 않겠구나. 어이쿠 그럼 대체 하루에 몇 권을 읽어야 하는거야. 에이 안되겠다. 그래도 한 학기에 100만원 쯤만 내는 꼴이니(장학금이 아니다.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장학금이라니,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아빠 회사에서 지원되는 돈이었다) 한 학기에 100권을 읽으면 되는구나!'
수학을 싫어하던 이과생은, '교양'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벅찼고 그렇게 나의 대학 시절은 한숨이 가득했다. 그 때라도 안 늦었으니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적당한 대기업에 가서 적당한 밥벌이를 하고 적당히 내가 원하는 것들을 사면서 살아야지' 이런 생각 말고, 폴 오스터가 내게 전해 주는 말에, 파크리트 쥐스킨트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끊임 없이 해주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을.
그래도, 그나마 그 때의 내가 퀴퀴하지만 따뜻했던 책향기에 취해가며 읽었던 무수한 책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이틀 후 다시 갈대숲 정신과를 방문했다. 우습게도 약국에서 약을 잘못 준 바람에 맞는 약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에는 그게 우울증인지 몰랐으므로 극복일기만 1년간 스물 다섯 권을 썼다. 치료를 못 받은 덕에 필력만 늘었다"
"강에서 차카게 살자가 나를 웃게 했다. 차카게 살자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공황이 왔는데 약이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도와주었다. 수강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방 속에 있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주섬주섬 꺼내서 이건 우울증 약, 이건 공황발작 약, 이건 심장에 좋은 약, 이건 수면제, 이건 불안을 잠재워주는 약....., 뭐 이런 식으로, 은도끼 줄까 금도끼 줄까 하며 약을 건넸다고"
내 탓이 습관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혼난 것도 내 탓, 맞은 것도 내 탓, 선생들이 헛소리를 한 것도 내 탓, 우울증인 줄 모르고 공황상태인 줄도 모르고 그냥 넘긴 것도 내 탓. 모든게 내 탓이었다. '아 내가 이렇게 못나서 그들이 나에게 이랬구나'의 내 탓이 아니라 '왜 그 때 아무 말 하지 않았나, 왜 그 때 저항하지 않았나, 왜 생각해보지 않았나'의 내 탓.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가 머리와 삶에 뿌리깊게 박혀 있었던 나는 감정의 파도와 우울의 휘몰아침을 정상이 아닌 상태로 생각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울어대는 내가 비정상인줄 알았다. 몇 년을 그랬지만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그저 가끔 홀몬이 미쳐 날뛴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정상이 아닌가.
땀 흘리고 운동한 뒤 개운해하는 것도 나고, 생각이 너무나 후진 인간들이 옆에서 말 거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나고, 회사에 엉망인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을 보며 매일 기분이 상하는 것도 나고, 남이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맛있는 커피를 가끔이라도 먹어줘야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나고, 음식 하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는 것도 나고, 갑자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대며 목놓아 우는 것도 나다.
나는 정상도 정상이 아닌 것도 아닌 그냥 나다.
동생의 강력한 권유로 작년 여름 부터 상담을 시작하고 몇 년을 읽지 않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으로 도피했던 대학생 때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한국 작가들의 에세이와 수필을 이제는 읽을 수 있다. 남성 작가들 글에 켜켜이 끼어 있는 가부장적인 사고를 견디지 못하고 덮어버릴 때가 많았던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르게 여성 작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 아닌가 싶다. 물론 '감정'에 대한 나의 이해폭이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여전히 내 탓을 하고, 여전히 방어적이고, 여전히 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미숙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 나아지고 있다.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본인의 상태에 대해 담담히 고백한다. 그것 자체 만으로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나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읽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 그저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 글을 보며 위로 받을 수 있는 걸로 충분하다.
"다만 우리가 어느 날 정신이 안 아프게 되었을 때,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에 이상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상처도 받지 않고 그저 웃어넘기는 덜 꼬인 인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