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겨울에서 봄으로

by 런던브릭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정원과 윔블던파크의 모습에 반했다. 하지만 손톱만큼 보이는 호수를 따서 집 이름을 Lakeview라고 지었다는 건 좀 과장이다 싶었다. 그런데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고, 이 집에 산지 반 년이 지나서야 무성했던 잎사귀가 모두 사라진 틈새로 넓은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호수가 저렇게 넓었었나, 매일 바라보며 감탄했는데 며칠 전에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다가 또 그제서야 호수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바로 며칠 전에도 엄청 컸던 호수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싶어서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4/2만 해도 앙상한 나무였는데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4/11부터는 잎이 가득하다. 오늘 다시 보니 이미 잎이 무성한 여름 나무가 되었다. 열흘만에 나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나뭇잎이 자랐다니 잎을 보고 있으면 자라는 게 보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며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2020.4.2
2020.4.11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경이롭다.
계속 될 것만 같던 겨울이 봄으로 바뀌고 두꺼운 옷이 얇아지는 것,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닌데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제에서 오늘, 오늘에서 내일은 그 변화를 모르겠는데 어느새 뒤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바뀌었을까 싶다.

난 "자연스럽다"는 말이 좋다.
억지스럽지 않은 변화이지만, 그 안에 분명한 방향이 있는 물 흐르는 듯한 변화를 볼 때 사람의 움직임과는 격이 다른 창조주의 일하심을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의 모습이 세련되다고 느끼는 것은 멋진 옷차림이나 교양있는 말투같은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고 무리없이 본인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경우였던 것 같다.

나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았을지언정,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나도, 그리고 남도 답답하기도 했었고,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면 조급하기도 했었다. 매 순간, 아니 모든까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중요한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물으며 걸어왔는데,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살다가 다시 방향을 묻고 있다. 순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lockdown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Tesco에서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배달온 기념으로 마늘 3망을 까서 편썰어 놓으면서 기도를 하는데 세상에...이렇게 기도가 달 줄이야. 기도하기 위해 마늘 까야하나 싶을 정도...암튼 마늘 다 까며 기도하고,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글을 쓰고나니 오늘 밥값은 다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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