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살아보니...
나는 작년 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14년 차 워킹맘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한창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8살, 6살 사내 녀석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고군분투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그것은 내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였고, 업무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였으며, 한 나절이나마 육아와 살림의 의무를 당당하게 면제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 초, 남편이 런던으로 3년의 발령을 받게 된다. 그동안 출산과 육아 휴직을 번갈아 가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았던 직장생활이었다. 1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던 곳이었고, 나름 인정을 받으며 이제야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어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동시에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하는 끝나지 않는 노동에 내 삶의 2막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때이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주변에도 물어보고 고민했으나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 직후에는 엄청난 자유와 홀가분함에 매일 아침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는 이런 큰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할 기회를 얻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자각,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하는 자기 연민, 나를 정의하고 나를 인정했던 명함이 사라졌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곤 했다. 마치 내 등 뒤에 ‘경단녀’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 마냥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퇴사 후 10개월 차 초보 런더너로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픽업 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가끔은 학교 엄마들을 만나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하교 후 아이들 간식을 먹이고 공부 좀 봐주다가 저녁 차리고 나면 곧 아이들 재울 시간이다. 뭐 하는 거 없이 바쁘다는 표현은 딱 나를 위한 말인 것만 같았다.
가끔 영국의 비오는 겨울 날씨가 내 기분을 한없이 울적하게 만드는 어떤 날에는 회사를 퇴근해서 집으로 출근한다며 투덜거렸던 지난 워킹맘 시절을 떠올리며 그래도 퇴근이란 걸 하루에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던 그때가 더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나도 아쉽지 않게 돈 벌던 여자였는데...’, ‘해도 티 안나는 이 살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런던 생활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답도 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감정을 걷어내고 차분히 돌이켜보면 그것이 나의 잠깐의 투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비로소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전력 질주하는 삶은 젊은 날의 로망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의 세계관은 예전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하지만 이미 수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그 방향이 무엇인지, 그 방향에 맞는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하루하루 내게 닥친 미션들을 쳐내기에 급급해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낯선 땅에 나와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2막에선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가... 10개월 이방인의 시간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귀찮게만 느껴졌던 살림을 통해 오묘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전에는 회사에서 하는 몇 천억짜리 프로젝트가 가장 중요한 줄 알았는데, 그보다도 살림을 하며 내 터전을 가꾸는 일이 내 삶을 훨씬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의 프로젝트는 회사의 우선순위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무엇을 먹을 것인가, 집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내 삶의 우선순위에 따른 것이었다.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던 집안일들이 알고 보니 나를 공부하는 일이었다.
퇴사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통해 나의 직업이 없다는 것이 내가 퇴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경력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과 그들의 눈에 근사해 보이는 것을 위해 달려왔던 서울의 워킹맘 라이프를 떠나고 나니 그제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바라보던 내 모습이 아닌, 나라는 사람 본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과 나를 구별하지 못하던 갓난아이가 본인의 존재를 세계 안에서 발라내며 자신을 알아가듯, 나는 오늘도 이 낯선 땅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씩 깨달으며 나 자신을 오롯이 알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나의 시작은 뒤늦게나마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 출발했다. 내가 다시 서울에 돌아가면 그때는 다시 예전의 경력을 이어가지는 못할, 아니 않을 것이다. 나를 드디어 알게 되었는데 나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를 위한 나의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