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런던브릭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가장 멋있어 보였다.

대학교 다닐 때는 뭔가 자기가 달려갈 방향을 잡고 거침없이 달려가는 사람이 매력적이었다.

회사에 오고 나니 돈 잘 버는 사람이 대단해 보이더라.

그런데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앞에 나열한 것들은 "그래, 그땐 그랬지." 이런 마음이 든다.

바로 건강한 가정을 잘 꾸려가는 사람들이 내 동경과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다음 단계는 아이들 다 키운 후일 테니, 앞으로 15년 이상은 이런 맘으로 살아가지 않겠나 싶다.


이런 마음 때문일까.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의 가정이 궁금하다. 회사에서의 모습은 누구나 가면 하나씩 쓰고 일하는 공간이라고 인정한다 치고, 자기의 가면을 벗고 생활하는 가정에서 그 사람은 어떤 아빠일까, 어떤 엄마일까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래서 여러 번 만나면서 조금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을 때쯤 되면

"주말에는 주로 뭐하세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이랑 뭐 하면서 놀아주세요?"

"집안일은 잘 도와주세요?"

뭐 이런 질문들을 하다 보면 대화 속에서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조금씩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누구나 가정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뭐는 옳고 뭐는 그르다 라고 섣불리 말하기엔 내 경험과 지혜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가정을 우선순위에 놓는 사람의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이 높다는 게 내가 경험한 결과이다. 일, 친구, 취미 등등에 쏟는 에너지는 마치 파도 앞의 모래성을 계속 높이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달까... 어느 순간, 파도가 밀려와서 모래성이 무너지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정은 집의 기초를 다지는 것과 같아서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만큼 가정은 튼튼해지기 마련이다. 가족은 쉬이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을뿐더러 끝까지 서로를 지켜주는 보호망이 되기도 한다. 물론 기초를 어떻게 쌓아가느냐 또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나의 시간과 열정을 변치 않을 것에 쏟을 것인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도 모를 불안정한 것에 쏟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좋은 부모 밑에서 다복하게 자란 사람이 좋은 가정을 꾸릴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다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평범치 않은 인사이트를 갖고 탁월한 엄마 아빠인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깨어진 가정에서 자랐거나 상처가 많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상처로 인해서 좌절하고 그것이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고 그래서 그로 인한 아픔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했을 때의 파워는 온실 속에서 이쁘고 곱게 자란 사람들의 파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이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상처는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상처가 내 실패의 면죄부가 되게 하여서는 안 된다. 상처는 나의 연약함을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결국 그것을 극복한 자아는 세상이 감당 못할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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