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출근길 단상

아침부터 싸우지 마요

by 런던브릭

9호선으로 출근을 한다. 7호선도 있지만 아침에 고작 5분 일찍 나오는 게 어려워서 노량진에서 선정릉까지 9호선을 이용한다. 급행을 타면 노량진-선정릉이 16분 밖에 걸리지 않으니 꽤나 매혹적인 루트이긴 하다. 그런데 출근길에 9호선 급행열차를 이용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은 정말 상상초월이다. 누군가 나에게 지옥에 대한 이미지를 이 세상에서 찾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출근길 9호선 급행열차"를 꼽겠다.


오늘도 아침에 둘째녀석의 응석을 받아주느라 평소보다 10분 늦게 나오는 바람에 다른 옵션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9호선 급행에 몸을 싣는다. 아니나 다를까... 미어터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상황이다. 출근길 지각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은 결국 문 닫기 직전 덩치 좋은 남자들이 삐져나온 사람들을 꾹꾹 눌러 정리해주며 열차 안에 안착하고 문이 닫히는 걸로 마무리가 된다. 그러면 그 때부터 자기 몸이 타인과 닿는 면적을 최소화 하면서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을, 그리고 스마트폰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자세를 찾기위한 매우 곤혹스러운 몸부림이 잠시 있고 안정기에 접어든다. 하지만 그래도 불편함은 극에 달한다. 일단 땀이 뻘뻘 나는 낯선 사람과의 밀착이나 양치를 미처 못하고 나온 어떤 이의 morning breath를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팔꿈치 공격을 견디는 것은 아침 출근길의 경험으로는 유쾌하지 못하다.


오늘은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저만치에서 아줌마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같은 손잡이를 잡으면서 밀쳤다느니 몸으로 밀었다느니, 이유는 뭐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하다. 누군가 밀었겠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래서 화가난 상대방이 또 밀었겠지. 소리지르며 쌍욕을 마구 던지는 아줌마들을 보며 옆에서 싸움을 말린, 말렸다기 보단 "조용히좀 하시죠." 라고 말한 몇 사람은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했다는 이유로 더불어 욕 한 바가지씩 얻어먹고, 다행히 열차의 문이 열리면서 싸우던 아줌마가 내린건지 그 역에서 처음 타는 사람들 앞에서 싸우는 게 민망했던 건지... 다행히 잠잠해졌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싸움을 목격했었는데,

- 왜 자꾸 밀어요?

- 제가 민 게 아니라 밀린 거예요.

- 제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줄 아세요? 아시냐구요?

- ...

- 노트북이 들어있다구요!!!!!!

뭐 이런 황당하고 유치원생의 대화같은 싸움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출근길 그곳은 극도의 예민함이 가득 차있다. 나의 한계가 100이라면 그곳의 주는 스트레스는 105 정도 되어서 폭발할 상황이지만 모두들 교양있는 시민으로서의 체면도 있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웃에 대한 배려도 있고, 화가 나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참자... 라고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날엔 성숙한 시민이라는 나의 자부심까지도 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쉽게 말해 창피하다.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하고 싶은 많은 이웃들의 바람이 미성숙한 아줌마로 인해 무시당했고 심지어 누군가는 아무 죄없이 아침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니 그의 불쾌함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싸움의 당사자들은 후련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절대 그랬을 리 없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목적지에 도착했겠지, 지인에게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을 무용담 늘어놓듯 얘기하고 지인은 뭐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냐며 맞장구 쳐주면 조금 마음이 풀리기는 하겠지. 자기도 지금 이순간 누군가로부터 몰상식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침에 뭐가 문제였는지 눈 흰자가 부풀어오르는 결막염 증상이 있어 전철 안에서 기둥 하나 붙잡고 이리저리 떠밀리며 눈을 감고 가면서 조금이라도 좋은 컨디션을 회복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도 그렇게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하루가 몹시 피곤하다.


진짜 왜 이래,
9호선 처음 타봤어?
아마추어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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