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없는 도시에 살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대학시절 그 흔한 해외어학연수조차 딸 혼자 못 보내겠다고 했던 엄마 덕분에(?) 나는 짧은 여행 이외에 해외에 체류했던 경험이 전무하다. 해외출장과 여행을 통틀어 돌이켜봐도 한 달을 넘었던 체류 기간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런 내가 한국인이라고는 나와 남편 그리고 딸, 우리 가족이 전부인 스위스의 한 도시에 살고 있다. 다섯 살 난 딸아이 학교를 알아볼 때, 교장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개교 이후 2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입학한 최초의 한국학생일 것이라 했다. ‘최초.. 뭐든 최초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겠지…’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스위스에서 엄마로서의 성장기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전환(Transition)은 언제 일어나는 것일까?
삶에서 전환(Transition)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는 대학생활이 시작된 후였다. 그 이전까지는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바를 생각하고 상상했다면, 대학생활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생각했던 바를 현실로 실현시킬 수 있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갔고,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마셨고, 몸이 부서지도록 걷고 싶으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15일을 걸어왔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딱 하나 해외유학만 빼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 유학을 가고 싶다는 나의 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취업과 바꾸었다. 그 때문일까? 남편이 스위스 이주를 제안했을 때, 내 안에 그간 꺼져갔던 열망의 불씨가 살아났던 것인지 13년 넘게 이어온 나름의 커리어를 접어둔 채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와 나름의 합리화로 정말 엄마로서 내가 성장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가를 확실히 돌이켜볼 수 있는 두 번째 전환(Transition)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
외모만으로 내가 특별해지는 경험, 너는 유니크(be unique)한 존재란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동양인 외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내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튀어 보이려고 노력해도 주목받기 어려웠는데 이것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같은 학년 아이들뿐 아니라 선배 언니, 오빠들까지도 복도에서 내 아이에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것을 보니 인플루언서로 살아가면 이런 기분인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하원할 때는 친구들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OOOO, your mom is coming!”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내 외모가 그렇게 특별했나 싶다. 우리 모두는 있는 그 자체로 유니크한 존재(being)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엄마, 친구들이 내 눈이 작다고 놀려.
가족끼리 저녁을 먹는데 딸아이가 무심하게 툭 던졌다. “애나가 나보고 눈이 작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남편과 나는 2초 동안 눈빛을 교환하며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쿨한 척 말을 이어갔다. “맞잖아, 그 아이들보다 네 눈이 작잖아.” 이렇게 이야기하니 아이는 눈을 크게 떠 보이며 “아닌데, 나 눈 커.”하며 웃어넘겼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을까? 또다시 아이는 참아왔던 이야기를 나에게 꺼내보였다. “레니가 내 눈이 작다고 놀려. 그리고 애나, 레니, 애밀리가 나에게 나쁘게 해. Go away라고 하고, 셋이서 나에게 못살게 굴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멈칫하면서 ‘나는 코치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기로 했었지.’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내 고객(coachee or client)은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면서 내 아이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 강하게 이겨 내길 바라왔던 건 아닐지. 오늘은 고객이자 딸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경청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