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온 뒤로 나는 수입이 없지만 다양한 일을 매일매일 해 나간다. 화장실 청소, 집안 청소, 요리, 설거지, 아이등하원, 빨래, 정리, 분리수거는 물론이고, 남편 머리 잘라주기, 아이 친구들과의 플레이데이트 시간을 마련하고 학습적인 부분까지 봐주려면 하루가 아주 빠듯하게 돌아간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일정 부분은 아웃소싱의 힘을 빌릴 수도 혹은 애교를 섞어가며 부모님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을 터. 가족이 멀리 있는 것이 심적으로 그립고, 또 표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얼마 전 독일어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빵을 직접 굽는 곳에 갔었다. 우리 집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동네였는데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말 그대로 나 ‘스. 위. 스’인 동네 분위기에 마을 가운데는 빵을 직접 구울 수 있는 대형 오븐이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방식과 같이 나무로 불을 지펴 화로를 달구고 빵을 구워 냈다.
대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모여 대량으로 빵을 굽고 나누는 것이 참 자연스러웠다. 독일어 선생님은 자신의 부모님과 대학생인 아이들 그리고 이모와 함께 산다고 하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든든해 보이고 부럽던지… 나도 내 가족이 이곳에 함께 모여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모여 채소를 재배하고, 빵을 굽고, 가족 중 누군가는 가까운 도시에서 일을 하지만 또 다 같이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삶이 참으로 안정되어 보였다.
여기에 온 이후, 가족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를 돌이켜보면 돈을 벌면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행복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지나친 순간이 많았을 터다. 그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발견한 가치를 다시금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