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KAC 과정을 시작했다. 나는 코치님들께 지하철 타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다는 주제를 꺼내 놓았고, 당시 힘들었던 나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K 코치님께서 조심스레 몸이 지친 것은 아닌지 건강을 한번 되짚어 보는 것을 말씀 주셨다. 그렇다. 그 당시 나는 인생의 변화를 앞두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던 상태였다.
살다 보면 자꾸 놓치는 부분이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이 있다. ‘지금 내 몸이 힘들지는 않은가?’ 몸이 힘들면 건강한 생각이 자리 잡기도 힘들다.
내 마음은 건강한가요?
이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보를 담는 글보다 어려운 것이 마음을 담는 글이다. 내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글로 써 내려가기가 더욱 어렵다. 글을 쓰면서도 고치고 쓰기를 반복하고, 쓰고 나서도 후련하기보다 찜찜함이 남는다. 이러한 성찰을 하게 된 이유에는 환경적 요인이 크다. 스위스에 온 후, 나는 내가 이방인임을 거의 매일 인지한다. 자의적으로 인지하기보다 타의적인 상황이 많다.
‘세상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한가?’ 반은 그렇고 반은 그러지 않다. 다시 생각해 보면 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다. 그리고 사실상 나의 기분을 상하리만큼 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독일어를 못하는 나에게 여기에서는 그 소수의 사람이 좀 더 늘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친절한 다수보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소수를 더 잊지 못한다. 이것은 불편한 감정이고, 참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내 몸이 지쳐 있으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유쾌하지 않은 일을 겪으면 무엇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그로 인해 내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내 감정은 건강하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준다. 기분 나쁜 일을 겪었으면 기분이 나쁜 것이 정상이니까. 기분 나쁜 일을 겪었는데 아무렇지 않거나 기분이 좋으면 그것이야말로 마음이 건강치 못한 일 아닐까.
내가 겪는 감정을 자존감의 문제 혹은 자격지심의 문제로 귀결시키기보다는 내 감정도 결국에는 나임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너 그거 네 자격지심이야."라고 말하면 "아니, 내가 지금 느끼는 건 내 감정이고, 내 감정을 당신 마음대로 부정하거나 판단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동네에 11월 21일,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오기 전 알프스는 유난히 크고 예쁘게 빛났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이방인임을 내보이며 실리를 취하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간혹 있다. 반대로 타인이 나를 알기도 전에 판단해 버리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 역시 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당신의 섣부른 판단 때문에 당신은 앞으로의 좋은 상황과 사람을 잃었군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