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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Oct 31. 2020

삼대의 업보

부모는 자식의 진로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부모는 자식의 진로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1]

나의 아버지도 소위 동네에서 유명한 수재였다. 전쟁 후 모두 어려운 시절, 아버지도 누구나처럼 가난한 형편에 제대로 공부할 공간도 없었지만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해가 저물면 뚝방 불빛 아래서 수학 공부 한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시곤 했다.


한 번은 학교에서 미적분 과정만 따로 시험을 본 일이 있는데(본고사 대비 모의고사였다고 하셨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백 점을 맞았다고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초등학교 때부터 백 번도 넘게 들었는데 정작 내가 미적분을 배울 때 즈음에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문제였냐고 물었더니 '그게 어떻게 기억나냐'라고 하셨다. 이 때문에 난 아버지의 허풍이었을 것이라 살짝 의심도 했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 아버지의 생활고는 상당했던 것 같다. 고3 때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한 번은 같은 반 친구 부모님이, 나머지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내주셨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도 못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며 없는 형편에 담임 선생님까지도 나선 것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지만 대학은 진학하지 못하셨다. 물론 집안 사정 때문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당시도 공대는 장학금이 많아서 아버지 성적이면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는 색약이셨다. 


이 때문에 이과로 진학을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시험은 보러 가셨다고 했다. 시험을 보고 몇 시간이나 걸려 집까지 걸어서 돌아오셨다고 하는데 난 그 절망감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꿈이 꺾인 아버지는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돈만 벌러 다니셨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아들인 나를 나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남자는 공대를 가야 해. 이제 공대가 뜰 거야."


어린 시절 그렇게 세뇌를 당한 탓에 난 내가 공대 외에 다른 전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같다. 게다가 아버지를 닮은 탓인지 나도 수학은 꽤 하는 편이라 공대를 가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공대에 진학했다.


[2]

대학에 들어간 후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나는 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자그마치 10년을 넘도록 방황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가와 시인들에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2 때부터 증세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는데, 남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온다는 사춘기가 뒤늦게 발동이 걸린 것이다. 쓸데없는 공상에 빠지기 일쑤였고 어설프게 시 같은 것을 끄적거렸다.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내 진로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들어간 대학에서 그렇게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론 좀 더 적극적으로 휴학을 한 뒤 재수를 하거나 그냥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조금씩 글 쓰는 작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그렇게 큰 결정을 혼자 내려본 경험이 없었고 두려웠다. 이것저것 시도는 해보았지만 금세 자기 연민에 빠지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내 아버지가 어린 시절 느꼈을 만큼의 절망은 아니었을지라도  아주 묵직하면서도 끈질기게 나를 끌어내리는 좌절감에 시달리며 나는 그렇게 인생을 허비했다. 


이제 사십 대 후반이 된 나는 내 아들에게 내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부에 전혀 개입하지 않기로 했고, 아들이 물어보는 것이 있을 때만 함께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했던 말은 이랬다.


"공부는 네가 알아서 해. 프로그래밍이 좋으면 계속해도 되고. 아빠가 공대 나와서 보니까 엔지니어든 프로그래머든 실력은 나중에 다 비슷해지는데,  결국 차이가 나는 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능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이런 것들이더라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은 꼭 썼음 좋겠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이 합리적인 아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아이는 책을 매우 싫어한다. 

독후감 숙제를 하느니 잠 안 자고 24시간 동안 수학 문제집을 풀겠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아들은 아빠가 책 타령하는 게 싫어 아마도 공대를 가게 될 것 같다. 내 아버지의 절망이 대를 이어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작가가 되지 못한 나의 억울함이 내 아들에게는 또 다른 반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세 사람은 모두 공대와 관련된 각기 다른 사연을 하나씩 갖게 될 것이다.


[3]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모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좋은 학군을 찾아 수 억 원의 빚을 지면서 이사를 가고, 거기에 매월 백만 원은 가볍게 넘는 학원과 과외비를 지출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들은 정작 자신은 영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했지만, 자녀들만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며 '엄마'소리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집은 부부가 한국식 영어를 쓰는 수준인데 애한테 한국말은 안 가르치고 영어로만 얘기하는 경우도 보았다. 수학의 경우도, 자신은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 '실력 수학'이며 '블랙 라벨' 같은 책들을 사다 안기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돌리기도 한다. 어려운 책을 보면 성적이 오를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절대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요지는 본인의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겪은 아이들 중 많은 수가 또다시 수포자, 영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 모른다. 그냥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포기 말이다. 우리 아들이 독후감 쓰기를 치를 떨며 싫어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모의 업보는 끈질기게 대물림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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