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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Oct 31. 2020

낯선 이의 멀미에 관하여

현실과 기대의 불일치에서 오는 상처들


[1]

네이버 블로그를 떠났다.


해킹을 당했다고 삐진 건 아니다. 보안 관리를 잘못한 내 탓이지 네이버의 잘못도 아니다.


해킹당한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네이버 블로그에는 각 글마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을 했는지 보여주는 기능이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물건을 팔거나 광고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네이버의 녹색 창에 마음 급한 손가락으로 '정보'를 찾기 위해 검색어를 입력했던 어떤 사람이 내 글을 클릭했다가 '이게 뭐야?!'라고 하면 거칠게 창을 닫아 버리는 모습이 눈 앞에 자꾸 아른거리며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내 글로 유입된 검색어들의 사례다.



왼쪽의 검색어를 입력하고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분들의 깊은 빡침이 멀리서 느껴졌다. 그들은 내 글을 만나기를 기대하지 않았고,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내 글이 노출될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우연한 접촉이었을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그런 의미에서 환경을 좀 바꾸기로 했다. 검색이 아니라 차분하게 글을 읽어 줄 미래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네이버를 떠나 브런치로 둥지를 옮기기로 한 것이다.


[2]

김영하 작가는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 학생 운동을 하던 80년대 말, 중국에 다녀온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마오쩌둥 어록과 '중국의 붉은 별' 같은 책을 읽으며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키우던 학생 시절, 처음으로 만든 여권을 들고, 귀 뒤에 키미테(붙이는 멀미약. '귀밑에'라는 말이다)를 붙인 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작가는 중국이 기대와 많이 달랐다고 했다. 그곳에서 본 중국의 현실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통치한다는 것을 빼면 거의 모든 면에서 급격하게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특히 그곳에서 미국을 동경하며 유학을 꿈꾸는 베이징 대학생과의 대화를 하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여행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영하 작가는 이후 대학원을 진학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책에서 작가는 그 당시 중국 여행을 통해 본 중국의 현실과 자신의 환상의 괴리를 멀미에 비유했다.


멀미란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중략) 다시 말해 멀미는 뇌의 예측과 눈앞의 현실이 다를 때 일어난다고도 할 수 있다.
멀미약 패치를 귀 뒤에 붙이고 나타난 나의 무의식은 아마도 중국에서 내가 겪게 될 현실, 그것이 야기할 일종의 정신적 멀미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중국은 내가 책을 보며 상상했던 나라와 너무도 달랐다.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살아가며 억압과 착취가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개발독재국가였다.


여행뿐 아니라 인생 전체를 걸쳐, 우리는 현실과 기대 사이의 괴리에서 멀미를 앓게 된다.


젊은이들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대학만 진학하면 꽃 길이 열릴 거라는 부모님의 거짓말에 멀미를 앓게 된다. 그 멀미를 낫게 하려고 제대로 된 멀미약을 먹지도 못한 채 유학을 꿈꾸고 개인 사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또 다른 멀미의 예고편이다.


있는 집 아들내미를 만나 이제 좀 편하게 살겠다며 행복을 기대했다가도, 밥 달라는 말과 이제 그만 자자는 말 밖에 하지 않는 애정 없는 남편과의 부부 생활에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남자의 경우도 비슷할 수 있다.


개발 독재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성공한 기업인이 대통령이 되면 내 생활도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가 몇 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유권자들도 멀미를 느꼈다. 왕이 무능하거나 부도덕하면 가뭄과 역병이 찾아온다는 오래된 믿음을 물려받은 탓인지, 아직도 우리는 대통령에게서 멀미약을 찾다가 약 대신 어지러움증과 구토증만 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멀미를 감수하고라도 기대를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비단 그것이 직장과 결혼과 정치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우리는 매일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고 정보를 소비하면서 늘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항해자(Navigator)이며 탐험가(Explorer)들이다.


Attitude의 철자를 몰라 사전을 찾기 전에 한글로 "에티튜드의 뜻"이라고 검색어를 입력한 어느 절박한 항해자는, 검색 결과에 올라온 내 글을 보고 또 다른 뱃멀미를 앓았을지도 모른다. 소주랑 어울리는 라면을 검색한 애주가는 소주가 싫다고 말하는 놈 때문에 소주를 몇 병 더 마시고 멀미와도 같은 숙취의 메스꺼움과 구토감을 느꼈을 것이다.


[3]

여행을 가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낯선 사람이며 나도 누군가에게 낯선 사람이 된다. 우리는 그 낯선 사람이 우글거리는 여행지에서 휴식을 얻으려 하고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기대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이들은 여행이 가지고 있는 우연성의 근원이며, 여행을 통해서 얻으려 했던 (비록 계획하진 않았으나) 내면적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사실은 낯선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마주하고 있는 있는 직장 동료들의 얼굴과 행동은 친숙하다고 느끼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가족관계, 취미, 관심사항, 성격, 꼰대 여부 등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냥 눈에 보이는 사실의 나열일 뿐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부러워하고 어떤 것에 감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더욱 알 수 없다. 


여행에서 만난 낯선 이는 Identity(정체, 신분)에 대한 낯이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Discrepancy(불일치)에서 오는 낯섦이다.


Identity(정체)에서 느낀 낯섦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누그러진다. 그 불안감은 이내 안도감이 되고 다시 여행을 지속할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Discrepancy(불일치)는 관계 속에서 멀미를 일으키고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멀미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조금은 덜한 Identity(정체)의 낯섦 속으로 여행을 선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4]

이제 네이버 블로그를 떠나 내가 본의 아니게 유발한 낯선 항해자들의 뱃멀미와, 또 반대로 내가 느낀 낯선 검색자들에 대한 멀미를 끝내고자 한다. 다행히 나를 받아준 브런치에서 또 다른 낯선 이들과의 조우를 기대해 본다.


가뜩이나 주절주절 긴 내 글 때문에  키미테가 아니더라도 멀미약 하나쯤은 꼭 챙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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