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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28. 2020

어느 성공한 기업인의 미래에 대한 오만한 일반화

제로 투 원 Zero to One / 피터 틸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혁신 벤처 기업의 창업자로서 또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서 들려주는 피터 틸의 조언에 귀 기울일 내용이 적지 않았지만, 자신의 성공을 필연인 것처럼 과장하고 일반화하는 오만함이 너무 불편했다. 오늘은 나의 불편함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피터 틸은 우리가 오랜 교육을 통해 신성하게 여긴 경쟁이라는 것은 우리의 바람처럼 서로를 자극하여 더 좋은 결과를 낳기보다는, 오히려 경쟁업체 간의 이윤을 갉아먹는 네거티브 효과를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보다 10배 이상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되는 것이며 저자는 이것을 Globalization이라 불리는 수평적 진보와 대비하여 '수직적 진보'라고 했다.


성공적인 창업과 수직적 진보를 위해 창업 시점에 스스로 반드시 답해야 할 일곱 가지 질문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1. 기술: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2. 시기: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위의 일곱 가지 내용을 순서와 상관없이 다시 풀어보면,


-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에서 '숨겨진 비밀'을 찾아야 한다.

- 현재보다 10배 이상의 혁신이 가능한 제품과 아이디어를 가져야 한다. 

- 시장 수요(Market Size)가 조금 작더라도 우선은 대체 불가능한 독점 상태로 사업을 시작한다.

- 다만 기술과 제품이 훌륭해도 시기가 잘 맞아야 하며 사업에 헌신할 수 있는 팀원들을 찾아야 한다.

- 좋은 제품도 중요하지만 세일즈(유통)도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특별히 틀린 말은 없다. 다만 사전에 계획만 잘 세운다고 달성이 보장되는 항목은 하나도 없다.


숨겨진 비밀은 말 그대로 '숨겨져'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한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비밀은 많은 경우, 우연히 발견되거나 아니면 출시한 제품이 사후에 숨겨진 비밀의 조건에 우연히 맞게 된다. (페니실린, 다이너마이트, 비아그라 등을 보라. 페이스북도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난처럼 시작되었다.)


사업의 '시기'를 잘 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 뒤돌아 봤을 때만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겪어봐야 안다.


비록 미래의 결과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서 성공의 '확률'을 높여야 한다라는 정도의 어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저자의 관점은 조금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


베이비붐 세대라면 모두 만 18세가 될 때까지 세상은 해마다 나아지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발전은 '그들 자신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중략) 그 기술 발전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관한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빌 게이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운 좋은 개인적 환경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고, 컴퓨터 실습실이 있는 사랍학교에 다녔고, 폴 앨런(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 어릴 적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가 '말콤 글래드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글래드 웰이 베이비붐 세대(1963년생이다)라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성공한 개인에 관한 책을 쓰면, 그들은 특정 개인의 환경이 갖는 힘이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운(우연)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러 성공의 조건에 '노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의 글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연의 효과를 더 크게 부각한 것은 사실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피터 틸은 1996년 지인들의 투자로 100만 달러를 모아 '틸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투자회사를 만들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친구 맥스 레브친을 만나 콘피니티라는 회사를 차리게 되고 이 회사에서 페이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철저한 계획과 숨겨진 비밀을 강조하는 경영자의 출발치고는 참 평범하고 우연 투성이다.

(물론 지인에게서 1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조건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일이다.)


책에서는 또 1999년 페이팔 서비스를 출시하고 나서 닷컴 버블에 불안을 느껴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경쟁사 X.com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와 50:50의 지분으로 두 회사를 합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 닷컴 버블의 불안은 우리가 부동산 버블의 불안을 느끼듯 누구나 느끼던 것인데, 정확한 시점은 몰랐더라도 Risk를 회피하기 위해 합병을 시도한 실행력은 높이 살 일이다. 그러나 그 합병이 닷컴 버블 붕괴 전에 성사가 된 것도 (바꿔 말해, 합병이 되기 전까지는 닷컴 버블이 터지지 않은 것) 어느 정도 행운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라는 괴짜 기업인과 한 배를 타게 된 것도 본인의 사업 계획서 안에는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의 이야기라면 '약간의' 잘난 척이 있더라도 통찰력 넘치는 조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겸손하게 말이다. (갑자기 '내가 감히'라는 말이 머릿속에 스쳤다)


남이 따라오지 못할 실력과 통찰력, 그리고 불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열정과 노력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성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미덕임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


다만 이런 것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미래를 확신하는 경솔함은 버려야 한다.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도 이름 한 번 내보이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기업들의 도전을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도전할 수 있을 만큼만 실패하는 것도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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