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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Dec 27. 2020

크리스마스 새벽의 발견

상처를 다시 들여다볼 용기

고양이라는 종족에겐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지라, 레오(Leo)는 오늘 새벽에도 나를 깨웠다. 어제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보다 잔 덕분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간신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5시 40분이다.


무시하고 계속 자고 싶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다. 내가 순순히 일어나지 않으면 레오는 일어날 때까지 방 문을 계속 긁어대거나,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와 내 발에 앞 발톱을 꽂아 넣는다. 가장 최악의 공격은 침대 옆 책상 위에서 내 몸 위로 점프를 하는 것인데 부드러운 고양이가 뛰어드는 게 무슨 충격이 되겠냐 하겠지만, 6Kg짜리 아령을 수건에 쌓아서 1.5미터 높이에서 내 배 위로 던지는 것과 같은 충격이다. 눈 감고 있다가 당하면 그런 날벼락이 따로 없다.


이 녀석은 새벽 첫 끼니로 꼭 습식 사료를 먹어야 한다. 건식 사료는 늘 많이 담아두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은데 습식 사료의 경우는 그릇에 담아 주는 대로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미리 주는 것이 의미가 없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차가운 베란다로 나가 습식 사료 한 봉지를 새로 뜯었다. 레오는 거실 바닥에서 몸을 뒤집으며 좋다고 난리다. 습식 사료가 반가운 것인지, 오늘도 한 번 더 무기력한 집사를 이겨 먹은 것이 기분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레오 덕분에 크리스마스 아침 새벽 공기를 맛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부터 새롭게 할 일이 몇 가지 있었으니까 레오한테는 고마워할 일이다. 7시 반으로 맞춰놓았던 알람은 이제 필요가 없으니 미리 껐다.


책상에 앉아 스페인어 책을 폈다. 아들내미가 내년 5월에는 DELE시험을 보겠다고 하는데 이참에 나도 같이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연휴가 시작되는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두 번이나 본 책이고 작년까지도 조금 공부를 하고 있었던지라, 올해 좀 놀았다고 많이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펴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절반 이상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행히 몽테뉴처럼 자신이 쓴 책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 새로운 내용처럼 느껴졌다. 와이프가 평소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는 술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뇌세포가 다 죽었을 거야."


먹지도 않은 알코올 기운이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알코올 중독인가?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셔가며 공부를 했다. 마음먹은 첫날부터 망치기는 싫었으니까. 하지만 공부는 잘 되지 않았다. 졸려서 그런 것도, 알코올 기운이 올라와서도 아니었다. 집중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지난 4년간 멕시코에서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자꾸 떠올랐다.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치유가 된 줄 알았던 상처들이 스페인어라는 상자를 열자 내 의식으로 마구 올라왔으니 말이다. 비워졌다고 믿었던 마음은 아직도 과거의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었고 마치 억지로 눌러 담으려다 찢어져 버린 쓰레기봉투처럼, 기억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다시 담아지지 않았다.


상처는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냥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명상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받아들이고 치유한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어를 비롯한 멕시코에서의 모든 기억들은 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 매장되어 기억이 나지 않다가, 스페인어 책을 펴고 기억을 되살리려 하자 그 억눌린 의식의 줄기에 엮여있던 지난 기억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온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주 일어나는 기억상실증이란 것이 현실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두 번째 주재 생활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내가 부임한 시점부터 사업은 이미 정점을 지나 내리막을 걷고 있었고 결국 난 사업의 부진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했다. 애초에 각오는 하고 있었다. 사업의 부침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그 정도의 부담은 견딜 만큼 굳은살도 박였다. 그러나 정작 견디지 못한 것은 사업의 어려움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이었다.


본부 내, 세 치 혀를 놀리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어느새 나는 사업의 의지가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간절함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본부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현지에서 내가 시장의 Insight를 본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노트북 폴더를 가득 채운 수많은 보고서들이 무색했다.


이들 자칭 '충신'들의 말이 모두 옳을 수도 있다. 결과로 말해야 하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억울하지만 난 누가 옳은지 논쟁도 입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본부는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나를 굳이 귀임시켰다. 하루라도 빨리 '능력 있는 사람'이 다시 나가서 사업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제정신으로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 능력과 정체성을 난도질하고 부정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했으니 말이다. 내가 돌아온 뒤에도 사업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 누구도 '네 잘못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며 나를 추스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덕분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나는 내가 많이 회복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 나에게 크리스마스 아침에 폭풍처럼 밀려온 상념들은 나를 다시 혼란에 빠뜨리고 만 것이다.




혼란스럽고 슬픈 크리스마스의 시작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난 이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상처로부터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괴롭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나 어차피 내 안의 슬픈 기억들을 스스로 다시 끄집어내어 들여다볼 용기가 없던 나에게는, 이렇게라도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혼탁하게 뒤 흔들린 감정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바라보면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았다. 내일 아침도 레오의 울음소리에 일어나 갑작스러운 상념을 다시 마주하게 되더라도 레오를 원망하지 않을 만큼의, 아주 작은 용기 말이다. 하긴 레오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겠지만.


삶의 기술은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도,
두려움에 싸인 집착도 아니다.
삶의 기술은 매 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매 순간을 완전히 새롭고 유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마음을 활짝 열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삶을 사는 기술이다.
<앨런 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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