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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03. 2021

서로 다른 새해에 관하여

새해 새로운 태양이 뜨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올해는 계획을 많이 세우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더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 생각이 떠오른다.


십여 년 전 이란에서 살 때는, 새해가 되어도 새해인지 아닌지 애매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이 나라에서는 이란력(Persian Calendar)이라고 하는 완전히 다른 달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제는 서양력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우리가 양력/음력을 함께 사용했던 것처럼 이란력과 서양력을 함께 사용하고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와 다른 달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의 삶의 리듬과 패턴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력은 서양력과 동일하게 태양력이지만 한 해의 시작점이 다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기준으로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의 정오가 되는 시점을 1월 1일로 정했다. 즉, 우리 기준으로 3월 21일이 새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었다면 한 해의 새로운 목표를 위해 이미 바쁘게 달려가고 있을 3월이 되어서야 이란에서는 연말연시 모드가 된다. 게다가 노루즈(Nowruz)라고 하는 약 2주 동안의 신년 연휴 때문에(많은 현지인들은 한 달 정도를 쉰다) 모든 것이 정지한 느낌마저 든다. 


3월 21일이라니 이 무슨 생뚱맞고도 애매한 날이란 말인가? 새해의 시작은 추운 입김 호호 불며 일출을 봐야 제 맛이 아니던가!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그래도 뭔가 다시 해 보겠다는 결심과 기대감으로 묘하게 흥분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낮이 밤보다 길어지고 대지의 생명이 다시 일어나는  봄의 어느 날, 바로 춘분을 새해의 첫 날로 정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2주의 연휴를 주는 것만 봐도 지극히 옳다.) 


서로 다른 새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가슴 뛰는 태양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의 태양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1월 1일에도, 3월 21일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의미의 태양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새해에 뜨는 해라는 것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임의로 이름 붙인 상징에 불과하다.


인간은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시간을 멈추거나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으며, 뒤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시간마저 통제하고 싶은 욕망으로, 눈으로 관찰한 절기와 하루 중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나누어 '관리'하려고 했다. 그 욕망의 결과물이 바로 달력과 시계다.


달력과 시계 덕분에 우리는 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위치를 통해 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뿐이다. 시간은 그저 앞으로 흘러갈 뿐 반복되는 주기(Cycle)라는 것이 없다.


우리가 나누어 놓은 년, 월, 일의 구분 때문에 마치 태양이 한 사이클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현재에만 만날 수 있는 새롭고 유일하고 존재다. 시간을 통제하려고 만든 달력 시스템에서, 매일 아침 만나는 현재의 새로운 태양이 어떤 날은 더 의미 있고 어떤 날은 덜 의미 있게 보인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한 달 두 달쯤 지나, 새해의 벅찼던 느낌도 희미해지고 다시 일상 속에서 찌들어 가고 있을 어느 봄날, 지구 반대편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의 결심과 계획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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