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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08. 2021

직장 존버의 기술(2) - 자리를 사수하라

시선의 권력과 폭력성

연초가 되면, 조직 변경에 따라 팀이 다시 구성되고 사무실의 배치도 바뀐다. 올 해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다른 건물에 있어서 서로 전화로만 업무를 하던 부서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 사무실의 옆 팀으로 이사를 오는가 하면, 새로운 사람이 우리 팀으로 배치를 받기도 했다. 인원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배치도 바뀌게 되는데 이때 묘한 긴장감과 신경전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 회사 영업조직의 대장은 부사장인데, 당연히 전 지역 영업팀을 자신의 방 앞쪽으로 배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테다. 우리 팀만 복도 반대편에 있는 곳에 위치를 하고 있었지만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그대로 두었는데 이번에 인사개편이 크게 되면서 우리 팀도 자리를 이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부사장실 앞으로 팀 자리를 옮기는 것은 당연히 우리 팀 상무든 사원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싫어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기획팀을 설득한 뒤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 데 성공하였다.


큰 전쟁이 마무리되고 나면 내부 권력 다툼이 생기게 마련. 담당 임원 집무실 앞에 세 줄로 되어 있는 우리 팀 내부의 배치를 놓고, 누가 임원 집무실을 등지고 앉게 되는지, 그리고 누가 문 앞 가까이 앉아야 하는지가 마지막 남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작년에 나는 어쩌다 보니 모든 사람이 노리는 최고의 명당자리에 앉게 되었다. 임원 방을 바라보고 가장 멀리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임원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복도에서 안 쪽으로 많이 들어와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일도 없다. 이렇게 모두가 원하는 자리에 앉는 것은 웬만한 '권력'을 갖지 않은 한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벌써부터 직장생활 짬밥 20년 이상 된 무림의 고수들이 자리 배치에 대한 나름의 전략에 의거한 제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가별로 파트를 묶어야 한다느니, 새로 들어온 고참 사원을 배려해야 한다느니, 아니면 공통 업무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자리를 먼저 배정하고 다른 자리는 새롭게 섞어서 앉자느니 말들이 많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말 홍수 속에, 아직은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다. 


[2]

사무실 안에서의 자리 배치는 실제로 권력에 관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상사는 모든 부하직원이 자신의 시선의 통제하에 있기를 바라며 반대로 부하직원은 상사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어 한다. 


타인의 시선은 우리 자아를 통제하는 숨겨진 권력으로서 작동한다. 토마스 홉스는 '군주는 늘 불면증이며 유리 집을 꿈꾸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근대 이후의 모든 권력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 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권력자들은 좀 더 은밀한 방식으로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감옥에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다수의 죄수를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근대의 발전과 함께 발달하기 시작한 '감시'의 개념이다. 


권력자(우리에게는 직장 상사)들은 강박적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데, 부하직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자신의 시선의 영역 안에 항상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들이 꼰대이기 때문도 아니고 부하직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다. 시선을 통한 감시는 기본적인 권력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김정운 교수는 책 에디톨로지에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디자인을 언급하며 권력자들의 시선 통제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절대권력의 정원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원근법적 원리까지 적용하여 자신의 성이 소실점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도록 했다. 자신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자기 권력 안에 있음을 확인하려는 시도다."

김정운 <에디톨로지>


이런 시선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에드가 앨런 포는 단편  <폭로하는 심장>에서 이웃 노인의 시선이 불편해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그의 눈 때문이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그의 두 눈 중 하나는 독수리를 닮았다. 막으로 뒤덮인 흐릿한 푸른색. 그 시선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내 피는 얼어붙는 듯했다." 

에드가 엘런 포 <폭로하는 심장> 


매일의 업무와 평가, 인센티브, 월급 인상, 승진 등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의 시선은, '내 피를 얼어붙게 할 만큼' 큰 힘을 가졌다.


이런 걸 감안할 때 '그냥 내 할 일 하면 되지, 왜 상사 눈치를 보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대단한 멘탈의 소유자 이거나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3]

시선이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직장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 타인들로 부터 받는 시선은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모두 대상이다.(중략)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그저 사물로 보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수치심의 철학적 근거이다. 우리가 타자의 시선 속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그의 의식 앞에서 내가 대상, 즉 사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자 <시선은 권력이다>


그 사람의 시선이 읽어낸 (아니면 만들어 낸) 하나의 대상으로서 내가 바라봐진다는 것은 주체적 존재임을 부정하고 우리가 가진 실존의 여러 가능성까지도 무시하는 심각한 폭력이다. 이것이 바로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는 따뜻한 시선마저도 폭력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시선이 폭력성과 권력을 갖게 된 것은 우리의 관념이 가진 부조리 때문일 것이다. 까뮈는 소설 <이방인>에서 이런 부조리에 대해 냉소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희극 영화를 본다. 어머니와 관계가 소원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이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뫼르소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기는데, 아랍인을 살해한 뫼르소의 재판에서 이런 사람들의 부조리한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 가장 수치스러운 정사에 몰두한 그 사람은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풍기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고 살인을 한 것입니다. "

나의 변호사는 참다못해 두 팔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 때문에 기소된 것입니까, 살인을 한 것 때문에 기소된 것입니까?"

<이방인 中, 법정 대화 장면>


이런 부조리한 사람들의 시선은 비단 소설 속에서 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으며, 기존 관념에 기대어 눈에 보이는 현상들 간의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 시도는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에 얼굴 표정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람의 표정을 통해 감정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환상과 부조리에 관련된 사례로 '아만다 녹스의 룸메이트 살해사건'을 소개했다. 


사건 조사 당시 DNA 결과도 형편없었고 아만다가 친구를 살해했다는 물리적 증거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만다가 친구의 죽음에 슬픈 기색이 없이 남자들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죽은 친구에 대해 냉정하게 말했다는 이유로 경찰과 검사와 법원은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녀는 무죄가 밝혀지기까지 교도소에서 4년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아만다는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Foxy KNox라고 불렀고,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녹스가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들의 명단을 찾아 기사를 내기까지 했다.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사 기간에 용의자가 보이는 심리 반응과 행동 반응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식으로 유죄를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조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어요."  

<타인의 해석 中>


아만다의 죄는 친구가 살해당한 상황에 '슬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죄'였다.


"메러디스가 살해된 방에는 내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 눈동자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나를 바라봅니다. 왜죠? 이건 내 눈이에요. 내 눈은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에요." 

<타인의 해석 中>


[4]

앞서 말했듯 타인의 시선은, 바라보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을 대상화하고 주체적 자아를 통제하는 권력을 지녔다. 게다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까지 가미되면 타인의 시선은 더욱 폭력적이 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의 자리, 그리고 직장 상사의 시선은 이토록 중요한 문제다. 


나는 멘탈이 강하지도 않으며 소시오패스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쉽게 먹잇감이 되곤 하는 사람이다. 허세를 부리며 자리를 아무렇게나 옮기기에는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너무 크다. 무림 고수들의 온갖 계략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기에, 어떻게든 내 자리를 사수하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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