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는 언어

쌀 씻는 소리

by 에포케

'엄마! 쌀 씻는 소리가 사암촌 사~암촌으로 들려!'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며 순간에 잠겨 있기를 즐겨하는데 쌀 씻는 소리에 어떤 단어가 들려온다며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어렸을 적 집안 노동은 엄마의 주 업무였기 때문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식사 준비하는 엄마의 모습은 익숙했다. 그 익숙한 풍경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소리와 냄새, 온도가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밥을 지으려고 쌀 씻는 전용 스텐볼(우둘투둘한 표면을 갖고 있는)에 언제 추수됐을지 알 수 없는 쌀을 포대에서 적당히 퍼 담아 쌀알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면 쌀 씻는 소리도 곧 시작된다.

보통 저녁밥 준비할 때의 소리를 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하루의 한창인 대낮보다 저녁에 대한 느낌을 더 좋아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아무튼 쌀 씻는 스텐볼에 담긴 쌀은 곧 찬물 세례를 받으며 엄마의 맨손으로 이리저리 리듬감 있게 씻겨졌다. 쌀을 씻을 때면 엄마만의 리듬이 있었는데 오른손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반 바퀴 정도 손가락으로 훔치고 이내 손바닥으로 손빨래하듯이 힘껏 밀어준다. 쌀이 어느 정도 깨끗하게 씻겨질 때까지 반복하는데 이때 들려오는 소리가 '사암촌(삼촌)'으로 자주 들리곤 했다. 삼촌 이외에 두 글자인 단어가 늘어져 리듬감 있게 들리곤 했는데 표면이 우둘투둘한 쌀 씻는 전용 스텐볼 덕분에 쌀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더 크고 경쾌하게 들렸던 것 같다.


쌀 씻는 소리에 어떤 단어가 들린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으셨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그 날의 나를 바라보면 일상에서 수많은 언어를 느끼고 관찰하는 내가 설명되는 찰나로 담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걸 담아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모든 것'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스스로 정리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