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흰색'으로 가득 찬 종이.
흰색 스케치북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 때면 검은색 테두리 안에 여러 색을 알맞게 채워 넣으며 테두리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기억.
그저 조심했던 건 여러 색이 검은색 테두리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던 것.
나의 상상을 표현하기보다 누군가의 시선을 만족시켜 칭찬을 받고 싶던 시절, 그림이 표현이고 언어인 줄 느끼지 못했다.
재작년 추석 연휴 공동 주거하는 집사람들과 대림미술관 전시를 보러 갔다. 설치미술과 디자인 쪽으로 굉장히 유명한 작가의 전시회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외국인 이름은 길고 낯선 발음으로 된 모음, 자음이 섞여있어 반복적으로 되뇌지 않는 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름에 대한 느낌만 남아 있다. 우리가 전시를 보러 간 날이 명절 당일이었는지 어쨌는지 휴관이라는 걸 대림미술관 앞의 안내문을 보고 알았다.
다행히도 근처 다른 미술관이 있다는 걸 알아 방향을 틀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9월 말이었으니 차가워진 공기에 바람도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앞서가던 낯선 사람의 긴 머리칼이 흩날리던 순간이 선명하니까. 가을볕이 너무나 차분하고 선명하게 내리쬐던 그 날, 흩날리는 머리칼 테두리가 눈부시게 반짝였다.
'검은색 테두리가 아니네.'
머리부터 정도의 상체까지 볕으로 감싸는 테두리에 고정된 시선으로 들어오는 생각을 시절의 내 모습과 겹쳐본다.
노력하지 않아도 느낌표처럼 선명한 기억들은 삶을 담아내는 덤덤한 시간의 순간으로 떠올라 생각 속에 며칠을 묵었다가 다시금 먼발치로 사라진다.
이렇게 문득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들이 생각 속에 며칠 묵을 때면 사라지지 않을 과거와 만난다.
그리고 이 순간이 또 다른 기억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을 언어 되어 다가 올 시간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