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테두리,
작년 봄이 찾아오는 중의 검은 종이에 대한 생각이다.
다양한 색감이 갖고 있는 느낌을 사랑한다.
'너는 어떤 색 좋아해?'
어릴 적 서로를 알아가는 새 학기. 새로운 친구에게 많이 묻던 질문 중 하나로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어떤 성별을 갖고 태어나는지에 따라 그 성을 표현하는 고정된 색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분홍색을 있는 그대로 보기에 어려움이 있나 보다.
익숙함과 반대되는 것을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가까이 두기를 즐겨하는데,
'어쩌다 흰색 종이가 만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을까?'
평소 머릿속을 웅웅 거리던 질문은 검은 종이로 이끌었나 보다.
동네 문방구에 들려 크레파스와 검은 하드보드지를 사들고 집으로 걸어가던 기억은 오랜만에 사용하게 될 크레파스에 설레는 마음과 저물어가는 해가 퍼트리는 노을로 어우러진 찰나로 담겨있다.
그렇게 검은 종이 위에 크레파스로 끄적이던 중 발견했다.
색감을 구분해야 할 부분에 검은색 크레파스로 선을 긋지 않아도 검은 종이의 '고유함'덕에 어디든 테두리로 쓰일 수 있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느꼈기에.
'역할'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다른'역할이지 '계급'놀이가 아니다. 존재의 고유함과 가치관에 따라 스스로 찾아가는 역할에 '우열'은 없다. 하지만 우린 아주 무례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검은 종이에게 검은색 크레파스는 고유함에 대한 무지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검은 종이임을 알고 사용한 검은색 크레파스와 검은 종이임을 알지 못하고 사용한 검은색 크레파스는 전혀 다르다.
때론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우열'의 문화는 나의 고유함에 조바심을 덧칠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