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스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 /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편집후기(5)
“미래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약자들에게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것이다.
겁 많은 자들에게 그것은 미지의 것이다. 용감한 자들에게 그것은 기회다.” –빅토르 위고
마케터의 시장조사를 요리사의 작업과 비유한다면 좋은 재료를 찾는 것이고, 예술가와 비교하면 영감을 얻기 위해서 좋은 모델을 찾는 것이고, 군인으로 따진다면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유리한 전쟁터를 고르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중요한 ‘시장조사’가 단순히 ‘내부 의견의 확신 작업’으로 전락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사란 확인이 아니라 해석이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긴급하고 중요한 여러 일들에 치여서 마케터가 책상에 앉아서 시장조사 분석을 하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조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절차도 복잡하고, 결과도 늦게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마케터들은자신만의 직관력과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의지해서 수십 억 원의 마케팅 프로젝트를 결정하고 만다.
search & research
강남역 10번 출구 (강북에서는 홍대역) 금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그야말로 시장의 장관을 보는 때이다. 마치 동남아시아 관광객이 북극지대에서 오로라를 보는 것처럼 패션 마케터에게는 이 시간은 난생처음 보는 웅장한 패션의 파노라마를 보는 시간이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그야말로 거룩한 패션의 성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물결로 입을 다물수 없는 장관을 보게 된다. 특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 최신 트렌드를 소화한 사람, 잡지에 협찬받은 브랜드 화보를 그대로 따라 입은 사람, 일본 잡지 보고 따라 입은 사람을 비롯해서 존경할만한 코디를 과시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패션 마케터에게는 이들은 멋있는 ‘사람’들이 아니아 희귀한 ‘콘셉트’들이다. 가끔 떼로 몰려오는 최신 ‘스타일’들도 볼 수 있다. 더 흥분되는 것은 미래의 콘셉트를 가진 소비자들도 볼 수 있다. 이때의 기분을 설명하라면 해변가에서 깨진 소주병을 주으려다가 옆에 빛나는 1 캐롯 다이아몬드를 우연히 발견한 느낌일 것이다.
해외시장시장조사, 국내 시장조사, 업계지, 해외 트렌드 보고서 그리고 소비자가 읽는 패션잡지를 모두 보고 거리에서 시장의 융합 반응을 살피는 필자에게는 홍대역 관찰은 일종에 퍼즐 맞추기 같은 시간이다. 소비자들이 패션과 트렌드에 대한 모방, 창조, 수정, 보완 그리고 재해석을 볼 수 있으며 막연히 생각했던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거리마다 결이 있다. 강남 쪽에 화려한 여자들과 남자들은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시간대별로 선별해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예전에 고가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패션을 알기 위해서 아주 독특한 장소를 찾은 적도 있다. 바로 호텔 피트니스 센터였다. 패션과 자동차는 교차 공식을 가진 면이 있기에 고급 호텔 주자창도 특별 계층의 스타일을 알기 위한 좋은 사냥터(?)이다. 캐주얼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서 이대, 대중성과 무난함을 찾기 위해서는 신촌, 중장년층 여자들의 스타일을 알기 위해서는 백화점 9층에 있는 식당 등. 이것도 항상 변하기 때문에 유념해야 한다. 평온하게 흐르는 강가에 갑작스러운 물살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바닥에 있다. 낮거나 좁거나 아니면 막혀있을 때 물살이 빨라진다. 시장조사는 거리의 물(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안에 있는 결(콘셉트를 가진 사람)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결에는 의미가 다른 총 4개의 정의가 있다. 첫 번째는 짜임새와 조직 그리고 구성을 뜻하는 텍스쳐(texture)가 있다. 나뭇결, 비단결 그리고 살결이라고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쓴다. 두 번째 의미는 성질(disposition), 성향(temper) 그리고 성격(character)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세 번째는 아침결에, 잠결에, 꿈결처럼 사이(the moment)와 때(the time)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물, 숨, 소리를 흐름과 동작을 말할 때 Wave로 사용한다.
‘결 따라 움직인다’는 말은 순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힘을 들이지 않고 그리고 빠르게 해낸다는 의미가 있다. 패션 마케터가 결을 따라서 마케팅을 하는 두 개의 큰 마케팅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시장의 결을 찾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결을 따라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다. 먼저 시장의 결을 찾는 것은 일단 ‘물(거대한 흐름)’을 봐야 한다. 바다 안에도 난류와 한류가 서로 돌고 있고, 공중에도 한랭 전선과 온난전선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도 결들이 있다. 결들을 보기 위해서는 옷만 보면 안 된다. 신발로 시작해서 귀에 붙어 있는 귀걸이까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상징인 얼굴도 보아야 한다. 과연 패션과 얼굴이 서로 조화가 있는지 아니면 옷을 걸친 것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까 옷을 보는 것이 아니라 패션, 곧 옷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과 단순 브랜드만 걸치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패션 마케터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옷 입은 사람들을 통째로 보면서 직관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자주 비슷한 스타일들의 결을 살피는 것이다. 그것은 트렌드와 미래 시장의 결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옷 조사를 위해 대중목욕탕에서 일주일 동안 산 적도 있다. 여자 속옷을 알기 위해 처음 만난 여자 열 명에게 그들이 집에서 가져온 속옷을 직접 보면서 장단점을 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서 2호선 12 열량 지하철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대학생들의 목과 귀만 쳐다본 적도 있었다. 여자들의 심리와 쇼핑 동선을 알기 위해 얼굴도 알지 못하는 여대생의 다이어리와 일기를 수십 권이나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MP3 제품을 파악하기 위해 염치 불고하고 다가가 ‘혹시 어떤 제품을 쓰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브랜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시쳇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어떤 이를 만나도 ‘저 사람들은 이런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일종의 초능력이 생기지 않으면 브랜드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브랜드 책에서 ‘초능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하는 건 반복된 경험에 기반한 훈련된 직관만이 브랜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와 ‘어떻게 볼 것인가’를 구분하는 건 말장난을 위한 것이 아니다. 브랜드 인사이트 능력을 올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학습 방법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가 ‘발견’이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해석’이다.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고,
무엇을 입었는가를 물어보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들어야 한다.
무엇을 먹는가를 묻고 어떤 트렌드를 즐기는가도 파악해야 하며,
오늘 무엇을 사는가에서 무엇이 부족한가도 찾아야 한다.
어떤 컬러를 선호하는가를 질문하면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어떤 휴대전화를 쓰는가에 따라서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도 확인해야 한다.
상품을 사는가와 브랜드를 수집하는가라는 질문은 너무나도 다른 소비자의 내면을 보게 한다.
브랜드를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시간여행이라고 불리는 ‘시장조사’다. 특히 거리 조사를 많이 하는데 무작위 혹은 일정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얻는 것은 브랜드 인지도에 따른 숫자이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브랜드 지식은 말 그대로 다수의 의견을 ‘객관적’이라는 이름 아래 순위로 나열한 것이다. 연상 이미지 혹은 선호도를 알기 위한 항목도 있지만 겨우 20분 만에 평균 50개 항목에서 정확한 정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간혹 주변 사람들이 ‘소비자 조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를 조사하는 건 쉽다. 출마한 후보 중에서 뽑으면 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상황이 연출되게 마련이다. 나는 조사 신뢰도에 대한 질문에 50퍼센트는 믿고, 50퍼센트는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필자가 믿는 50퍼센트도 나도 알고 있는 답변이 나올 때만 믿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오면 반드시 FGI 혹은 1:1 심층 조사를 통해서 확인을 해보아야만 한다.
거리에서 브랜드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공부를 할 수 있다. 지역별로, 나이별로, 시간대별로 어떤 브랜드들이 가장 많이 보일까? 양재동에 있는 이마트와 코스트코 주차장에는 어떤 자가용이 가장 많을까? 계산대에서 그들이 사는 물건들은 무엇이 많으며 특별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생김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브랜드 학습은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다. 1년 하는 것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멈춤 없이 해야 한다. 소비자는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옷만 보지 말고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사람만 보지 말고 공통점을 보고, 공통점만 보지 말고 패턴과 변형 점을 보아야 하고 그리고 멀리서 큰 그림으로 미래도 봐야 한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시장조사라고 하지만 패션업에 종사했던 필자는 시간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트렌드는 분침 그리고 스타일은 시침이라는 시계를 가진 패션 마케터들에게는 조사가 아니라 여행이다.
결국 이렇게 시장의 결을 찾는 훈련의 대단원은 브랜드 론칭에 있다. 왜냐하면 브랜드 론칭도 결따라 론칭해야만 빠른 시간 내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력이야말로 브랜드의 단단한 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 브랜드 구성의 아이디어와 콘셉트 그리고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더라도 사람으로 구성된 브랜드 결이 허술한다면 그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와 경기 분위기에 쉽게 와해될 수 있다. 최고의 브랜드는 최고의 전문가와 최고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결이 완성된다. 결속력이 확실해지면 브랜드 론칭의 매 순간마다 오는 위기 앞에 불굴의 결단력으로 의사 결정력을 높여 론칭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모였다고 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는 것은 잠재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기업은 좋은 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섬기면 고객은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어 돌려준다. 브랜드는 고객이 결정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가 해야 하는 것은 브랜드의 성격과 고객의 성격을 촘촘히 짜인 원단처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브랜드는 고객의 가치관, 고객의 성향, 고객의 행복 그리고 고객의 것이 되어야 한다. 브랜드와 고객이 얼마나 하나가 될 수 있는가가 브랜드의 결을 결정한다.
브랜드의 결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타이밍이다. 나무도 사계절이 있으면 단단한 결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브랜드도 어떻게 론칭해서 어떤 기후로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아마 10년 이상 회사를 경영했던 사람이라면 성공과 타이밍은 같은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 공감해 줄 것이다. 시장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경쟁자는 어떤 약점 때문에 어려워지고 있는가? 새로운 미래 강자는 어디서 오고 있는가? 지금 고객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을 ‘시간’으로 환산과 환원하여서 브랜드 론칭 때를 결정해야 한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강한 경쟁자를 만나면 경쟁을 통해서 강해지던지 아니면 사라져 버린다. 시장에 새롭게 론칭되는 브랜드는 경쟁 브랜드가 결정한 규칙과 시장에 던져진 것이다. 이미 시장의 결이 있기 때문에 그 결을 거슬러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 일상에서도 결을 반대로 해서 자르거나 찢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불가능한 일이 많다.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있다. 우리의 강점을 경쟁자의 약점의 결을 따라서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을 해야 한다. 일단 결이 찢기면 공격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결이 마지막 결로서 흐름 Wave이다. 최고의 패션 브랜드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만드는 브랜드이다. 왼손으로는 스타일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트렌드를 만드는 브랜드는 거대한 문화의 흐름을 만든다.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 문화와 트렌드는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 충격파 shockwave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거부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거리의 물결을 통해서 단 한 번에 시장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론칭하는 신규 브랜드에게 있어서 시장 안착의 시간을 끌면 끌수록 시장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4개의 결은 조직력, 고객 친화력, 순간 결정력 그리고 시장 판단력에 의해서 브랜드의 결을 결정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결은 강해지면서 그 누구도 찢을 수 없는 강력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브랜드의 결이 단단한 브랜드 결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한 브랜드는 유연한 결을 가진 브랜다. 고객의 욕구, 트렌드의 변화, 경기의 움직임에 따라서 결따라 변화되면서 혁신하는 것이 바로 결이 강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거리의 결을 거슬러 올라가다
앞서 말했듯이 경영학적 시장조사 대신에 필자는 시간여행이라는 관점에서 거리에 나간다. 굳이 시장조사라는 목적성을 가져야 한다면 ‘라이프스타일 탐사 여행’ 정도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장조사에서 시장은 정말로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같은 시장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의 삶과 가치, 세계관을 연구하는 것이다.
홍대 지하철역 5번 출구 앞서는 올라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시장’ 조사 때문이 아니라 ‘사회’ 혹은 ‘문화’ 탐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는 말 그대로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회를 해석하고, 그 결과로 살아가는 방식과 상징을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장조사는 문화탐구(culture explore)다.
시장조사는 사회 연구(social research)다.
시장에서 팔고 있는 각종 브랜드는 욕구의 상징이기 때문에 시장조사는 상징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커뮤니케이션과 교환 활동이기 때문에 시장조사는 사회와 문화 구조의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욕망과 소망의 구체화다. 따라서 시장조사는 인간의 해석이어야 한다.
특히 패션 브랜드들은 다음 시즌 영감과 샘플을 구매하기 위해서 해외 시장 조사를 떠난다. 안타깝게도 항상 구매하는 곳에 가서 신상품만 샘플로 구매하거나 카피할 것만 찾는 것이 패션 브랜드의 실정이다. 왜 그 상품이 거기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사실 시간도 없다).
필자가 제일 선호하는 나라는 런던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그곳은 수많은 인종들과 문화와 그리고 상징들이 영국스러움과 맞물려 런던스러움으로 재생산된다. 찾는 것은 바로 재생산된 상징이다. 이런 상징들은 콘셉트가 강한 신규 브랜드가 되어 시장에 나타나기도 한다.
누구나 알듯이 버버리는 영국 패션의 상징이고, 셀프리지 백화점은 런던 트렌드의 상징이다. 어느 도시 어느 나라의 가치가 어떻게 상징이 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마케터의 몫이다.
런던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음식점은 일본 음식점이다. 일본의 패션 브랜드들은 런던 거리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런던에 있는 일본 상품을 보면서 런던이 이해하는 동양의 정서가 어떻게 축적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향후 런던에 론칭할 한국 브랜드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 시장에 나온 상품은 사람들의 욕구에 반응해 탄생한 것들이다. 그 상품을 보면서 우리는 런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탐닉하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라고 했다. 런던은 패션 마케터에게는 한국의 미래, 오지 않을 미래 그리고 한국에게는 없는 과거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보물섬이다.
시장조사 실전 1장. 한국에서 시장조사 ‘연습’을 하라
무작정 해외로 떠나서 시장조사를 하면 안 된다. 일단 해외로 나가면 시차와 낯선 환경, 들뜬 마음 때문에 약 이틀(사람에 따라서 4일까지) 정도는 흥분 상태가 지속된다. 제대로 시장조사를 할 수 없다. 또한 무작정 떠난 사람들은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사진만 찍어낸다. 이런 사람은 떠날 때쯤이 되어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먼저 시장조사를 연습하면 좋다. 압구정에서 영국식 심벌 찾기를 해 보아도 좋고, 혹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도시(대구 동성로나 부산 서면 등)를 정하고 거기서 시장조사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비록 해외와 다르지만 두 차례 정도의 연습을 통해 도착하자마자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장조사를 시작할 수 있다.
시장조사 실전 2장. 한국에서 먼저 시장 ‘조사’를 하라
1장이 찾는 연습이라면 2장은 실제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사실 해외에서 뜬다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한국에 다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해외로 시장조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더라도 대부분 전체보다 부분적인 것이 많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기에 먼저 한국에 도입 적용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나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구석구석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해외 시장조사를 떠나기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숙지해야만 한국에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해외에서 무엇을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것에 적용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국내 것을 완전히 알아야만 해외의 것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실전 3장. 관련 책을 모두 보거나 모두 보지 않거나
여행 정보서를 한 권만 읽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전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감정과 느낌이 배어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저자의 관점을 흡수하게 된다. 일종의 선입견이다. 날 것 그대로 느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런 때는 아예 읽지 않는 게 낫다. 특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생한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정보를 얻는 시장조사라면 관련된 책은 모두 읽고 가야 할 것이다. 그때는 정보에 대한 느낌보다는 해석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같은 지역에 2회 이상 시장조사 계획이 잡혀 있다면 첫 번째 시장조사 때는 아무 정보 없이 가기를 권한다. 시장조사에는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것 모두가 필요하고 그 조화가 필요하다.
시장조사 실전 4장. 세 번 이상 가야 할 곳도 있다
대부분의 관광은 한 번이면 족하다. 다시 찾았을 때는 처음 받았던 감동만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조사도 가급적 많이 보기 위해 모든 코스는 한 번만 죽 돈다. 그렇지만 반드시 세 번 이상 가야만 보이는 곳이 있다. 그때는 그들의 부족한 부분까지 보인다. 처음 볼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신선해 보인다. 두 번째 보면 정말 신선한 것만 신선해 보인다. 세 번째 보면 그들의 단점과 약점 보완할 점도 보인다. 시장조사를 통해 남의 것을 얻거나 배우는 것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것 가운데 무엇이 좋은 지도 찾아낼 수 있다.
시장조사의 실전 5장. 먼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아야 한다
해외 시장조사를 하면 대개 그들의 건축에 매혹당하게 마련이다. 건축과 도시를 집중적으로 보려는 여행자가 아니라면 일단은 도시의 풍경보다는 세세한 콘텐츠부터 보아야 한다. 사람만 보기, 신발만 보기, 윈도만 보기, 심벌만 보기, 컬러만 보기 등 자신이 온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부분만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공통 패턴이나 규칙,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현지의 트렌드나 스타일, 생활방식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틀 정도는 이렇게 하나만 보다가 3일 뒤부터는 전체를 보기 시작하자. 그러면 그들의 문화와 그들을 감싸고 있는 생각이 보인다.
시장조사 실전 6장. 시장조사는 기록이다
DSLR 카메라를 사용하고 렌즈는 광각에서 망원까지 고루 찍을 수 있는 24-105mm가 좋다. 우천 시나 긴급 촬영을 위해 휴대하기 좋은 똑딱이 카메라를 챙기고, 촬영이 제한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휴대폰 카메라도 챙기면 좋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고 그림을 잘 그려도 흐릿한 사진 한 장보다 정확할 순 없다. 예전에는 14시간 동안 기록이 가능한 녹음기도 가지고 다니면서 거리의 소리까지도 녹음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과 함께 소리까지 들으면서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시장조사 실전 7장. 쌍끌이 방식의 탁월함
테마별로 시작해서 거리별로 중복 조사한다. 일단 백화점별, 명품 브랜드별, 박물관별로 따로 본다. 그다음에 거리에 나와 있는 매장별로 모두 훑어본다. 종횡을 가로지르는 시장조사는 대단한 중노동이다. 하지만 일단 테마별로 보아야 관점과 패턴을 읽을 수 있고, 거리에 있는 매장을 모두 보아야만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업계나 종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衣)·식(食)·주(住)·휴(休)·미(美)·락(樂)에 해당하는 산업군은 이렇게 해야 큰 그림과 그 안에 숨어 있는 그림을 모두 찾을 수 있다.
특히 필자의 사냥터인 런던에서는 더욱 절실히 이 방식이 요구된다. 예술, 디자인, 아이디어, 상품들이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길바닥만을 훑고 다녀서는 뷔페식당 가서 배불리 먹었지만 뭘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다.
시장조사 실전 8장. ‘왜’와 ‘어떻게’에 집중하라
현상은 복잡하다. 그러나 법칙은 단순하다. 시장은 복잡하다. 하지만 욕구는 단순하다. 해외 시장에서 신기한 상품은 우리 눈에는 특허품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용품이다. 그저 그들의 욕구와 욕망, 필요를 반영하고 있는 상품이다.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은 뭐지?’라는 관점보다는 ‘이것이 왜 여기 있지?’라는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필요하면 학생이나 관광객으로 가장해 그 상품의 기원과 출처를 물어보는 것도 좋다. 같은 질문을 한 가게에서 한 명한테만 물어서는 안 되고 여러 곳에서 5명 이상에게 충분히 질문해 보는 것이 좋다. 시장조사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은 이런 욕망과 욕구를 이런 상품으로 대치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까?’라 할 수 있다.
시장조사 실전 9장. 진짜 짜릿한 맛을 주는 의외성
하루 정도는 스케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지도를 잠시 배낭에 집어넣고 그냥 걷는 것이다. 크고 깊은 산에서도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는 야생 동물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관광객과 시장이 몰려 있는 거리에는 ‘팔릴 물건’만 있다.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 들어섰을 때 백과사전에서도 보지 못했던 괴상한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진정 새롭고 특별한 것과 조우할 수 있다. 그것을 만나야 한다. 우연은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방법은 치안과 교통이 확실한 곳에서만 사용하길.
시장조사 실전 10장.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정보를 조심하라
그들의 정보를 지나치게 믿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거부할 필요도 없다. 처음 여행이거나 시장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지 안 내지가 숙달된 가이드라면 핵심 관광 코스만을 간결하게 알려줄 것이고, 그러지 못한 초보라면 자신이 아는 곳만 가르쳐 줄 것이다. 진정 보고 싶은 것은 보지 못하고, 결국 수많은 한국인들이 거쳐 간 코스만 보거나 아예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시장조사의 기본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 현지인이 알려준 코스는 참고와 확인용으로 사용하는 게 좋다.
거리의 결을 브랜드의 결로 잇다
시장조사는 청각·시각·후각 등 가능한 감각 기간을 모두 다 동원해 찾고자 하는 것을 찾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직관도 동원해야 한다. 인간의 야생성이 뿜어져 나오는 시기다. 정보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감각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면서 전투 직전의 긴장감 같은 것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감각들이 모조리 살아나면서 눈앞의 온갖 현실이 색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같은 사물도 목적하는 바와 필요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시장조사야말로 고정관념에서 탈출하고 혁신적인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직원들에게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시장조사에 임하라고 말한다. 다른 회사 직원에게는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여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처럼 임하라고 당부한다.
종군기자는 총알 대신 메모리를 끼워 목숨 걸고 사실을 찍는 사람이다. 과연 그 이유가 높은 생명수당 때문일까. 아프리카와 아마존 정글에서 치명적인 독과 매서운 이빨을 가진 동물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는 작가들은 재미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치열함이 있을까. 그들의 감각기관은 일을 하는 동안 어떤 상태에 있을까. 시장조사는 관광이 아니다. 시장조사는 마케터의 소명이 시작되는 지점이며 혁신으로 가는 단초다.
시장조사는 대개 길어야 한 달 이내, 보통 일주일에서 10일 정도에 이루어진다. 실제로 그 시간 내에 성공할 만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시간에 필요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임무이기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야 한다.
회사에서 필자는 직원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출발 한 달 전부터는 운동을 해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실천하지 않는다. 6일 출장을 위해서 한 달 전부터 운동을 하라는 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 8시에 시작해 저녁 9시 정도에 끝나는 시장조사를 하면 체력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된다.
이 부분에서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시장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앞서 말한 대로 다르게 보는 법과 새롭게 보는 법을 배워서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경험상 이런 혁신적인 자세를 배우기 위해서는 자의적으로 극한적인 상황과 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마케팅 세계에서는 절박하면 대박 아이디어가 나온다. 시장조사의 기술은 집중해서 제대로 많이 보는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장조사를 하면서 일주일이 지나면 그곳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패션 마케팅이 다른 분야보다 수월한 것은 옷은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어떤 사람이 치약을 어떤 것을 썼는지, 자동차는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제저녁에 먹은 과자는 무엇인지 그리고 주머니 속에 있는 휴대전화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 마케팅이 아직도 전문화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패션 브랜드에서 이런 방법을 통해서 콘셉트, 전략 그리고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도 거리처럼 결이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될 때 그 누구도 패션 쇼핑몰이 가장 크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보고서에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팬티 팔면서 매출 300억 원이상을 하는 곳도 있고, 천억 원대 쇼핑몰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러한 트렌드의 결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패션 브랜드는 온라인 활용을 홈페이지 혹은 카탈로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람과 물처럼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와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느낄 수 있지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쳐다만 보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터넷도 거리다. 거대한 시장의 거리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패션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대답하기에 당혹스러운 질문이지만 답변하려고 생각할 때, 갑자기 패션의 본질로 다가갈 수 있다. 이 질문을 다른 말로 번역한다면 패션인들은 패션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이다. 일반적인 순서로 나열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경쟁 브랜드로부터, 1등 브랜드로부터, 옛 전통으로부터, 소비자들의 옷차림, 대중적 선호 컬러, 일반적인 국민들의 정서, 연예인들의 스타일, 해외 트렌드, 사회 문화적 소비 코드,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유행, 후기 낭만파의 그림으로부터, 소비자의 감각 변화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고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패션의 영감의 시작은 그 무엇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통합된 그 무엇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영국 몬순 monsoon 브랜드를 만든 피터 사이먼 Peter Simon 회장은 1972년에 런던에 작은 매장을 오픈하여 현재 브랜드 액세서라이즈 Accessorize를 포함하여 1조 5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거대 패션 기업을 만든 패션의 영감은 인도 여행을 하면서 동양적인 섬유와 자수에 영감을 받았고 이것이 다국적 그리고 다문화적 성향에 강한 런던에서 잘 맞을 것 같아서 콘셉트도 이름도 ‘몬순’으로 론칭했다. 1조 5천억 원 브랜드의 성공사례를 한 줄로 표현할 수 없지만 공식과 법칙은 만들 수 있다.
1) 인도 모순 지방의 컬러와 스타일 연구
2) 스트리트 패션과 Mix & Match가 독특하게 강한 영국에서 패션으로 론칭
3) 영국에서 트렌드로 재해석되고 스타일로 창조된 모순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패션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모순 브랜드의 사례를 본다면 따질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이 ‘통찰’에서 시작하여 ‘통합’에서 이루어졌다. 아주 짧게 3단계로 구성해 놓았지만 여기 안에는 경영자의 의지, 디자이너의 감각, 소비자의 피드백, 경쟁 브랜드에 대한 대응상품, 다른 브랜드에서 벤치마킹한 상품 등 또 다른 무수한 변수들이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한 홀 한 홀 결이 되어서 서로 촘촘하게 짜이게 된다. 그리고 상품이 되어서 나오게 된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리뉴얼 전략을 구축한 컨버스 기획서 전문은 스콜레 프로젝트 다큐멘터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