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 Feb 25. 2017

앙 선생님


직관 지능, 통찰력 

 유능한 패션 기업인들과 시장조사를 동행하면서 놀아운 일을 보았는데, 그들은 ‘순간적으로’ 트렌드와 히트 상품 그리고 한국적 패션 시장에 맞는 상품들을 수백 개의 매장을 돌아보면서 찾았다. 말 그대로 ‘순간적’ 초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순간의 힘’의 원천은 시장 조사 오기 직전까지 옷을 팔았던 경험,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품의 선별, 독특한 자신의 취향 그리고 특이한 상품을 발견했지만 머릿속에서 수정 보완 그리고 추가를 통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이다. 이러한 그들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해외 구입 샘플에서 자신의 제품이 되어 매장에서 판매하기까지의 1년이라는 기간을 추적하면서 판매율을 확인해보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구매한 샘플은 디자인실로 들어가 이것저것 조정하면서 또 다른 상품으로 된다. 하지만 품평회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서 거기서 더 수정되거나 탈락되기도 한다. 혹시 다시 수정된 상품들은 원단과 컬러 그리고 부자재가 적정 가격을 맞추다 보면  거의 새로운 상품으로 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깐 처음 샘플과 전혀 다른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패션 경영인들(혹은 디자인 실장)의 직관적 선택(카피 상품은 제외한다)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으로 학습된 직관력은 패션 마케팅 현장에서 본능적이 아니라 지능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자료, 정보, 지식을 통해서 생각의 패턴(전략화)을 충분히 체득한 다음에 급변하는 시장에서는 직관에 의존해서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정확히 꿰뚫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패션 시장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산업보다 가장 빨리 변화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밤과 낮, 트렌드와 개인의 성향, 평상시와 외출, 근무와 휴가 그리고 기분에 따라서 옷은 변화된다. 간혹 머리로만 전략을 짜는 기획자들이 이런 세상의 변화를 파워 포인트 보고서와 경영전문 용어로 담아서 현장에서 성장한 내부 직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왜냐하면 보고서를 모두 완성할 즈음에 패션은 또 변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컨설팅을 할 때 1400억 원짜리 브랜드의 론칭 보고서는 37페이지였다. 사실 이것도 너무 많은 내용이다. 그다음 해에 대기업 브랜드의 리뉴얼 보고서는 1,500페이지를 만들었다. 결과는 어떨까? 대기업에서 운영했던 방대한 조사와 자료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는 3년 전에 사라졌다.      


너무 직관적이어서 위험한 것도 있다. 사전을 뒤져야만 아는 어려운 전문 단어들과 멋대로 만든 조어들 그리고 근거도 없는 해외 트렌드를 끼워 맞추어서 트렌드와 감성이라고 설명하는 감각적인 보고서들은 그야말로 입에는 맛있지만 몸에는 치명적인 멜라민 같은 독극물이다. 느낌만 받으라는 이 보고서는 말 그대로 느낀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매우 유혹적인 그림들과 단어로 그럴싸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검증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하다. 폼나게 만든 보고서를 발표하는 사람에게 성공 가능성의 진실성을 알아보기 위해서 투자해보라고 제안해보라. 제안한 보고서를 믿고 집행해서 성공하면 성과급으로 얼마든지 줄 것을 약속하면서 강권해보면 그 사람의 태도를 통해서 보고서의 진실성을 알 수 있다. 

 조사와 통계, 전략 전문 용어로 잘 짜인 보고서 그리고 검증할 수 없는 트렌드 보고서.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것이 서로 톱니를 맞추어가면서 살펴보아야 한다. 비약처럼 들리겠지만 보고서는 열심히 살펴본 후에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패션 브랜드는 연예인이 한번 입고 나오면 다음날 아침에 뜬(?) 브랜드가 되거나, 트렌드에 영향을 받으면 하루아침에도 죽은 브랜드도 살아나기도 한다. 물론 대수롭지 않은 실수 하나로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타오르고 사라지는 옥탄가가 높은 휘발성 산업이다. 그래서 과거의 데이터와 미래의 추측으로 된 보고서는 자세히 보되 무엇보다도 현재 시장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패션 시장에서 믿어야 할 지식은 앞서 설명했던 숙성된 현장 경험과 숙련된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찰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어린 왕자도 이런 말을 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 언뜻 듣기에는 비상식적이며 비과학적인 말이지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사실이다.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을 볼 수 있을까?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볼 수 있을까?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품성을 볼 수 있을까? 확실히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어린 왕자의 이런 통찰력으로 인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초현실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불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보이지 않기에 중요하다’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정신세계이며, 그 세계는 안구(眼球)의 가시범위(可視範圍)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세계를 볼 수 있을까? 일단 눈을 감아라. 그리고 마음에서 느끼는 그 무엇인가를 형상화하라.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가? 

패션 마케팅 책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과 ‘중요한 것’을 같은 이해의 범위에 집어넣어서 마치 괴변에 가까운 철학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대사를 패션 마케팅의 중심을 뚫고 지나가는 지혜의 광선과 같이 느껴야 한다. 강렬한 에너지의 흐름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작과 완성은 바로 패러다임에 달려있다.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인 토마스 쿤(Thomas Kuhn)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엄청난 물의와 혁명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그의 저서《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그는 과학의 발전은 누적적인 개선의 결과가 아니라, 동시대의 과학자 집단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와 가정, 기존의 법칙, 즉 패러다임의 파괴와 재창조라는 혁명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 후 이 용어는 과학사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쓰여오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업을 경영하는 영역까지 확산되어 왔다. 매력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모호한 점을 가지고 있는 이 용어의 일반적 의미는 ‘동시대의 집단 속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적 가치와 규범의 체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이다. 이 말은 파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선입견에서 벗어나 오히려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이자 경영학 교수인 피터 드러커는 패러다임 변화의 진수를 ‘혁신이란 포기를 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하던 것을 멈추는 것이다. 이 정의에 의해서 피터 드러커의 패러다임을 볼 수 있다. 그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혁신을 바라보지 않고 혁신의 본질에서 사실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본질을 바라보는 능력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가 눈의 능력을 버리고 그토록 얻고자 하는 통찰력이다. 통찰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는 In(내부)+Sight(시야)의 합성어다.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우리가 본질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가진다면 제3의 눈, 곧 통찰의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앙드레 김과 개그맨이 생방송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개그맨은 패션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에게 이렇게 말했다. “끝으로 패션이 무엇입니까?” 나는 침대 위에서 귤을 먹다가 벌떡 일어났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패션을 물어보는 것은 마치 아버지에게 ‘당신이 제 아버지임을 증명해보세요’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자체가 개그일 수도 있다. 앙드레 김은 큰 눈을 한번 껌뻑이고 이렇게 말했다. 


“패션은 열정이며, 꿈이며, 삶이며, 행복이며…그리고 음… 낭만입니다”


그는 패션의 본질 넘어있는 또 다른 세계를 말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개그맨은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고 경의도 표현하지도 않고 “아~예, 그렇군요”라고 에드립으로 말하고 급히 다음 대사로 넘어갔다. 여하튼 앙드레 김의 옷은 옷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의 옷은 그의 초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가치였다. 그가 바라보는 옷은 패션 이상의 그 무엇인 것이다. 그는 눈으로 보지 않고 통찰력으로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션 리더십은 무엇일까? 물론 통찰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이너의 경우 그 수준을 태권도의 품계로 비유한다면 하얀 띠는 끼, 노란 띠는 학습, 파란 띠는 열정, 빨간 띠는 프로, 품 띠는 인내 그리고 검은 띠는 통찰력이 아닐까? 트렌드를 읽고, 그 트렌드를 자기 브랜드에 녹이고, 자기 매장에 배이게 하며 그리고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통찰력에서 나온다. 


패션은 ‘기술집약’이기보다는 ‘통계’와 ‘트렌드’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장을 넓게, 깊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펴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런 통찰력이 마케팅을 통해서 정제되고, 조립되고 그리고 정렬될 때 강력한 패션 마케팅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매장 앞에 가서 들어가는 소비자 그리고 구매한 소비자와 구매하지 않은 소비자를 살펴보자. 구매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분위기와 브랜드와 얼마나 닮았나를 확인해보자. 시장을 리드하는 브랜드들이 매장 안 행거에 걸려있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만약 보인다면 통찰력을 활용한 것이다.  


의류 마케팅과 루이비통 마케팅은 다르다.

속옷 마케팅과 빅토리아 시크릿 마케팅은 다르다. 

쥬얼리 마케팅과 티파니 마케팅은 다르다. 


매거진의 이전글 Search & Researc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