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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Oct 27. 2017

초연결 시대에도 변치 않을 마케팅

이미 우리는 2018년을 살고 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방안의 실내 온도계가 보일러에게 말한다.  

‘주인님이 곧 도착할 시간이다. 지금 작동해라’. 

보일러가 그 말에 즉각 반응하며 작동한다.  

주인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온도가 적절히 올라간 상태다.


침대 위의 갓난아기가 소변을 본다. 

기저귀가 아기의 소변을 흡수한다.  

그러자 기저귀에 부착된 센서가 트위터로 아이의 소변량에 대한 트윗을 엄마에게 보내준다.  

‘소변량이 많아요. 갈아주세요’.  


조광수 교수의 책 ‘연결 지배성’에서 소개된 사물 인터넷의 시대의 생활의 단면을 보면, 기저귀와 트위터가 서로 소통하고, 온도계와 보일러가 서로 소통한다. 소속 회사도 다르고 기능도 전혀 다른 기기가 서로 원활하게 협력한다. 비로소 자연 생태계를 넘어 시장 생태계에서도 만물이 서로 돕는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산업 혁명 이후,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건너오면서 마케팅은 치열한 경쟁의 원리로 구동되어 왔다. 시장을 경쟁의 구도로만 보고, 마케팅을 경쟁에서 승리하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전통적 마케터에게, 시장은 전쟁터이고, 고객은 전리품이다. 브랜드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은 ‘전략’이고, 판매를 위한 메시지를 세우는 것은 ‘전술’이다.  고객에게 순간은 맞혀야 할 ‘과녁’이며, 그들이 마인드는 ‘침투’해서 ‘선점’ 해야 할 요새이다. 브랜드는 자신의 구역(domain)에만 집중해야 하고, 다른 종(種)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타적 성벽을 높이 세워야 한다. 때문에, 전통적 마케터에게 마케팅이란 브랜드가 시장 전쟁의 승리를 통해 왕으로 등극하여 고객의 삶을 통치하기 위한 한판의 전투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사물과 사람이,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에는 배타성이 아니라 개방성, 독점이 아니라 공유, 수직이 아닌 수평,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생태계의 발전을 견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상부구조인 사상은 하부구조인 시장에서 실체화되기에 연결과 협력의 가치는 마케팅 생태계에서 이미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마케팅 구루들은 이미 태세를 전환했다.


경쟁우위 점을 찾는 것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마이클 포터는 어느덧 경쟁이 아닌 공유 가치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시장 세분화, 타깃 설정, 차별화의 포지셔닝을 강조하던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의 일방성을 폐기, 제품 기획 및 개발단계에서부터 마케팅의 모든 과정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연결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장하고 있다.  


‘연결성’이 강조되는 마케팅 중심에는 ‘고객의 가치’가 있다.  연결이 중요한 이유는 협력을 위함이며 협력의 목적은 고객의 가치 충족에 있다.  온도계와 보일러, 즉 서로 다른 기기가 상호 협력하는 목적은 한 가지, 자신을 고용한 주인(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가치 중심적 사고로 판단하면, 온도계가 주인에게 약속한 최종 가치는  ‘온도의 측정’이 아니며, 보일러가 약속한 최종 가치는 ‘온도의 상승’이 아니다. 두 기기가 지향하는 가치의 최종 합일점은 주인에게 선사하는 ‘안락함’이다. 서로 다른 두 기기는 최종 가치인 ‘안락함’을 제공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 것이다.  


사실, ‘고객의 가치’란 마케팅에 있어서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오래된 미래와 같은 단어이다. 핵심이고 본질적인 단어가 진부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미 타락하고 오염되었다는 증거이다.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오염되었듯. 

다가오는 초연결 시대는 마케팅에서 오염된 본질인 ‘고객의 가치’가 새롭게 재조명된다. 

제품 중심의 마케팅에서 사람 중심의 마케팅으로 진정성 있는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고객의 가치’는 오래전부터 강조된 마케팅의 본질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데오르드 레빗 교수는 196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제품의 기능에 집중하다가 정작 고객의 더 깊은 욕구를 놓치는 ‘마케팅 근시안’을 경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마케터 또는 마케팅이 고객의 가치에 집중하면, 온도계의 목적을 단순 측정이 아닌, 적절한 방 안의 온도 조절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 ‘고객이 원하는 것은 지름 0.6cm의 드릴이 아니라, 0.6cm의 구멍이다’는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는 제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일(Job)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저귀의 가치는 소변을 흡수하는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닌, 아이의 쾌적한 수면을 도와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함에 있는 것이다.  


고객의 제품 구매 이유가, 삶의 특정 상황에서 이루고자 하는 발전, 즉 일(Job)을 위해 제품을 ‘고용’하는 것이라면, 마케팅의 본질적 가치는 고객이 원하는 삶의 발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브랜드의 가치는 고객의 일(job)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관련된 다른 도메인의 사물들과 연결되는 능력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재규어의 내비게이션은 자동차를 목적지로 이동시키기 위해 길을 안내하는 기능에 멈추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근처 주차장을 찾아주고, 주차한 후 다시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안내하는 기능까지 해낸다. 이는 고객이 특정 상황에서 이루고자 하는 발전, 즉 고객의 일을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이다. 

사물 인터넷의 시대야말로, 피터 드러커가 말한, 고객이 궁극적으로 사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에 마케터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마케팅의 본질이 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사회의 진보는 경쟁으로 이루어지는가 협력으로 이루어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경쟁’은 마케팅의 영역에서 그동안 과대평가되어왔다. 

100여 년 전, 러시아의 아나키시트 혁명가이자 지리학자였던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프로포트킨은 그의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 (원제: Mutual Aid : A factor of Evolution)에서, 다윈주의자들이 역설하는 적자를 위한 생존 경쟁만이 아니라, 상호부조(扶助)의 원리가 생태 계 진보의 강력한 추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공동체의 어느 구성원이든 먹이를 달라고 요청하면 나누어 주는 것이 개미들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모든 생명체는 종의 경계까지 넘어선 상호부조성을 통해 혹독한 자연의 시련을 극복해왔으며, 상호부조를 최고조로 발전시킨 동물 종이야 말로 가장 번성해 왔다고 그는 주장했다. 오래전 그의 주장은 연결과 협력으로 구동되는 즉, 지금의 초연결 시대가 가져올 미래의 시장 경제 체제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만물이 서로 돕는 초연결 시대에는, 상호부조를 최고조로 발전시킬 수 있는 브랜드 즉, 연결을 지배하는 브랜드와 고객 가치의 본질로 돌아가 제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목적 기반 브랜드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며 넓게 번성하여,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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