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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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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Feb 10. 2018

주께서 쓰시겠다

예수님이 타셨던 나귀

누가복음 19장 26절~35절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 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1. 나귀


“실로!, 실로!, 실로!”  

아홉 살 된 카이는 아침부터 자기와 함께 지냈던 실로라는 나귀를 찾고 있었습니다. 


“실로!... 실로! 어디에 있니? 어? 실로미는 거기에 있구나. 너의 엄마는 어디에 있니? 어제저녁에 아빠가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실로! 실로! 아빠! 어디에 계세요?” 


라엘은 다락방에서 자신의 아내와 기도하다 아들 실로가 나귀를 찾는 소리에 기도를 멈추고 조용히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라엘은 아침마다 엄마 나귀를 찾는 아들 카이에게 엄마 나귀를 팔았다고 오늘은 이야기를 하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여보… 카이에게 오늘은 엄마 나귀를 데리고 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죠? 하루 이틀이면 잊을 것 같았는데 저러다가 애 병나겠어요!” 라엘의 아내는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라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실로라는 나귀는 3년 전에 한쪽 다리를 절어서 친구가 없었던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나귀였습니다. 나엘은 자신의 아버지가 물려주셨던 작지만 금으로 만든 장식 칼을 팔아서 새끼 나귀를 사서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 카이에게 있어서 생일 선물로 받은 나귀는 여동생처럼 소중하고 귀여운 나귀가 되었습니다. 친구 없이 항상 집 주변의 벌래나 꽃들과 함께 놀아야만 했던 우울한 아들 카이는 실로라는 나귀로 인해서 성격도 많이 활발해졌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귀를 타고 동네를 다니면서 나귀를 타고 싶은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많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아들 카이의 성격이 활달하게 변하고 친구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라엘은 아버지의 유품을 팔아서 산 나귀야말로 지금까지의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라엘에게 너무나 큰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곧 돌아오는 이스라엘 명절인 유월절까지 밀린 집값을 내라는 주인의 독촉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그동안 라엘은 돈을 벌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서 땅을 빌려 곡식을 심어서 제법 열매가 영글어져 갈 때 로마 군인들이 반란군과 싸우면서 밭을 망가뜨려서 심어 놓았던 모든 곡식을 하나도 얻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 중에 그동안 밀렸던 각종 세금과 친구들의 빚 독촉 그리고 집주인이 밀린 방값을 내라고 매일 마다 독촉을 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집주인은 당장 돈을 내지 않으면 쫒아 낸다고 해서 결국 아들의 나귀를 헐값에 팔았던 것입니다. 아들이 너무나 사랑했던 나귀라서 가슴이 아팠지만 나귀 실로의 새끼인 실로미가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카이에게 이야기해주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카이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실로를 기다렸기에 라엘은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젯밤의 꿈 때문입니다. 라엘이 막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라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나의 아들 라엘아, 내일 주님이 이곳으로 지나가시니 네가 주님을 맞이 해야겠다.”

“주님이라뇨? 그리고 제 집에서요?”

“너의 나귀를 시장 입구 옆에 있는 골목에 있는 나무에 묶으면 주님의 제자들이 와서 풀어 갈 것이다.”

“그런데…그 나귀는 어제 팔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귀 새끼입니다”

“바로 그 나귀다”

어제저녁 라엘은 꿈을 깨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 아내는 남편이 자리에 없어서 돈 걱정으로 인해서 잠을 못 자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내는 라엘의 기도소리가 다락방에서 나는 것을 들었고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꿈이 사실이라면 나귀 새끼를 묶어두고 주님의 종들이 와서 데리고 갈 것입니다. 꿈이 그냥 꿈이라면 누구도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나 라엘은 아침이 밝아 오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귀 새끼를 주님에게 드리면 되는 것이지만 아들에게 있어서는 불편한 다리를 대신하는 또 다른 다리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아들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엘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녘 라엘은 나귀 새끼를 드리고 엄마 나귀를 어떻게 다시 사 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비롯해서 빚 독촉으로 인한 어려움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라엘은 아내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의 말대로 합시다. 일단 새끼 나귀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묶어 두죠. 주님이 쓰신다고 하면 드려야죠. 만약에 내 꿈이 그냥 꿈이었다면 다시 데리고 와서, 카이에게 사실대로 오늘은 말하겠소” 

라엘과 아내는 다락방에서 내려왔습니다.

“카이! 어디에 있니? 카이! 아빠는 여기에 있다!”

“어? 아빠! 삼촌에게 빌려주신 실로는 오늘 안 왔나요? 오늘 저는 실로를 타고 친구들이랑 언덕 위에 있는 친구 집에 가기로 했어요! 생일 초청을 받았거든요.”

“생일 초청! 맞아.. 그 친구 이름이 무엇이었지?”

“엘사 다요!”

“그렇지! 엘사다… 아빠가 너의 친구 엘사다의 생일을 위한 작은 선물도 준비했지!”

“그래요.. 신난다! 제 친구가 너무 좋아할 거예요.. 그런데 실로는요?”

“어! 실로…. 실로는 아빠가 삼촌 집에 가서 데리고 올 거야… 삼촌이 바빠서….. 아빠가..”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어.. 그건 안돼.. 아빠가 허리가 아파서 너를 업지 못하거든… 오늘은 아빠 혼자서 갈게”

“아빠 허리가 아프면.. 할 수 없죠… 아빠 시로미를 보세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야위어 보여요.. 그럼 빨리 다녀오세요”

“그래, 그럼 엄마랑 아침을 먹고 있거라, 아빠가 다녀오마”

“예!”

카이가 누군가의 생일 초청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실로 때문일 것입니다. 카이는 엄마의 부축으로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라엘은 새끼 나귀를 풀고 시장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아들이 새끼 나귀를 푸는 것을 보지 못하게 그는 조용히 그리고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항상 시끄럽고 뛰어 놀기 좋아하는 이 어린 나귀도 오늘따라 너무 얌전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너무나 얌전해서 라엘은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2.

시장에 도착한 라엘은 어린 나귀를 꿈의 천사 말대로 나무 기둥에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엘은 이제야 어제 꾸었던 꿈은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 꾸었던 꿈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는 집에 가서 아들에게 변명할 것을 고민하였습니다.


“저기요…?” 라엘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새끼 나귀를 만지면서 라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라엘은 긴장했습니다. 얼핏 보아도 너무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서 그

풍채만으로 존경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은 당당한 주의 제자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바리 세파나 제사장 아니면 정부의 고위 관리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 나귀 새끼 얼마입니까?” 그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나귀 새끼의 이빨을 손을 까 보면서 라엘에게 말했습니다. 라엘은 너무나 놀라서 순간적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주님의 제자입니까?”

“뭐요? 이 새끼 나귀가 얼마냐고요?”

라엘은 다시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나귀의 등을 어루만져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도면 돼요? 우리 아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보여준 은화는 6개였습니다. 그 정도면 집값을 내고 어느 정도의 빚은 갚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은화를 보자 라엘은 순간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하심에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주님의 제자라고 말하지 않아서 마음에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매우 비싸게 쳐준 값이라는 것은 알죠? 지금 나는 바빠서 그냥 사는 것이니깐 당신은 오늘 아침에 횡재한 것입니다.” 그는 팔을 뻗어서 은화를 라엘에게 받으라고 했습니다.


라엘은 다시 한번 천천히 말했습니다. 입에 침이 나오지 않아서 혀를 굴려서 입을 닦고 기대와 두려움으로 천천히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쓰시는 것인가요?”

“뭐요? 주님? 참… 나! 무슨 소리야, 아침부터, 내가 당신에게 이 나귀 새끼를 어디다 쓰는지도 허락받아야 되나! 내 아들 생일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했잖아!” 부자는 불쾌한 듯 라엘을 쳐다보았습니다.

“주님의 제자인가요?”

“뭐? 이 친구가 왜 그래… 나는 누구의 제자도 아니야! 내가 그렇게 젊게 보이나?”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파는 것이 아닙니다. 아 나귀 새끼는 파는 것이 아닙니다.” 라엘은 어렵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부자 손에 있는 은화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뭐요? 파는 것이 아니라면 시장에 왜 묶어 놓았소?”

“누구를 드리려고요”

“뭐요… 참 희한한 사람이군. 정신이 있는 거야? 참 나 좋소, 은화 하나 더 드리죠. 이 친구 이상하게 장사하네, 이 정도면 어른 나귀도 살 수 있는 가격이라고! 어제 좋은 꿈 었나 보지!”

“죄.. 죄송합니다.. 이것은 파는 것이 아니라서”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시간이 없다니깐….. 좋소, 하나 더 드리죠” 라엘은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정도의 돈이면 3일 전에 팔았던 어미 나귀를 다시 사고도 은화 하나가 남기 때문입니다. 라엘은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팔면 안 된다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생겼습니다. 눈을 뜨고 라엘은 천천히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파는 나귀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엘의 눈은 은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왜 묶었어? 참 나!  아침부터 장난하는 거야, 뭐야?” 

화려한 옷을 입을 사람은 투덜거리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라엘은 투덜거리면서 걸어가는 부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떠나자 예상하지 못했던 불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젯밤 꾸었던 꿈에 대해서 다시 라엘은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천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천사의 목소리였었습니다. 라엘은 어린 나귀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보자, 점심때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깐 …. 그런데 은화 8개면 어린 나귀를 말만 잘하면 3마리나 살 수 있는데…. 그때 그 은화를 받고 한 마리를 사서 기다릴 걸 그랬나, 그런데… 아니야… 그런데 생각해보니깐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은데> 라엘은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이 나귀는 얼마요?”

이번에는 율법학자처럼 수염이 길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점잖은 분이 라엘에게 말을 했습니다.

라엘은 이분이야말로 주님의 제자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런 길고 위엄이 흐르는 수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의 표정은 하나님의 권위를 사람을 통해서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쓰시려고 하죠?”

“뭐라고요?”

“이 나귀를 누가 쓰려고 사시는 거죠?”

율법학자는 황당한 얼굴로 라엘을 그저 쳐다보았습니다. 

“뭐요? 나귀를 사려고 하는데 왜 사는 지를 이야기 해야 파나요?”

“아니요.. 필요하다기에…... 그냥, 왜 필요한지가 궁금을 해서요” 라엘은 김 수염의 사람의 권위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거…. 참, 당신이 그것까지 알 것 없고, 얼 마냐니 깐?”

라엘은 뒤로 물러가서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에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파는 것이 아닙니다”

“뭐요? 뭘 잘못 먹었소?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죄송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서 쓰려고……”

“뭐야? 주님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이것은 파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율법학자는 불쾌한 듯 침을 바닥에 뱉고 고개를 흔들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라엘은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더 초초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쯤 카이는 어린 나귀를 찾으려고 집안을 온통 뒤지고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카이는 두 마리의 나귀를 모두 팔아 버렸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대성통곡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라엘은 걱정이 되었고 이제는 아들의 아픔에 대한 죄책감으로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시장 쪽을 보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은화 8개를 보여준

부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은화 8개를 보여주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팔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마음속으로 팔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라엘은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해서 누군가 나귀 새끼를 푸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도 못했습니다.

새끼 나귀를 거의 풀 때쯤 라엘은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라엘과 비슷할 정도로 누추한 옷을 입었고 제대로 씻지 않은 얼굴은 더러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라엘은 순간 시장에 돌아다니는 그런 유랑인 줄 알았습니다.

라엘은 급한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뭐…. 뭡니까? 당신들은 왜 나귀를 풉니까?”

나귀를 풀고 있었던 그 두 사람도 라엘의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랬던 것 같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중에 한 명이 라엘에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쓰신다고 합니다”

라엘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긴 여행으로 인해서 피곤이 얼굴이 움푹 주름들이 굵게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새끼 나귀를 풀고 제대로 인사도 지 않고 바삐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로 갔습니다. 

 라엘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막상 주님의 제자를 보았지만, 그들은 라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나귀 새끼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라엘의 이름도 묻지 않았습니다. 라엘은 뭐라고 말도 걸지 못하고 그렇게 새끼 나귀를 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팔았네!”

라엘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은화 8개를 보여주었던 부자였습니다. 그의 손에는 새끼 나귀 목줄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것 봐, 내가 이 나귀를 얼마에 산 줄 알아? 은화 두 개에 샀어… 참나… 당신은 오늘 운이 최고로 없던 사람이라고… 참 내…” 고개를 저으면서 부자는 라엘의 앞으로 가로질러갔습니다.

라엘은 주님의 제자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에서 떠 올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지금 집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집주인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라엘은 성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전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울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3.

“아빠!”

라엘은 너무 많은 걱정과 후회로 고개를 땅에 떨구고 집으로 왔기에 바로 코앞에 자기 아들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라엘은 일할 곳과 돈을 빌리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기에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라엘이 아들의 목소리에 한번 놀랐고, 두 번 놀란 것은 아들이 어미 나귀인 실로를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란 것은 오전에 주님의 제자가 가져갔던 새끼 나귀도 옆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아들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실로와 실로미…여보 어떻게 된 거야?” 라엘은 너무나 놀라서 아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라엘을 보자마자 라엘의 팔을 잡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로를 샀던 사람이 다시 실로를 데리고 왔어요, 우리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시 돌려주는 거예요… 너무 이상하죠?”

“그… 그래요.... 그 사람이 우리가 가난하다고 다시 돌려주었다고요…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라엘은 아내에게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6시경에 그 사람이 직접 우리 집에 왔어요. 그 사람 이름은 삭개오라고 하던데… 옆집 아줌마가 그러는데 그 사람은 지독한 세관이었는데 그러나 어제부터 완전히 바뀐 사람이 되었다고 하네요

“삭개오!…. 정말 삭개오라고… 그 지독한?”

“여보, 알고 있어요? 삭개오 씨를요?”

“그럼 알고 있지…. 그 자에 대한 악평은 자자하지! 그가 왜 변했지? 그런데 이 나귀 새끼는 어떻게 왔지?”

“그것은 저도 모르겠어요. 실로를 데리고 와서 기뻐하고 있는데 자기 집에 있더라고요. 저는 당신이 잃어버려서 자시 집에 들어온 줄 알았어요. 나귀 새끼가 집에 왔다고 시장에 갔는데 당신은 없더군요, 그건 그렇고 주님의 제자들은 만났어요?”

“어…그래 만났지.. 만나서 이 나귀 새끼를 데리고 갔어… 그런데 다시 돌아왔네?”

나귀 새끼의 등에는 옷으로 만든 안장이 있었습니다. 끈으로 두 번 정도 묶은 겉옷으로 만든 안장이었습니다. 라엘은 새끼 나귀를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등에 묶인 겉옷으로 만든 안장을 풀었습니다. 

“아빠 왜 거짓말했어요. 저도 다 이해해요” 아들은 울먹거리면서 아빠를 안았습니다.

라엘은 아들에게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4.

“여보! 내려와 보세요. 여보 빨리요. 여보”

라엘은 새벽마다 다락방에서 올라가서 기도하던 데로 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아내와 이야기하다가 자서 그는 무척이나 피곤했던 터라 기도를 하면서 계속 졸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소리에 라엘은 놀랬고 불길한 예감을 가지면서 다락방에서 내려왔습니다.

“어디야.. 어디?”

“여기요.. 빨리 오세요.. 오 하나님, 이럴 수가!”

라엘이 보고 있는 것은 서있는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침대에서 내려와 서있는 아들의 모습이 라엘은 보고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우리 아들이 서있잖아…. 카이 괜찮아… 너 서있는 거니?”

아내는 울고 있었고, 아들은 그저 눈만 멀뚱 거리면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어제저녁 꿈에 천사를 만났어요, 아빠”

“뭐라고? 자세히 말해봐.. 천사라고?”

“예. 그 천사가 내려와서 저에게 주님의 옷이라고 하면서 큰 옷을 제게 덮어 주었어요.”

“큰 옷을 덮어주었다고?”

라엘은 아들의 침대 위에 있는 큰 옷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제 나귀 새끼가 안장으로 만들었던 그 옷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저 옷을 가지고 새끼 나귀와 놀다가 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니.. 그 천사가.. 무슨 말을 하던?”

“아니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옷을 덮어주고 그냥 떠났어요”

라엘은 아들의 침대 위에 있는 겉옷을 만졌다. ‘이 옷이 주님의 옷인가?’ 그는 옷을 쳐다보면서 어제 만난 주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기억하려고 했습니다.

“아빠, 저 한번 뛰어 보고 싶어요.. 아니 뛰는 모습을 보여 드릴게요”

“괜찮겠니…?”

“사실, 아침에 잠깐 뛰어 보았어요… 전혀 문제없어요.”

“그…..래, 그래…. 그럼 뛰어보렴!”

라엘은 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햇살 속에서 뛰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나의 새끼 나귀


누가복음 19장 26절~35절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 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누구의 나귀 새끼였을까? 그 나귀 새끼는 예수님이 사용하신 다음에 주인에게 돌려주었을까? 그 나귀 새끼는 예수님의 몸 무게로 인해서 허리에 큰 지장이 없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은 동물원에서 나귀 새끼를 처음 보고 나귀 새끼가 얼마나 작았는지를 알게 되고 난 후부터였다. 내가 본 나귀 새끼는 한강 고수부지에 돌아다니는 덩치 큰 개보다 더 볼품없었고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이렇게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였을까? 아마 나귀 새끼를 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큰 어른이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그 주변에는 사람들이 왕이라고 칭송하는 모습이 얼핏 보면 코미디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도 나귀 새끼를 타는 것만큼 당황스럽게 태어나셨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처녀가 임신했지만, 태어난 곳은 출산할 여관을 잡지 못해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을까?) 동방박사들이 왕의 별을 보고 경배를 하러 와서 보게 된 것은 축축한 마구간 한구석에 울고 있는 신생아였다. 그 자리는 동물들의 분뇨 냄새와 더불어 건초들이 썩어가는 쾌쾌한 환경으로서, 아마 오늘날 이런 곳에서 아기를 태어나게 방치했다면 아동학 대법과 더불어 네티즌의 뜨거운 비판의 소리로 법적인 조치는 물론이고 그 여관 주인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한다는 예언이 있다. 그 예언을 이루시려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왜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하셨을까라는 궁금함이 있다. 그 당시에 ‘말’이라는 것은 점령군과 힘의 상징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표현하실 때 자주 말했던 것처럼 그분은 섬기로 오셨기에 힘의 상징인 말을 타지 않고, 나귀처럼 철저히 낮아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등장과 더불어 인간과 함께 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자신의 부와 명예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태어난 곳이 마구간을 비롯해서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한 그 준비는 나귀 새끼와 다락방의 만찬 정도였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철저하게 낮은 자로 위장했을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께서 마구간과 나귀 새끼 그리고 다락방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역사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겉과 속을 만드셨다. 예수님께서는 겉과 속중에 더 중요한 것은 속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그분은 영이시기에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돈과 화려함에 대해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 주셨다. 솔로몬의 옷보다 들에 핀 백합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과부의 두 렙돈(1000원에 못 미치는 액수)을 보시면서 주님의 평가는 하나님에게 가장 많이 드린 사람이라고 했다. 그분의 기준은 우리와 다르다.


 만약에 출산에 임박한 마리아를 예비하신 것이 마구간이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역사를 위한 자신의 등장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반대했던 여관 주인들에게 단체로 불 심판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묵묵히 마구간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것을 잠시 취하시는 과정을 성경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마도 나귀 새끼의 주인은 나귀 새끼 한 마리가 전부였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나귀 새끼는 아마도 주인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결코 여러 나귀와 말 그리고 양들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의 나귀 새끼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분명 마음의 중심과 믿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그 나귀 새끼는 주인의 전부였을 것이다.


  나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상상하면서 갑작스러운 걱정으로 인해서 마음이 초조해졌다. “혹시 최근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귀 새끼를 빌리신 적이 있는가?” “혹시 나는 최근에 나의 한 마리 나귀 새끼를 하나님 사역에 올려 드린 적이 있는가?” “혹시 나는 주님께서 주가 쓰시겠다고 말씀하시면 나의 것을 취한 적이 있었는가?” 만약에 없었다면 어쩌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아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에 대해서 사용하시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가 완악해져 있을 것이라는 염려가 생겼다. 


  “주께서 쓰시겠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두려움으로 받아 드릴 말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주님은 법원의 집행관처럼 우리 물건을 가압류하지 않으신다.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셔서 강제로 우리의 재산을 몰수 한 그런 사건은 들어 본 적은 없다. 물론 악하게 종교적 지도자의 가면을 쓴 인간들이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교묘히 사용하여서 성도들의 재산을 훔쳐가는 것은 종종 뉴스와 신문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사람에게 “주께서 쓰시겠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왜 드물까? 앞서 말했듯이 그분은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부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창조주이시다. 부족한 분이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쓰시겠다”라고 말하면서 나의 자동차, 노트북, 집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인생에 대해서는 주께서 사용하시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빛과 소금으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쓰시겠다고 나를 구원시켜 주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사용을 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회개만 나올 뿐이다. 


  바울 선생은 내 안에 사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가 나의 몸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하신다고 했다. 그는 주께서 자신을 사용하시겠다고 해서 모두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모든 것으로 자신의 선교사역에 모두 사용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전부이다. 


나는 지금 ‘사용 중 Occupied’일까 아니며 ‘비어있음 Empty’일까? 


주님이 쓰시겠다!

하나님은 나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편하게 사용하시고 계실까?

주님이 쓰시겠다!

하나님은 어린 나귀와 같이 볼품없지만 나의 전부를 기꺼이 사용하고 싶어 하실까?

주님이 쓰시겠다!

이 한마디에 나는 즉시 아무런 질문 없이 내어드릴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 3가지의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매일 다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결정을 미리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에게 기꺼이 나의 것을 사용해달라고, 아니 나에게 맡긴 것을 모두 사용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주님이 말씀하시길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꺼이 드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것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2006년 / 예수님의 위한 조연들]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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