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만난 RAW정치인,
노회찬 /2008년

RAW한 사회를 꿈꾸며, 그것이 낙원이라고 믿는 낭만주의자

by 권민

“다른 모든 학문이 발전하는 동안 정치만 정체되어 4천 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 -J. 애덤스


정치의 원형은 권력을 중심에 둔 욕망 간의 갈등이며, 정치의 속성은 비밀과 거짓말, 배신과 폭로로 점철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과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특권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가를 꿈꾸게 만든다. 교언영색巧言令色하고 구밀복검口蜜腹劍하며 표리부동表裏不同해야 할 것 같은 정치판에서 ‘진솔함’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는 정치가가 있다.


거침없는 진보의 아이콘인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다. 노회찬 대표에게 기대한 것은 정치판의 날 것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해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대답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RAW라는 로맨티시스트 노회찬 대표에게 정치와 사회, 그리고 RAW라는 낯선 주제에 대해서 들어본다.




정치는 인간의 날 것을 볼 수 있는 RAW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RAW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의 기본 속성 자체가 좋은 의미의 권력 경쟁입니다. 정치를 할 때에 정치의 주체가 개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정당이라는 조직입니다. 정당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상호 경쟁을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목적의 수준이 높지요. 10억, 100억이라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다스리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도박을 한다면 훨씬 판돈이 큰 것이죠. 그래서 경쟁이 더욱 치열합니다. 과거에는 권력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서 획득했다면, 문명이 발전하면서 선거와 같은 과정이 도입된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바뀌었다 뿐이지 그 속성 자체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느 영역보다 치열하고, 권력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부정적으로 표출되거나 잘못 축적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치만은 하면 안 된다는 기피 현상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치인데, 오히려 진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진보라고 하면 별난 인간들이 별나게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해 보이고 생소할지 몰라도, 본래의 정치가 이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야채를 고를 때에 유기농 야채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같이 듭니다. 농약이 없으니 괜찮을 것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것을 그냥 먹었다가는 배탈이 나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농약이 든 야채로 눈을 돌리죠. 저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정치를 바라보는 인식을 바꿔주는 것이지요. 날 것 그대로의 것이 가공된 것보다 얼마나 영양가가 풍부한지,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를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요. 대중에게 채소는 농약을 뿌린 것도 있고, 유기농도 있고, 무농약 채소도 있는데 정치가 완전히 무농약일 수는 없어도 최소한 유기농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다소 비싸고 구하기 쉽지 않더라도 기꺼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입니다.


유기농 채소가 진보 정치라면, 정치의 본질이 진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진보당이라는 것을 생소하게 생각합니다. 선진 사회의 대부분은 진보당이 집권을 하고 있거나, 제1 야당으로서 큰 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것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밥도 그렇습니다. 하얀 쌀밥이 제일 맛있지요. 쌀밥에 잡곡이나 콩을 넣으면 조금 덜 맛있고 불편할지 몰라요. 하지만 이 밥이 영양가가 높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취향을 바꾸는 것이 저희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정치 전반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 우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계속 전파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즉 RAW한 정치가 아닐까 합니다.




RAW한 정치, 그러니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진보라면, 우리나라의 진보당은 왜 지지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지요. 편견을 없애는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진보와 대중이 생각하는 진보 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진보라고 하면 경직되고, 딱딱하고, 낡고,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진보라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굉장히 남성 중심적이고 전투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평화나 양성평등, 페미니즘과 같은 낙천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는 폭력성에 많이 가려져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이 진짜 ‘진보’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A라는 내용을 B라는 내용인 것처럼 해서 그것으로 호감을 산다는 것은 사기이지요. 그런데 A인데 A′로 보이고 있다면 A로 보여지게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방송 출연을 하게 된 이후에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신 분들이 ‘진보가 그런 것이라면 괜찮겠다. 진보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말씀을 해주시면 무척 기쁩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가요?

저는 자유와 평화만큼 문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릴 때에 음악이 좋아서 첼로를 했었어요. 돈이 많아서 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았습니다. 그 기억이 너무나 좋고, 배워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온 국민이 악기 하나씩은 연주할 수 있는 사회가 진보적인 사회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높은 문화 수준이나 문화 의식, 교양과 같은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밥만 많이 먹는 사회가 우리의 지향점이 아니라, 밥은 적당히 먹더라도 높은 수준의 인간의 품격을 지키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삶의 양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한 사회를 그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고 인류가 모두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밤낮으로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투쟁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진보는 아직 약자입니다. 언제나 약자는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강자가 되면 여유로워지겠지요. 흔히 이야기하는 전투성은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일 뿐이지 원래 전투적인 것은 아닙니다. 늘 그렇다면 그것은 불편한 사회지요. 또 하나 진보도 혁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라는 것은 기득권이 아니에요. 인간의 세포도 죽고 새로 태어나면서 탱탱한 피부가 유지되는 것처럼, 낡은 것을 끊임없이 거두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볼루션 evolution 없는 레볼루션 revolution 없고, 레볼루션 없는 이볼루션 없습니다. ‘진보’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가 될 수 있거든요. RAW 식품들 보면 모두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오늘의 RAW도 일주일 후에는 RAW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계속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RAW라고 할 수 있어요.



정치라는 RAW 한 세계에서도 RAW 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거침없는 독설이라든지, 솔직한 발언, 석판 에피소드도 떠오르는데요. 이렇게 노회찬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전략적으로 구축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본래의 성향이신가요?

결과적으로는 둘 모두에 해당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내 성향이 그렇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하는 것도 그것이 효과가 없었다면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제가 하는 일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고수한 것이지요.


요즘은 대중에게 새로운 생각이나 철학을 공유하고 설득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듭니다.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가 인정할만한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더욱 어렵지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특히 방송의 경우 시청자들은 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몇 시간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마케팅에서는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라고 합니다. 마케팅적 마인드를 가지고, 진보를 효과적으로 알리신 것이군요.

삶 속에서 터득한 것이죠. 내가 놓인 조건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나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이것을 이렇게 다룰 수도 있고 저렇게 다룰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나의 목표를 잘 이루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에 답을 찾은 것이지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이 마케터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무언가를 기획하고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지요.


타깃이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알고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저도 처음에는 타깃을 정합니다.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느 계층의 사람들,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들을 것인지에 대한 명료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깃이 정확하지 않으면 화살을 많이 쏘아도 적중률이 낮아집니다. 또한 타깃의 상황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만한 상황인지 여부도 중요하지요. 이런 분석을 몸에 배도록 많이 하게 됩니다.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으로도 손에 꼽히는데, 이것 또한 전략 하에 노력하신 것인가요?

특별히 말을 잘하기 위해서 연습을 한 적은 없습니다. 말을 잘하는 기술은 지금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들으면 상대방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떠한 상태인지 파악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이야기의 포인트를 제대로 맞추는 것입니다. 특히 방송 토론의 경우에는 상대가 있습니다. 보통 견해가 다른 두 입장이 마주 보고 토론을 하도록 합니다. 이때에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토론을 잘해도 상대방은 ‘아, 그렇군요. 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억지를 쓰는 것도 맞지 않죠. 결국 판단은 시청자가 합니다. 따라서 방송토론의 속성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귀를 기울이게 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자리에 맞는 말하기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있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RAW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RAW 하면 스테이크가 생각납니다. Well-done, Medium, Rare 할 때의 Rare가 RAW라고 봅니다. 완전히 날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육즙이 흐르고, 상당히 원재료의 특성이 많이 담겨 있어서 순수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먹던 C레이션도 생각나네요. C레이션은 군인들이 먹는 야전식량인데, 깡통 안에 빵, 후르츠 칵테일, 담배 등 모든 것이 들어 있어요. 레이션은 A, B, C로 나뉘어 있어요. B레이션은 데워 먹어야 해요. 열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A레이션은 가열뿐만 아니라 조리를 합니다. 깡통 안의 것을 모두 자르고 다듬고 간을 맞춘 후에 가열을 합니다. 그래서 C레이션은 사병용이고, B레이션은 장교용이고, A레이션은 장성급이지요. 조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요. 천편일률적인 C레이션의 맛에 비하여 A레이션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짤 수도, 매울 수도 있습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RAW 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상당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이 주는 신선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다르게 보면 RAW 한 것이 고급스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 중에서도 RAW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고 RAW 한 정치를 하고 계십니다. 정치를 상품이라고 본다면, 진보신당은 RAW를 팔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진보신당이 아직 커다란 지지를 얻거나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저 사람들은 덜 썩었을 거야, 저 사람들은 뒤가 구리지 않을 거야, 저 사람들의 생각이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에 있어서는 좋은 의미의 RAW 한 평가를 이미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혹시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인상이 깊었던 자동차 광고가 있었습니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라는 카피의 광고였지요.


광고가 의도한 것은 이 차가 험한 길도 잘 간다라는 메시지였을 텐데, 바로 이것이 우리의 노선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개인적인 취향도 그렇고요. 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갑니다. 그래서 잘 닦여진 길보다 오히려 닦여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내가 낸 발자국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에 상당히 공감을 했습니다. 이런 것이 RAW 한 정신이라고 보고 이것이 저와 진보신당의 기저에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 저를 아끼는 사람들 중에는 잘 나가는 정당에서 번듯하게 정치하지 왜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정치를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번듯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의 직업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직업이라면 진보신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있어도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말씀하신 그 꿈은 어떤 꿈이신가요?

저의 꿈은 금배지 달고 국회의원 두 번 세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정치가가 되었을 때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얻고 싶어요. 영향력과 발언권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사람이 땀 흘려서 열심히 일하면 보람을 느끼고, 대학이라도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공부를 하고 싶다면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는 사회가 되는데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지요. 돈이 없어서 양주를 못 먹고, 비싼 양복 못 입었다고 하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개인이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이것을 혼자서 해결하려면 열심히 돈을 벌면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해결 안 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치가 사회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본다면, 교육·의료·주택과 같은 것은 정치가 해결해야 합니다.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집을 마련하기 위한 저축 걱정을 안 하고도 평생 꽤 괜찮은 공공임대 주택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월급의 반을 저축해도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개인의 힘에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이러한 문제는 정책노선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집니다. 핀란드는 미국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지만 하고 싶다면 석사 박사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같은 것을 사회가 담당했을 때에 사회 전체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좋지 않으냐 하는 것입니다.




RAW 한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라고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고양이가 볼 때 RAW 한 것과 인간이 볼 때 RAW 한 것은 달라요. 이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인간의 왕국입니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호랑이가 사냥을 해서 고기를 먹고 있는데 옆에 다리가 다쳐서 사냥을 못하고 있는 표범이 굶고 있어도 먹다 남은 것을 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연말에 ‘호랑이야 너는 사슴 두 마리 내놓고, 다람쥐야 너는 도토리 5개 내놔, 모아서 나눠 쓰자’ 이런 식의 시스템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예요.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죽거나 살죠. 인간 사회에도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습니다. 저는 인간 사회가 기계적으로 모두 평등할 수는 없다고 봐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도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런데 인간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른 점은 여기는 호랑이도 살고 늑대도 토끼도 다람쥐도 사는데,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이죠.


RAW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야수들만 있는 약육강식의 사회로 생각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RAW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RAW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지 마취도 하지 않고 수술을 하는 것이 RAW는 아니잖아요. 그것은 야만이죠. 우리가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다워지는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진보를 ‘colorful rainbow’라고 말합니다. 너무 경직되거나 낡은 관습에 얽매여서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개방하되 정신이 살아 있는 것, 사람의 정신을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요. 빨주노초파남보는 서로 공존하잖아요. 서로 침범하지 않아요. 서로 대등하지만 이 7가지가 모두 빨갈 때보다는 섞여 있는 무지개가 더 아름답지요. 다원주의 진보라고 해서 특정한 하나를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봐요. 진보도 사람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를 수 있어요. 서민도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해도 그 각론은 모두 다를 수 있어요. 그것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룰에 의해서 합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창발성을 인정해 주어야 하지요. 하다가 잘 되는 것은 더 하고, 잘 안 되는 것은 실사구시로 끝내는 것이 합리적이에요. 과거에 코미디 같은 역사를 많이 보아 왔잖아요. 그래서 단지 처음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것들을 한꺼번에는 아니더라도 하나씩 없애버리는 것, 그래서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이 RAW 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정치 안 하셨으면 무엇을 하셨을 것 같으신가요?

글쎄요. 할 줄 아는 것이 없네요. 예전에는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전공하고 싶기도 했어요. 어려운 문제네요. 음… 그래도 정치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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