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와 eXperience

정의할 수 없는...

by 권민

‘결혼’의 사전적 정의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다’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따로 없다. (일반화를 하면 안 되지만)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정의해달라고 하면 오래된 부부일수록 난처한 얼굴로 ‘하루 안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라고 말한다. 결혼은 ‘개념’이지만 결혼생활은 ‘경험’이다. 이처럼 경험이란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는 단어다.


‘브랜드’도 '결혼'처럼 정의되지 않는다. ‘브랜드’에 관해 억지스러운 사전적 정의는 있지만 ‘브랜드 경영’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없다. ‘(결혼) 생활’과 ‘(브랜드) 경영’은 모두 경험의 산물이기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예상하기로 이번 글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하는 이처럼 정의할 수 없는 ‘브랜드’와 ‘경험’을 함께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경험’이라는 말은 이미 많은 브랜드가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브랜드 경험은 브랜드 전략의 유사 경험(단어)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그냥' 암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출처를 찾으면 원형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이런 애물단지 같은 것"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애물단지는 갖고 있기는 불편하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말할 때 사용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혼용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계륵(鷄肋 닭의 갈비 /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부위)이다.


하지만 애물단지의 뜻을 정확히 알면 이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고, 애물단지를 사람에게 '절대로' 쓰지 못한다. 애물단지는 '(어린) 아이를 묻은 단지(작은 항아리)'라는 뜻이다. 엄마가 죽은 아이를 단지에 넣어 땅에 묻어야 하는데 그것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가끔 뉴스에서 고래나 원숭이가 죽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좀 끔찍한 사례를 들었지만, 브랜드와 마크 mark, 브랜딩과 마케팅, 경험과 서비스라는 단어도 애물단지와 계륵처럼 혼용되어 쓰지만, 완전히 다른 '원형'이다.


이 글의 주제인 브랜드 경험(BX: Brand eXperience)이라는 단어의 기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 디지털 산업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하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정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어떤 이들은 BX(브랜드 경험)라는 개념을 UX (사용자 경험)의 확장 혹은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BX와 UX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UI(User Interface)란 사람과 시스템의 접점에서 사용자가 기계와 의사소통(기술)을 하는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UX와 UI라는 단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UX란 사용자가 제품, 기술, 서비스 그리고 기업의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가지게 되는 전체적인 경험이다. 앞서 말했던 UI의 기준이 사용성, 접근성, 편의성에 관한 설명이라면, UX란 UI의 이런 기능을 통해서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과 관계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UX는 상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 경험(광고를 보고, 소문을 듣고, 매장에 가서 만져 보고, 사서 포장지를 열어 보고, 설명서를 읽어 보고, 웹에 들어가서 내용도 확인하고, 고장 나면 서비스 신청도 하고, 중고 장터에 팔고 등등)이라고 할 수 있다.


UX는 생산자가 가상의 사용자를 상상하면서 만든 예측 경험(이렇게 사용할 것이다)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생산자가 만드는 과정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을 사용자가 하고 있다면 생산자는 상품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는 것, 혹은 실수한 것으로 인해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소수의 사용자가 누리는 특별한 경험을 단지 취향이 독특한 일부 계층에서 일어나는 한시적인 특이점이라 판단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의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니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경험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산자만 모르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브랜드가 곧잘 출현하기 때문이다. 자일리톨껌이 국민 껌이 되기 전에 수많은 껌들이 있었다. 후라보노, 인삼 맛, 계피맛, 사과맛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약국에서 팔았던 자일리톨이 한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입 냄새 제거로 포지셔닝을 한 후라보노를 밀어내어 버렸다.


충치 예방으로 껌을 씹는 것이 트렌드처럼 전체 사용자에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가 전체 시장을 부정하며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상황이 되면 이는 차별화를 위한 일종의 코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자가 설계한 경험보다 더 큰 경험을 사용자가 요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산자가 예상하지 못한 사용자들의 경험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면, 이 경험 코드를 미리 읽어낸 경쟁자에 의한 시장 퇴출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최근 수많은 디지털 관련 신상품들이 생산자의 취향이나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참고로 롯데는 2000년 5월에 자일리톨 껌을 출시해서 2020년까지 누적 판매액은 2조 2000억 원어치를 팔았다.


껌 시장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스마트폰 시장이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블루오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던 닌텐도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사진기 시장을 비롯한 은행, 쇼핑 그리고 학원까지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이 부분은 계속 이야기할 것 같으니 여기까지)

강력한 경험을 맛보게 하는 브랜드는 나름의 독특한 경험 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중 첫 번째 코드는 생산자가 의도한 경험을 모든 사용자가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레드불 에너지 음료의 경우, 경험의 강도 차이는 있어도 이를 마신 대부분의 사람이 용기와 열정, 최고가 되려는 도전 정신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같은 원료의 다른 에너지 음료는 피로 해소를 위해서 마시는 설탕물 이상의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한다.


전자는 의도했던 브랜드 경험이 제대로 작동한 경우다. 하지만 후자는 단순히 혀가 음료의 미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 코드는 동일한 브랜드 경험 안에서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경우다.

애플과 할리 데이비드슨 같은 브랜드의 경우 얼핏 보면 많은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들어보면 마치 ‘결혼생활’처럼 그 범위가 매우 넓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브랜드 경험은 ‘설명’이 아니라 가히 ‘간증’ 수준이다.


이처럼 브랜드가 강력할수록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개인적인 친밀함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라며 헐뜯어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드 경험을 일종의 문화라고 하기엔 친밀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너무 강하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의 패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믿음의 관계에 가깝다.


너무 빨리 결론을 말하는 것 같지만...


브랜드는 비본질이 본질보다 강력한(을 뛰어넘을 때) 것을 의미한다.
나이키는 신발인가? 아니면 승리? 문화? 젊음? 인가. 파타고니아 의류는 등산복인가? 아니면 자연보호 캠페인 유니폼인가? (이 두 개의 브랜드에 대해서 비본질의 힘을 느끼지 못하면 좀 더 참고 읽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BX를 ‘생산자가 설계한 브랜드 경험’ 정도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BX의 진짜 의미는 사용자와 브랜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경험이다.


여기서 말하는 브랜드는 생산자에 의해 만들어진(공장에서 제조된 상품과 상표) 브랜드가 아니다. 생산자의 손을 떠나 사용자가 다른 사용자와 함께 누리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브랜드를 일컫는다. 실제로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만드는 힘은 생산자에 의해서 설계된 경험이 아닌, 브랜드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사용자와 사용자 간에 일어나는 특별한 감정(이것이 브랜드의 비본질이다.)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브랜드 경험에 관한 정의는 UX보다 더 혼란스럽다. 그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 ‘브랜드’가 먼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혹자는 브랜드를 상품이나 심벌, 로고, 스토리가 아닌 총체적인 경험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총체적인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통합된 그 무엇’이라고 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무엇’을 생산자가 이해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컨버스 브랜드에서 마니아를 직원으로 채용한 적이 있었다. 컨버스 브랜드 경영자는 마니아로 구성된 신입 직원들이 기존 직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길 기대하며 채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모두 퇴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브랜드를 만들어온 경영자와 기존 직원들의 태도에 분노했다. 컨버스 브랜드를 사랑해온 그동안의 감정이 기존 직원들에 의해 모욕을 당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컨버스 브랜드의 안티 카페를 만들어 브랜드 경영에 심각한 위기를 주기도 했다.


이는 한쪽의 잘못만은 아니다. 단지 브랜드 생산자가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 경험을 제대로 ‘경험’ 하지 못했을 뿐이다. 생산자의 브랜드 경험에 관한 이해가 이렇게 부족한 이유는 ‘브랜드 경험’의 기본 지식을 처음부터 잘못 쌓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이다. 이제 브랜드 경험의 시작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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