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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ug 15. 2020

마르다와 마리아(2)

100배의 축복을 받은 마리아

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사 노동 갈등(?) 사건은 잔칫집에 일어난 자매들의 돌발적인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이 사건은 말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기승전결 스토리 중에 일어난 중심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예배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마르다와 마리아의 갈등 사건은 하나님이 말씀에 대해서 준비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8:11-15, 새번역]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12 길가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그 뒤에 악마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므로,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13 돌짝밭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으므로 잠시 동안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재물과 인생의 향락에 사로잡혀서, 열매를 맺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것들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서, 그것을 굳게 간직하여 견디는 가운데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마리아는 어떤 땅이었을까?

[눅10:42,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후에 마리아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였다.

마리아를 따라가지 않고 예수님 옆에서 계속 말씀을 들었을까? 아니면 마지못해 자리에 일어나서 마리아를 도왔을까? 아쉽게도 마리아의 행동 변화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다른 언급이 없었다.

(내 상상은) 마리아는 일하러 가는 마르다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계속 말을 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잔치가 끝난 뒤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는 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그 이후에 나사로와 두 자매는 다시 예수님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었다.

이 잔치에서도 마르다는 여전히 일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3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향유 옥합을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다.


잠시만 다른 사건을 살펴보자


마르다와 마리아가 초대한 잔칫집 사건이 있기 전에 더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눅8:20-21, 새번역]

20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께 전하였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의 정체를 알려 주셨다.

누가 말씀을 듣고 누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 갈등 사건 이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하나 더 있었다. 


[눅11:27-28, 새번역]

2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28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신앙 훈련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본능이다.



마르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마리아가 들었던 말씀은 30,60,100배가 되어서 300 데나리온의 향유 옥합을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깨트림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의 복을 뻥튀기처럼 30,60,100배의 이익을 받는다고 믿는 것 같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말씀의 축복이 세상 사람들도 바라고 돈으로도 할 수 있는 그런 100배의 세속적 축복일까?

말씀의 축복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나사로의 죽음으로 마리아의 마음을 괴로웠지만, 나사로의 부활로 인해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예수님에게 100배의 선물을 받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생명을 다하여 100배 사랑하여 향유 옥합을 깨트렸다.


30,60, 100배의 축복

[막4:8, 새번역]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100배의 열매.

우리는 그 열매가 우리의 삶에서 100배, 풍요의 극치로 열리기를 원하고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런 축복이 아니라면 ...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일까? 예수님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축복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식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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