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창업] 웍샵/기초(12)

브랜드 창업 입문자를 위한 선행 학습

by 권민
1%의 소수가 누리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기회를
소외된 99%의 기업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프로그램 설명]
아래 글은 소설이 아니라 브랜드 창업 수강생의 웍샵용으로 구성된 유니타스브랜드 자기다움 교재입니다.
자기다움에서 브랜드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브랜드 론칭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마케팅 웍샵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브랜드 론칭하는 [비스그램] 프로그램에서는 브랜드 및 휴먼브랜드를 론칭을 할 때 [자기다움]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브랜드 소설 기법을 활용합니다.

브랜드 론칭 수강생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기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브랜드 가치와 연결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자기다움의 창업, 비스그램을 이해하기 위해서
장석주 시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브랜드로 오마쥬




[유니타스브랜드 볼륨 22호에서 '대추 한 알'을 지으신 장석주 시인님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장석주 시인, 문학 평론가이자 대단한 독서광이다. 우리에게는 2009년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전면에 실린 '대추 한 알'의 시인으로 익숙하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뒤 동덕여자대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대학 강단에 섰으며, 《조선일보》 《출판저널》 등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 활동했다. 현재도 월간 《신동아》를 비롯한 다수의 신문과 잡지에 인문학 지식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문학이다》 《몽해항로》

《 이상과 모던뽀이들》 등 60여 권이 있다.










권민 : 최근에 경영에서 인문학을 배우거나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매우 큽니다. 아직까지는 이것을 경영 트렌드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도요타가 성공가도를 달릴 때 모두 도요타에게 관심을 집중시켰듯이, 지금은 모두가 애플을 벤치마킹하려고 하죠. 시인의 마음까지 뺏을 정도니까요.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힘을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문학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선생님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장석주 : 《위대한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왜 이런 기업들은 위대한가’라는 주제로 30개 정도의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에 실린 기업 중 현재 3분의 2 이상이 없어졌거나, 급격하게 경쟁에서 뒤처져 있다는 거죠. 이 책에는 분명히 “그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고 적혀 있는데 말입니다. 편집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도요타는 불멸의 제국, 불멸의 기업으로 추앙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생각하다가 CEO들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제품만 잘 만들면 되었죠. 거기에 광고와 홍보를 잘해서 잘 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이러한 과거의 작동 방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음을 알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작동 방식이 필요한 걸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들어가 그들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경영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경영학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뺏는 것을 고민하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기업이 인문학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분위기가 마련된 것이라 봅니다.


인문학을 통해 통찰력과 지혜,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긴 거죠. 사실 현대 경영학의 역사를 100년 정도로 본다면, 그간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바로 ‘혁신’입니다. 그렇다 보니 개인의 욕구와 니즈가 점점 커지고, 그것이 중요해지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그 변화를 감지한 지 못한 채 오로지 혁신만을 외치며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거예요. 오늘날은 개인의 니즈가 너무나도 급변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과 취향까지 속도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계속 간과하며 혁신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예 사라지고 만 겁니다.


사회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감지하는 사람은 누군 줄 아세요? 바로 뛰어난 감성을 가진 시인, 혹은 예술가적 감성을 가진 인문학자, 이런 사람들이고 이들이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봅니다. 그래서 기업은 이들에게서 시대의 혜안을 얻고자 인문학을 배우려는 것이죠. 이제 기업도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경영학에서 말하는 것으로만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예술가적 감성, 직관력 혹은 영성, 어떤 시적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 이런 것이라고 기업들도 안다는 겁니다.


권민 :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인문학에서 기업이 그토록 얻고자 하는 인문학의 원천적인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석주 : 생각해 보면, ‘*인문학은 죽었다’면서 교수들이 성명서를 낸 것이 불과 5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기업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인문학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이 ‘가치 변환의 시대’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어요. 가치 변환의 시대란 여러 가치들이 한데 엉켜 혼란스러운 시대를 말하는 겁니다.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기업의 CEO들은 인문학을 통해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질서와 혼돈의 시대에 사람들의 욕망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사람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감동시키고 울릴 것인가,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은 기술이나 이성이 아닌 인문학이기에 CEO들에게 현재 인문학은 소위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인문학이 주는 원천적인 힘이란 바로 어떤 것의 가치를 그 가치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게요.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장주가 이런 말을 했어요.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그는 “모든 쓸모 있는 것은 쓸모없음이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면서, 결국 “쓸모 있음이란 쓸모없음이어야만 비로소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언뜻 보면, 시쳇말로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예를 들어 반지를 보십시오. 반지는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반지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빈 구멍, 아무 쓸모도 없는 그 빈 구멍이 있어야만 반지는 반지 구실을 할 수 있는 거죠. 항아리는 물질로 된 부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물질이 없는 비어 있는 공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비어 있어야만 항아리로써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쓸모 있음은 쓸모없음이어야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쓸모 있음만을 찾습니다. 쓸모없음의 가치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인문학이란 사람들이 쓸모없음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의 의미를 밝혀, 가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겁니다.



권민 : 브랜드, 시가 되다. 우스갯 소리입니다. 사실 기업에서는 황당한 아이디어로 보고서를 쓴 사람에게 ‘소설을 쓰고 있다’ 혹은 ‘시를 쓰고 있다’며 비웃습니다. 아마도 시나 소설이 가지고 있는 상상이나 은유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너무 이상적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이렇게 비유하는 거겠지요. 그렇다면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정의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장석주 :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가’라고 부르고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이라고 하잖아요. 하나는 집 ‘가家’ 자를 쓰고 다른 하나는 사람 ‘인人’ 자를 씁니다. 이처럼 시인하고 소설가는 종족이 다릅니다. *소설은 타락한 세상의 타락한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죠. 하지만 시는 ‘샘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화를 시키죠. 오염된 물속에 오염되지 않은 샘물을 내어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정화시켜요. 사람들은 소설가와 시인을 같은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이니까 동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을 보면 엄청 다르죠.


시는 영감으로 쓰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기가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사물과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불러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불러 준 것이 시인의 무의식에 떨어져 발아되면 그게 밖으로 툭 하고 나옵니다. 그것이 시입니다. 시를 쓰려면 특별한 방식으로 사물에 접근해야 합니다. 시인은 사물 하나하나를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끼며 사랑으로 모든 대상을 품죠. 그래서 사물들이 스스로 노래하게 만드는 게 바로 시인입니다. 무엇보다 시인이란 모든 사물과 현상과 대상들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창조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에서 자기 아내를 ‘사철 발 벗은 아내’라고 명명합니다. 아내라는 것은 무수한 존재인데 사철 아무것도 신지 않고 맨발로 돌아다닌 아내란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유일한 표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적재산권에 등록도 되는 것이지요. 이 표현은 아무도 쓸 수 없습니다. 등기가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렇듯 이름 없는 존재나 사물 혹은 현상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창조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창조주와 같은 마음을 갖습니다. 작은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금방 감응이 일어나지요. 바위 하나를 봐도, 꽃 한 송이를 봐도, 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을 보아도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거문고의 현이 ‘딩’ 하고 울듯 그렇게 울림이 온다는 거죠. 이것은 반대로 시인 스스로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최대치로 향유하는 것입니다.




권민 : 브랜드 콘셉트이나 이미지를 만들 때 저희가 주로 사용하는 워크숍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10명 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브랜드 콘셉트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를 생각해보게 한 뒤, 그 키워드를 가지고 시를 쓰게 합니다. 그러면 총 10편의 시가 모이겠지요. 그리고는 또다시 이 10편의 시에서 핵심 키워드를 뽑게 합니다. 하나의 시에서 3개의 핵심 키워드만 뽑아도 총 30개의 단어가 모입니다. 이렇게 모인 단어에서 다시 10개의 단어를 선정합니다.


이번에는 이 10개의 단어를 가지고 시를 써 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10편의 시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하나의 시를 선정하여 이 시를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해봅니다. 어찌 보면 제련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 사람의 머릿속에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는 브랜드 콘셉트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바로 시인의 시각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장석주 :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군요. 저도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면, 종종 시를 써 보게 합니다. 그것도 세 시간 동안이나요. 왜냐면 닫힌 감성을 열게 하기 위함이죠. 감성이 닫혀 있으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잖아요?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열려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세 시간이 지나 시가 완성되면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겁니다. 감성이 열리니 눈물이 자연스레 흐르는 거죠.



권민 : 그렇군요. 시가 주는 힘이 대단함을 새삼 느낍니다. 저희가 시를 쓰게 한 이유는 시만큼 압축의 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유니타스 브랜드 콘셉트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션, 가치, 태도… 이 모든 것의 ‘압축’적인 표현이거든요. 그래서 시만큼 이것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브랜드와 시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장석주 : 시도 한마디로 ‘압축’이죠! 시라는 것은 사물과 세계, 더 크게는 우주를 시인이 생각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해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는 일반적인 진술이나 서술과는 달리 압축된 상징이나 은유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군더더기는 모두 버리고, 대신 본질 혹은 정수만을 담아내죠.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도 곧 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브랜드란 기업의 이념, 기업이 하는 일, 지향하는 목표, 꿈 등을 하나의 이미지나 기호로 압축해서 표현해 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시와 브랜드는 닮은 구석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압축 외에도 닮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압축된 시는 결국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어 마음을 흔들고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는 죽은 시죠. 브랜드는 어떻습니까? 소비자가 브랜드를 접하는 순간 즐거움, 행복, 열매, 성취, 기쁨 이런 느낌들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가질 수 있고, 더 나아가 기업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겠죠. 이런 브랜드가 결국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브랜드와 시는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민 : 이제 오늘, 저희가 만나자고 한 것이 이해가 되시나요? 사실 《생각의 탄생》에서 소설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가 “시인은 한 점에서 전체를 이해하고, 과학자는 전체에서 한 점을 이해한다”라고 한 말을 읽으며 시인의 시각을 무척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한 점에서 전체를 이해하는 시각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대단한 통찰력의 소유자라는 말이잖아요. 브랜더에게도 통찰력은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장석주 :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도 나보코프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한 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나보코프나 블레이크의 말처럼 시인은 모래 한 알에서 우주 전체를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시인은 일상 속에서 늘 보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한 어떤 것에서도 그것의 숨겨진 본질을 찾아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언어로 만들죠. 언어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무의미한 익명성 속에 있는 어떤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의미를 의미로 만들어 주는 거죠. 좀 전에 말한 시인이 어떤 것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름을 지어 준다를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죠. 자, 바닷가에 가면 수억 개의 모래알이 있어요. 고만고만한 수억 개의 모래알 중 하나를 딱 집어내어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시가 씌어지죠.


이 순간이 바로 그 모래알이 익명성에서 기명성으로 발견되는 순간입니다. 다시 말해 이름이 탄생되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시인이 이름을 짓는 순간, 수억 개의 모래알 중 이 모래알은 아주 특별한 것이 됩니다.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것이 되는 거죠. 김춘수 시인의 ‘꽃’이 바로 이 의미예요. 시의 첫 구절에서 얘기하듯 그 꽃은 그냥 흔하디 흔한 꽃이었어요.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꽃을 ‘호명呼名’ 하는 순간 어떻게 되나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 됩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하찮은 것이라도 그 본질이 발견되는 순간 그것은 특별함을 부여받습니다. 시인은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어마어마하게 크고 엄청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브랜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UB상품에 ‘브랜드’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숨결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거든요. 그전까지 상품은 그저 사용품에 불가했어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소모품 말입니다. 하지만 브랜드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의미가 생기죠. 그래서 브랜더들도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권민 : 시와 브랜드, 시인과 브랜더는 정말 찾아보면 볼수록 공통점이 많군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으로서 브랜드를 보실 때, ‘이것 참 시적인 브랜드구나’ 하고 생각되는 브랜드가 있을 법도 한데요. 선생님은 시처럼 운율도 잘 짜여 있고 압축적인 메타포도 가져서 마치 시인이 만든 듯한 브랜드를 보신 적이 있나요?


장석주 : 저는 애플을 좋아합니다. 우선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특히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의 심벌, 그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사과라는 것이 사실, 인류학적으로 특별한 상징을 가지는 과일이잖아요.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따먹은 선악과도 사과로 비유되고,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또한 떨어지는 사과 속에서 탄생되었죠.


이뿐인가요. 사과는 인류학적으로 굉장히 다양한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어요. 그런 면에서 사과 한 알이 갖고 있는 함축적인 다양한 의미들은 많은 시적 영감을 줍니다. 제가 아직 이에 대해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애플의 베어 먹은 사과는 저에게 굉장한 시적 영감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 시를 쓸지도 모르겠군요.



권민 : 선생님이 쓰신 애플에 관한 시, 언젠가 꼭 보게 될 날을 고대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좋아하는 브랜드 중의 하나가 애플이긴 하지만, 컨버스라는 브랜드도 좋아합니다. 얼마 전 구글에서 컨버스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던 중 아주 재미있는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바로 신랑 신부는 물론이거니와 하객들도 모두 컨버스를 신고 결혼식을 하는 사진이었습니다. 일명 ‘컨버스 웨딩’ 을 한 이유를 알아보니 컨버스에서 광고를 할 때 이런 문구를 내보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Marriage means commitment, but not without my Converse.” 이 글의 출처를 찾아보니 어떤 시에서 “Marriage means commitment with UBconverse”라는 문구를 각색한 것이더라고요. ‘컨버스converse’는 ‘영적인 교제’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요. 결혼과 브랜드 이름을 묘하게 오버랩하여 컨버스를 단순히 신발 브랜드가 아니라 ‘낭만적인 약속’으로 만든 거지요.


장석주 : 너무 재미있네요. 사실 사물이건 브랜드건 UB스토리가 써지는 순간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단순히 그 장소의 풍경만이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풍경에 덧붙여진 이야기, 그러니까 민담이나 설화를 들으면 사람들은 그 풍경을 색다르게 받아들이게 돼요. 스토리는 이처럼 신비감이나 혹은 아우라까지 만들어 내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브랜드들이 신화나 전설과 같이 몇천 년 전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자신의 스토리로 만드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스토리는 다름 아닌 콘텐츠입니다.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들은 예술가나 창조자들이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 기업가 유형 중에서 예술을 이해해 예술 경영 혹은 예술을 경영에 접목시키는 사람들이 기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기업가는 시를 아는 혹은 시집을 읽는 기업가 중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시는 우주의 비밀을 압축한 파일이다”라고 종종 얘기해요. 사람의 경험을 농축해 그 에센스만 가져와 만든 것이 바로 시니까요. 시는 우주를 한 이미지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모래 한 알에서 우주도 볼 수 있는 거죠. 시에는 사실 경영학도 들어 있고, 공학, 철학, 역사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만 알면 다 안다는 거예요. 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시를 제대로 아는 경영자는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권민 : 당장이라도 몇 권의 시집을 사서 읽어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주시는군요. 최고의 경영자가 시를 아는 경영자라면,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브랜드가 관심을 갖는 단어 중 하나가 ‘영혼’ ‘영성’입니다. 필립 코틀러라는 마케팅 전문가가 최근에 쓴 《마켓 3.0》이라는 책에서 “기업은 영성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는데요, 영혼이 느껴지는 브랜드는 현재 기업이 추구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생각하는 좋은 브랜드란 어떤 브랜드여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장석주 : 브랜드에서 영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영혼은 그것이 사물이거나 죽은 게 아닌 생명력이 있는, 그러니까 펄떡펄떡 뛰는 살아 있음을 뜻합니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물질이 아니잖아요. 물질에 생명 혹은 기氣, 또는 정신이라는 것이 모두 합쳐져 살아 있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생명력’을 가진 브랜드와 사람은 교감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교감이죠. 그래서 브랜드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찬사지요.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니까요.


그렇다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21세기에 사람들은 어떤 것과 교감하길 원하는가입니다. 미래는 생태 지향적이며 이타주의적인 것이 가장 화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것 말입니다. 좋은 예가 공정무역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브랜드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과 끊임없이 교감하기 위해서는 이제 이러한 생태 지향적, 이타성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브랜드는 영혼을 연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혼을 느끼게 하는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브랜드를 보며 감동을 받고, 영혼의 교감을 주고받으며 뭔가 행복해지는 느낌을 주는 그런 브랜드가 탄생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네요. 우리나라 기업의 이미지는 시쳇말로 빨대를 꽂고, 모든 이윤을 빨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짧은 성공을 거둘 수는 있겠지만 절대 길게는 갈 수 없습니다. 기업들은 언제나 돈 벌기만 원하죠.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은 다른 말로,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부와 욕망을 키우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것은 ‘이기利己’입니다. 물론 20세기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통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기업의 비윤리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고객은 금방 고개를 돌려 버리지 않나요?


프랑스 사회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21세기는 *이타주의자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는 20세기는 이기주의자들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자기를 기꺼이 내어 주고 또 버리기까지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이타주의의 시대라고 했어요. 물적인 20세기의 패러다임이 영적인 21세기의 패러다임으로 바뀐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타주의적 마음을 가진 사람, 혹은 기업이 성공하는 리더가 될 것이며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업가가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군요. 이러한 영혼을 지닌 브랜드는 계속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100년, 200년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영혼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권민 : 혹시, 이러한 영혼을 가지기 위한 방법을 시인에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브랜더가 시인이

된다면, 그러니까 시인의 영혼을 갖게 된다면 100년을 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석주 : 체 게바라는 우리 시대 희생의 아이콘입니다. 그는 어느 날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빈곤과 기아, 질병에 허덕이는 것을 목격하게 되죠. 그것을 계기로 평화롭고 안정된 미래가 약속된 삶을 포기하고 대신 거칠고 위험한 미래를 선택합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버림으로써 민중들을 구할 뿐 아니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나라까지 가서 싸웁니다. 이것이 바로 그를 희생의 상징으로 만든 거죠.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재미난 것이 체 게바라의 배낭 속에는 항상 시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격렬한 전투 중에도 그는 시간만 있으면 시집을 꺼내 들어 읽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는 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진심으로 브랜더들이 시인의 영혼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바위와도 꽃과도, 이슬 한 방울과도 또 하늘의 별과도 대화를 하는 시인의 마음을 가진다면, 브랜드에 어떤 영혼을 불어넣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사물에게 말을 걸어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그러면 이때까지 전혀 보지 못하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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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연


‘윤시온…’

최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흐를 듯 눈물이 고였다. 리처드 교수는 직감적으로 최세린이 한승희와 윤시온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이유를 묻지 않고 세린이 말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세린은 리처드 교수와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사진과 노트를 다시 돌려주었다.




“한승희 교수님을 아시나요?” 일어나려는 세린에게 리처드 교수가 물었다.

사실 최세린이 더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한승희 교수님은 모르지만, 그분의 아들 윤시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실습할 때 같이 일했습니다.”

세린은 책상 위에 있는 사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정말 윤시온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과 함께 발레 공연을 보고, 판매 실습을 했던 그가 맞았다.


“그렇군요.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이번에는 리처드 교수가 놀란 얼굴로 세린을 보았다.

리처드 교수는 뭔가 기억해낸 표정으로 세린에게 말했다.

“그… 동양에서는 사람과의 어쩔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어떤 원인의 줄이라고 했어요.

그게 뭐죠?” 리처드 교수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움직이면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썼다.


“인연(因緣)이요?”

“맞아요! 인연!!! 그래요. 인연이라고 했어요. 그때 ‘연’의 의미를 끈이라고 했는데… 맞죠?”

리처드 교수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끈… 맞아요!” 세린이 대답했다. 세린은 처음에 윤시온의 사진을 보고 놀랐지만, 리처드 교수의 행동으로

그가 더 궁금해졌다.

“제가 한승희 교수님과 한 팀이 되어 브랜드 론칭을 준비했을 때, 한 교수님은 제 연구를 인연 과학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단어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리처드 교수가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인연 과학이요?” 세린이 물었다.

“원래 제 전공은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이에요. 그래서 저는 초끈 이론을 브랜드에 접목시켜서 뭔가 밝혀내고 싶었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한승희 교수가 인연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줬어요.”

우주의 빅뱅 이론과 더불어 만유 이론 중 하나인 초끈 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전자와 소립자 같은 구의 형태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본 만물 통합 이론이다.


리처드 가브리엘 교수는 27살에 물리학 정교수가 된 천재였다. 어느 날 그는 학교 식당에서 자신과 똑같은 신발을 신은 학생을 발견했다. 그 신발은 사실 태국의 아주 작은 시골 가게에서 구입한 손으로 만든 수제 운동화였다. 따라서 같은 신발을 신고 학교 식당에서 만날 확률은 극히 드물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더 놀라운 건 그 학생과 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확률적으로 1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변수다. 그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원래 행성과 은하수에 관심 많았던 리처드 교수는 만물의 법칙을 찾기 위해 사람의 복잡성과 우연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산 브랜드와 같은 것을 고른 사람들과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서 확률 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비슷한 브랜드를 구매한 사람들의 구매 이유와 결과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연구 과정에서 패션이 다루는 트렌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트렌드에서 양자역학, 전자기학 그리고 중력의 통합을 설명하는 초끈 이론을 만났다. 이런 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한승희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면서 패션에 대해 공부하게 된 것이다.


“사실 세린 양이 쓴 아티클의 뫼비우스 이론은 저와 한승희 교수가 예전에 많이 논의했던 주제예요.”

“그래요?” 세린은 리처드 교수가 건넨 노트를 다시 열어보았다.

“저와 한승희 교수는 트렌드라고 부르는 암흑물질, 여기서 암흑물질은 우주의 빈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을 의미해요. 우리는 문화, 이슈, 집단 충동, 갈등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어요. 특별히 브랜드가 주는 공감각적인 중력에 대해서 연구했어요.” 리처드 교수는 노트를 다시 읽고 있는 세린에게 이야기했다.


“그럼 실제로 그 이론으로 브랜드 론칭을 했나요?” 세린은 리처드 교수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어요. 물리학에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면 실제예요. 하지만 브랜드는 그렇지 않더군요. 마케팅에는 시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공식도 있지만 브랜드는 좀 신비스러운 영역 같아요. 마케팅 이론에서 인지도를 올리면 충성도가 올라가고, 구매율도 올라가서 브랜드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뉴턴의 만유인력이 설명하는 지구 주변의 이론일 뿐이에요.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죠. 한승희 교수와 저는 브랜드를 만드는 그 힘에 대해 연구했어요.”

“이 노트에 그 내용이 있나요?” 세린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리처드 교수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저는 한국어를 몰라서… 원한다면 빌려가세요. 떠난 한승희 교수의 방을 정리하다 폐지 더미에서 발견했어요. 한 교수에게 돌려주려고 연락했는데 제게 기념품으로 주겠다는 메모로 화답했어요. 그리고 패션에 관심 많은 한국인 제자에게 보여주면 재미있을 거라고 말했죠.” 리처드 교수는 세린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 세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처드 교수가 말했다.

“네, 빌려 가서 노트 카피하고 저에게 주세요. 아마 한 교수의 강의 노트였던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이 학교로 오면 돌려드리고 싶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은 바로 접니다.” 리처드 교수는 일어나서 자신의 책장에서 또 다른 스크랩 북을 가져왔다. 세린은 사전 두께만 한 커다란 스크랩북을 한 장씩 넘겨 보았다. 그 안에는 브랜드 론칭 휠과 이미지맵 그리고 수많은 키워드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한 권의 노트와 한 장의 사진이 우리를 다시 새로운 인연의 차원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로 세린 씨는 한승희 교수 아들인 윤시온과 만났고, 저는 한승희 교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우리는 둘 다 뫼비우스 개념으로 아티클을 썼어요. 이 기사는 저의 ‘브랜드 중력에 관한 초끈 이론 해석과 뫼비우스 접근법’이라는 소논문에 관한 교수 발표 평가예요. 거의 미친놈 취급을 받았어요. 브랜드가 전자력처럼 가상 중력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다는 해괴한 이론이거든요. 14세기에 이런 말을 했다면 저는 아마 화형을 당했을 거예요. 하지만 한승희 교수는 제 이론에 공감해 주고 같이 연구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세린 씨를 통해 한승희 교수와 연결되다니 놀랍네요.”


“그럼 이것은… 브랜드가 되었나요?” 세린이 물었다.

“아니요. 안타깝게도 만들지 못했어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허블 망원경이라고 할까요.” 리처드 교수는 자신의 스크랩 북을 천천히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뫼비우스 접근법
뫼비우스의 띠는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도형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우리는 행동하는 지성인, 진실한 사람 혹은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외형과 가치가 일치된 상품은 무엇이라고 할까? 생산자의 가치와 사용자의 가치가 일치한 상품은 무엇이라고 할까? 더 나아가 생산자의 꿈과 사용자의 꿈이 일치한 상품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바로 이것을 (진정한) 브랜드라 말할 수 있다. 뫼비우스 경영은 이런 일치감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과거에는 필요로 인해 제품, 곧 내용을 구매했다면 지금은 의미와 가치를 위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매한다. 따라서 기업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주고, 또한 보이는 부분을 보이지 않게 하는 뫼비우스 경영을 이해해야 한다.



“저희 학교는 4년에 한 번씩 기업을 운영하는 동문들이 브랜드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미래 브랜드에 투자하는 론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수와 학생들이 한 팀이 되어 시장에서 실제로 론칭해보는 거죠. 저도 학생으로 한승희 교수와 한 팀이 되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어요. 그런데…”

리처드 교수는 뭔가 말하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최세린을 쳐다보았다.

“세린 양은 어떻게 윤시온을 만났죠? 서로 퍼즐을 맞추어 가려면 최세린 씨의 퍼즐 조각도 보아야 해서… 시온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그는 어떤 청년이죠?” 러처드 교수는 뭔가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조심스럽게 다음 주제를 위해서 남겨둔 것 같았다.


“네, 한국에서 어떤 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판매 수습사원으로 일했어요. 윤시온 씨는 그때 저의 판매 코치였습니다. 4개월 정도 윤시온 코치의 가이드를 받았죠. 제가 쓴 ‘뫼비우스 디자인 경영’도 윤 코치에게 도움받은 겁니다. 아쉽게도 한승희 교수님은 못 뵀고요.”

“그렇군요. 오늘 사건은 미래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관점에서 결과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교수는 흡족한 얼굴로 세린을 보았다.

“무슨 말이죠?”


리처드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스크랩북을 몇 장 넘기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처드 교수가 한승희 교수와 함께했던 프로젝트 이름은 사이러스(Cyrus). 중국에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프로젝트였다. 리처드 교수를 비롯해 미국으로 유학 온 두 명의 한국인과 중국인 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한국인 중에 김우일은 한승희의 한마음 포도원 후배였고, 박보배는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다가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와서 한승희를 찾아온 친구였다. 그리고 중국인은 중국 쓰촨 성에서 아버지가 큰 봉제공장을 하고 있는 칭리라는 남학생이었다. 사이러스팀은 최종 결승 프레젠테이션에서 핀란드 교수인 셀리가 이끄는 오로라팀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운명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한승희의 단짝 친구였던 김유경은 핀란드 대학의 셀리 교수 밑에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했다. 셀리 교수가 미국 대학으로 옮겨가면서 김유경도 그녀의 조교로 같이 이동하게 되었는데, 김유경은 셀리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얻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면 5년 내로 미국 대학에서 부교수가 될 수 있었다. 한편 김유경은 고등학교 때 헤어졌던 한승희가 이 학교 패션 브랜드과 정교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승희는 윤민수와 결혼하면서 윤민수의 미국 성인 ‘커리먼’을 따라 ‘승희 커리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승희에게 중국 브랜드 론칭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마음 포도원 출신 원우들에게 직장과 시민권을 줄 기회였기 때문이다. 사이러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막대한 금액의 투자가 들어오고, 따라서 한승희는 취업 비자를 원우들에게 줄 수 있었다. 한편, 셀리 교수는 꼭 성공해서 학교에서 한승희와 동급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기에, 김유경에게 이번 경쟁 프로젝트의 중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대부분의 경쟁 프로젝트가 그렇듯 지나치면 과열되고 문제가 발생한다. 김유경은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아버지 회사 마케팅팀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서를 만들었고, 급기야 대중은 잘 모르지만 북유럽에서 콘셉트가 분명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카피하기까지 했다. 이것을 알아차린 리처드 교수는 한승희에게 보고하고 운영회에 통보하려 했지만, 한승희의 부탁으로 그는 보고를 잠시 보류했다. 김유경이 이번 건에 대해서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마음 포도원 출신인 김우일의 취업 비자와 더불어 최근에 어려워진 한마음 포도원을 돕겠다고 자청했기 때문이다.


“한승희 교수는 어떻게 했을까요?” 리처드 교수는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다가 갑자기 질문했다. 세린은 말없이 리처드 교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글쎄요… 지금 서울에 계신 것으로 보아… 잘 모르겠어요.”

“맞아요! 바로 그 점이에요.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로 모르는 것과 아는 것에 대한 태도예요. 물리학은 과학이에요. 과학자로서 나는 한승희 교수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셀리와 김유경 씨의 행동은 불법입니다. 당연히 불법이고 경연대회에 나가면 안 되죠. 하지만 한승희 교수는 그들을 설득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 그들은 노출된 증거를 없애버렸죠. 결국 그 일은 팀 내부 갈등으로 번졌고, 우리는….” 리처드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세린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겼어요. 완벽하게 이겼죠. 저는 이 비리를 말하지 않았지만 중국인 칭리가 모든 것을 알게 돼 대학 본부에 보고했어요. 김유경은 학교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셀리는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은 담당자의 과열 경쟁심이라고 우겼지만 그녀도 결국 다른 학교로 옮기고 말았죠. 두 명의 한국인 제자는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서 떠났고요. 한승희 교수는 한마음 포도원의 어려움이 심각한 것을 알고 바로 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16년 동안 소식이 없었고요. 오늘 처음으로 최세린 씨에게 한 교수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들 소식이지만….”


“그럼 프로젝트는?”

“칭리가 다 챙겼어요. 오히려 잘 됐죠. 한국인 둘도 중국에서 칭리와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된 이야기예요. 김유경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잊을 만하면 듣습니다. 작년에는 이 학교에 기부금 회원이 되었다죠. 정말 그녀는 이 대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유통 회사 대주주라고 하던데요. 하여튼 그 빅뱅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궤도를 돌게 되었어요.”


“한승희 씨가 리처드 교수님과도 어려운 관계가 되었나요?”

“아니요. 여전히 저의 스승입니다. 너무나 많은 걸 배웠어요. 교수님과 같이 일하면서 죠닉스(Xonyx)라는 새 이름도 갖게 되었고, 자기다움도 알게 되었죠. 그분의 교육은 매우 독특했어요. 글쎄 뭐랄까? 브랜드를 철학에 가까운 학문으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다시 만날 것이라 확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그분을 도울 기회가 오겠죠. 그것을 인연이라고 하지 않나요?”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새 이름은 뭐죠?”

“제가 저에게 준 이름입니다. 한승희 교수가 가르쳤던 교육은 설명할 수 있지만 완전하지 못해요.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지구가 마하 87 이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죠. 이것을 인간이 지구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느낄 수도 없죠. 제가 한승희 교수를 통해서 배웠던 브랜드(Brandness), 브랜드 뷰(Brandview), 브랜드 싱크(Brandsync) 그리고 브랜드십(Brandship)은 마하 87로 태양계를 도는 그런 느낌입니다. 매우 빠르지만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지만 매우 빠른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이것이 우주의 비밀이죠. 또 물리학으로 넘어왔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다음 미팅이 있어서요.”


리처드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린도 같이 일어섰다. 리처드 교수는 옷걸이에서 겉옷을 꺼내면서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다시 세린을 보면서 말했다.

“혹시 말이죠. 한승희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 늙은 제자의 안부 전해주시고, 꼭 뵙고 싶어 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은 도울 수 있는 친구들도 많다고 이야기해주세요.”

“도울 수 있는…”

“그렇게만 말하면 아실 겁니다.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리처드 교수는 시계를 보고 약속에 늦은 것을 알고 급히 움직였다. 그리고 잠깐 세린을 보다가 재미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세린 양도 인연을 믿나요?”

“인연을 믿냐고요?”

“네, 인연이라는 운명을 믿나요?” 리처드 교수가 다시 물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날 거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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