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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디지털 브랜드

모든 것은 모든 브랜드와 연결되어 있다

by 권민
디지털 기술로 인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CES 2022에서 현대자동차는 로보틱스와 메타버스가 결합된 메타 모빌리티로 이동 경험의 영역을 확장한다고 했다. 현대 자동차는 이렇게 설명했다.


“모빌리티 기업으로서 현대자동차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사물이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미래,
즉 MoT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존의 모든 방식과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


여기서 MoT (Mobility of Things) 생태계란 로보틱스 기술 기반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과 필요한 순간을 지정하고 사물에 이동성을 부여해 도시 안에서 Mobile Connector로써 새로운 순환적 이동성을 만드는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라고 한다. 자동차가 업데이트가 되는 전자 기계가 되면서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핸드폰이 바꾼 세상보다 더 빠르고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MoT가 나오기 7년 전 2015년에는 IoT(Internet of Things)가 미래였다. 어떤 미래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사물 인터넷이 우리의 미래였고 지금은 MoT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Thing(사물)에는 모든 것(Everything),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 어떤 것(Anything) 그리고 중요한 것(Something)이 있다. 그러나 이제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으로 인해서 우리는 또 다른 I-thing을 만나게 될 것이다. I-thing은 My thing(소유물, 내 것)이 아니다. 나와 같아진 사물 혹은 사물이 된 또 다른 나를 의미한다. 지금 책상 위에 있는 나의 분신 같은 스마트폰을 보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다른 사람에게 쓰라고 빌려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거의 없다). 그 이유는 나의 정보가 들어있고, 나의 모든 관계가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자신의 핸드폰 앞자리에 +82를 넣고 국제 전화를 하면 그 전화는 나에게 울린다. 그 번호는 60억 명 중에 나에게만 걸리는 번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가진 전화번호가 주민등록번호보다도 더 중요한 나의 아이덴티티 번호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전화번호(Identity number)가 스마트 폰(thing)과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스마트폰은 나와 하나가 된 I-thing, 나의 Identity(id 자아+ entity 실체, 본체)가 되었다. 핸드폰은 이미 나의 분신이 되어 버렸고, 메타버스로 인해서 자신의 분신이 구현되는 모든 것(Everything)이 나의 중요한 것(Something)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사물과 사람의 미래다.


사물의 마음

셰익스피어만큼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잘 묘사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리어 왕>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 필요를 논하지 마세요! 가장 비참한 거지도 가장 하찮은 것에 대해 아직도 약간의 여분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을 결핍 상태로 되돌린다면, 인간은 동물에 지나지 않게 되고 인간의 삶은 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여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겠습니까?”

이 말이 사실일까? 신발장을 열어보자.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모아보자. 마케팅에서는 인간을 소비자라고 하지만 셰익스피어 말대로라면 인간은 ‘소비’ 하지 않고, 잉여의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필요한 소비가 아니라 불필요한 소유를 통해서 인간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


독일 철학자 헤겔은 인간이 잉여 소유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격은 스스로 현실을 부여하려는, 다시 말해서 외부 세계를 자기 것으로 주장하려는 몸부림이다.”

그의 말대로 풀어본다면 인간의 인격은 소유되는 대상 안에 나타나기 때문에 소유물은 인격의 또 다른 부분이다. 따라서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브랜드 개념이 없는 원시 부족을 살펴보면 사물에 관한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얼굴에 문신을 하는 브라질 카야포(Kayapo) 인디언과 목에 링을 끼는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은데벨레족(Ndebele)이 가지고 있는 사물을 보면 그것은 소비 상품이 아니라 사회화, 즉 소속감과 계층을 보여주기 위한 수집이다.

소비에서 잉여의 소유와 아이덴티티를 위한 소유 외에 또 다른 소유가 있을까?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친구가 되려는 사막여우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나에게 너는 수백, 수천 명의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한 아이일 뿐이야.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네 입장에서도 역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 너에게 있어 나도 수백, 수 천 마리의 다른 여우들과 별다를 것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고 ……”

이 대화는 모든 것(Everything),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 어떤 것(Anything) 그리고 중요한 것(Something)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물과 대화할 수 있을까? 사물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톰 행크스가 주연인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에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무인도로 표류한 톰 행크스는 윌슨이라는 배구공 브랜드와 친구가 되었다. 배구공에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물에 대해 사람은 사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실수로 배구공 윌슨과 바다에서 헤어지는 과정에서 윌슨을 향해 ‘미안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뭉클함이 느껴진다. 배구공과 이야기하는 미친 사람의 이야기가 왜 내게 감동을 주었을까? 그 이유는 나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이 교감하는 것은 진기한 일이 아니다. 소비자 행동 연구가인 러셀 벨크(Russell Belk)는 “소비자는 브랜드를 마치 살아 있는 대상인 것처럼 인간적인 특성, 즉 성격을 부여한다. 또한, 소비자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아 획득을 경험하고 소유물을 자신의 일부로 간주한다.”라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칙센트미하이와 홀턴(Csikzentmihalyi & Halton)은 어떤 대상이 자아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는(사람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에 대해 노력과 시간, 나아가 정신적 에너지를 투입하게 되는데, 우리가 투입한 시간이나 노력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 역시 바로 우리 것이기 때문에 그 대상도 우리 일부와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어떤 브랜드에 대해 애착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즉 정신적인 에너지를 투입하면 할수록 그 브랜드는 그 사용자 자아의 일부가 된다. 어떤 대상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모든 생물, 무생물의 이름을 짓고,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푸니어(Fournier) 교수는 브랜드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사람’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연구해 왔다. 푸니어 교수에 의하면 브랜드는 ‘의인화’되어, 인간이 감정을 가지는 것처럼 브랜드도 감정과 의지를 갖고 사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유되며, 소비자에게는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대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파트너로 인식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브랜드가 이처럼 의인화되는 현상을 연구해 왔다는 것은, 사람들의 브랜드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일찍이 소유물과 소유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가 자기 소유물에 대해 느끼고 관계 맺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느끼고 관계 맺는 것과 거의 같다”는 것이다. 또한 《생각의 탄생》의 저자 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이런 감정이입의 본질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입해 보면, 브랜드 마니아의 감정이입은 ‘브랜드가 되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였던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이 서로 ‘연대’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자와의 일체감을 체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실존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을 낳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이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한 고립감에 빠져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합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용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다시, 사물 인터넷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에 인터넷의 기능이 센서(Sensor)에서 Sense(감각, 의미, 느끼다, 의식, 감지하다)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사용'이 사물과의 ‘접촉’으로 변해서 관계의 감정을 기억하게 되어서 사물이 사람처럼 느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인간의 지적 취향(?)을 살펴본다면 IoT(Internet of Things)는 itself (자체 ② 스스로 ③ 자신)로 가게 될 것이다.


현대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 회사의 미래(꿈)는 [모든 사물이 제한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미래]이다. 자동차 업계의 꿈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은 더 인간적일까? 더 기계화될까? 그것을 예측할 수 없지만 좋은 증표가 있다. 핸드폰이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주고 있는가? 업데이트되는 핸드폰으로 세상이 바뀐 것처럼, 업데이트되는 자동차로 인해서 또 한 번 세상을 바뀌게 될 것이다. 아니 바뀌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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