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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an 01. 2024

천국에서 아침

2024년을 시작하며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식구의 얼굴을 보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심장박동이 멈춘 다음에 바로 누군가를 본다면?

내가 죽은 다음에 다시 보는 얼굴은 누구일까? 박물관에서 명화로 보았던 서구적인 예수님 얼굴일까?

나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봅니다.  

이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영이 된 우리는 바다 부유물처럼 공중을 떠다니고 다닐까요?

모두가 흰색 옷만 입고 다닌다면 … 흑백영화 보는 기분일 것 같은데 … 이 땅과 아주 다를까요?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하면서 이 땅에 있는 것들을 예로 사용하셨습니다. 

겨자씨, 씨앗, 농부 등등 그래서 저는 천국은 이 땅과 비슷할 것 같다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천국이 다가올 미래의 시공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다는 것은 저의 상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7:21, 새번역]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성경 주석을 찾아보니깐 [너희 가운데] 혹은 [너희 마음에]라는 의미는 심리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재적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이미 우리에게 있고, 우리는 그 천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실체입니다,

천국이 이미 이 땅에 도래했다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2:28, 새번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면, 그리고 이곳에 있다면 나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천국을 살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살 것인가?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죽고 나서 보는 다른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 내가 자고 일어나서 보는 세상이 천국입니다.


예수님 재림 이후 첫날, 천국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식할까요? 

우리 마음에 충만함으로 가득 차서 마냥 즐거운 생활일까요?

아니면 모슬렘 국가처럼 하루에 5번씩 사이렌을 울려 하나님 보좌 앞쪽으로 경배를 드려야 할까? 

지금처럼 하나님을 계속 잊으면서 살지는 않겠죠?

그건 그렇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국이 이곳에 있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살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살 수 있습니다. 성경 논리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실천과 경험이 어렵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되는데 …

[마6:25-27, 새번역]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릴 수 있느냐?


예수님도 이 땅에서 천국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 천국의 삶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천국의 삶을 보여주었죠. 

기도하고,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일을 합니다.


저는 영국 여행을 하다가 여러 차례 교통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한국 생활의 습관으로 항상 좌측을 봅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우측에서 달려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있어서 횡단보도 앞 도로에는 큼지막한 글자로 look Right와 화살표 표시가 있죠. 

나는 영국에 있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했는데 저는 여전히 이 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천국을 보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보아야 하는데 자꾸 내가 살았던 세상인 왼쪽을 보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저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똑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롬7:22-25, 새번역]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전에 가족여행을  베트남 풀빌라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다. 

손님이 없어서 업그레이드된 횡재였습니다. 방이 4개이고 수영장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이 땅에서는 살 수 없을 그런 풀빌라였습니다.

베트남 풀빌라가 너무 좋지만, 천국처럼 느끼는 곳은 베트남입니다. 

베트남에서 삶이 시작하는 순간에 저의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죠. 언어, 일자리, 관계 등 …. 

이 땅의 삶은 그래서 저에게 베트남 풀빌라일 뿐입니다. 

(저는 이 땅의 삶도 하늘에서 받은 100년 유급휴가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이 땅에서는 나그네 삶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그리고 나그네처럼 살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돈과 소유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천국을 누릴까?

예수님은 나병환자, 중풍 병자, 장님, 손이 마비된 사람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깨끗함을 받으라, 눈을 떠라, 손을 내밀라, 일어서라.

그들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 말씀을 은유와 과장이 아니라 그대로 믿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갑자기 흰옷을 입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염려하지 않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

우리가 말씀으로 읽기만 했던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행동한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지금 이곳, 말씀을 누리고 경험하는 것이 천국 안에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계속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024년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이 정한 시간입니다. 지구는 2023년과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공휴일 뿐입니다. 어제 보았던 태양이 지금 떠오르고 있습니다.

천국도 이렇게 오지 않을까요? 눈떠보니 2024년처럼 눈떠보니 천국.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내가 죽어서 맞이하거나 주님이 오셔서 맞이하거나

저는 오늘은 천국에서 살고 내일은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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