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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an 01. 2024

[아] 다르고 [어]다른 신앙

기복신앙

제가 경계하고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그리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복신앙]과 [번영 신앙]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 욕망이 있는 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 안에 나를 영화롭게 하는 죄성의 경향이 있습니다.

기복신앙에 언제나 빠질 가능성이 있으며 지금도 유혹에 자극받습니다.

경험하고 돌이켜 보니 기복신앙은 자기 숭배의 변태 같은 기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복 & 번영 신앙이 겉모습으로는 신실해  보여서 좀처럼 구별이 어렵습니다.


저에게도 내가 나를 속인 신앙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2만 번 기도 응답받은 조지 뮬러 기도 노트에 감동하여서  기도 노트를 만들어 수년 동안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 노트 안에서는 평균 60여 개의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응답받은 것은 지우고, 다시 숫자를 맞추는 작업으로 어떤 기도는 길게는 3년, 또 어떤 기도는 3개월 동안 기도해서 응답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 제목은 매우 구체적이고 신앙적으로 보입니다.


아주 디테일한 기도 제목을 소개한다면 [딸의 미래 남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을 위한 중보기도]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도 중보 기도하는 것이 나의 영성이라고 착각했고,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은근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자랑스러웠고 이런 제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40~60개의 기도 제목을 붙들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기도합니다. 

기도시간은 평균 3시간에서 4시간이 걸립니다. 

이렇게 기도를 마치면 운동한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뿌듯했습니다. 

주변에 저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없고 이렇게 조지 뮬러 기도 노트를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나의 기도는 달리기 선수들이 뛰다가 몸의 한계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쾌락을 느끼는 것처럼 짜릿하고 흥분되었습니다.


100킬로 지방 덩어리 몸을 가진 사람이 30킬로 감량하고 몸을 만들어서 거울을 보고 스스로 기뻐합니다.결국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 나르시시즘까지 가는 것처럼, 저는 기도 제목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과 기도를 놓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일종의 기도 노트는  나의 영성 커리어 노트였습니다.


 어느 날 이런 제가 가증스럽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기복/번영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에게서 변형된 바리새파의 자기만족 신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잘못 적용하여 정말로 수년을 헛된 기도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눅18:1-8, 새번역]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들었던 이 예화의 주제는

1)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보다 선하시다. 끝까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2) 하나님께 [더 더 더 더] 간청하라. 기도로 보좌를 흔들어라.

3)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면 너의 기도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 3개 중에 하나로 목회자와 부흥사들은 설교했습니다. 

부흥사(예전에는 있었습니다.)가 와서 즐겨 사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 신앙의 확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 책도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기도]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 [2만 번 응답 기도] 등. 기독교 서점에서 기도를 치면 대부분 이런 후킹 제목들입니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이상한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도 책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추가하여 기도에 기도를 더하면서 기도의 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조지 뮬러를 기도 경쟁자로 삼고 싶었죠.

예수님께서도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이라는 예화의 목적을 기도 방법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으로 설명한 하나님과 택하신 백성에서 [권리 / 원한]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ἐκδίκησις, εως, ἡ

ĕkdikēsis에크디케시스

I. 복수, 처벌, 형벌, 롬12:19 고후7:11 히10:30.

1.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눅21:22.

2. [악행자들에 대하여] 벧전2:14.

3. [기타] 눅18:7,8 행7:24 살후1:8


나의 기도제목을 이루는 것들은 [택하신 백성]이 빼앗긴 권리/원한인가? 

아니면 이 땅에서 내가 누리고 싶은 특권일까? 

저에게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택한 백성중에 한 명이라면 나는 나의 권리를 누구에게 빼앗기고 왜 빼앗김을 당했을까? 

성도가 빼앗기는 권리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파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마 16: 5-8)

그러자 제자들은 빵을 챙기지 않았기에 주님께서 빵을 챙기지 않은 것을 꾸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은 것입니다. 어떻게 바리세파 누룩과 챙기지 못한 빵이 연관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동안 불의한 재판장 예화에서 [택하신 백성의 권리/원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성도이기에 빼앗김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3:19, 새번역] 누구든지 하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뿌린 씨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교인입니다. 사탄은 [택하신 백성의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인데 그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아마 많은 교인(기독교인 아니라)들은 사탄이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간다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빼앗긴 권리/원한이라고 할 수 있는 또 그 무엇을 빼앗아 갈까요?

 예배할 권리, 찬양할 권리, 기뻐할 권리, 하나님을 사랑할 권리 ….이런 것이 의무일까요? 권리일까요?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의무일까요? 권리일까요? 내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의무일까요? 권리일까요? [사랑]의 함량에 따라서 그 맛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된 자가 하나님을 기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자녀의 권리이죠.  사탄은 이것을 빼앗아 갑니다. 


세상의 [부와 권세]는 사탄이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절하면 받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과 거래를 요청한 것을 기억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탄 숭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세상의 부와 권세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빼앗아 던지는데 우리는 사탄이 줄 수 있는 것을 계속 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택하신 백성의 권리/원한],  그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의 권리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은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은혜이며 특권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택하신 백성이 누려야 할 권리인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리고 주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성적으로(?)는 이런 것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신앙적으로는(?) 나에게 이런 것이 없는 것을 의아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기도, 말씀, 예배 … 이런 것에 기쁨이 없다면, 빼앗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것은 [택하신 백성의 권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 노트에 쓰인 수많은 기도 제목을 모두 버렸습니다. 내가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가 부둥켜 잡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죠.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여 주시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예수님이 갈망했던 이 소망이 내게 없는 것, 바로 그것이 택함을 받은 내가 빼앗긴 권리(나의 원한)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나의 권리입니다. 지금 그 마음이 내게 없는 것은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이 빼앗긴 권리를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악에서 구원하소서]


바울 사도는 택하신 백성의 원한에 대해서 이렇게 중보합니다. 

[엡1:16-19, 새번역]
16 여러분을 두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내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19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더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에 대해서 갈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영적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택하신 자들의 원한입니다.


저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뻐할 권리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권리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권리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성도 됨의 권리입니다. 세상과 사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 

https://www.wonch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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