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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an 16. 2024

믿음이란 무엇일까?

정의할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정의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해서 나의 언어로 정의해 보세요.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내가 정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 통념으로 인식합니다.

아마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도 사전 혹은 사람 관계에서 경험한 감정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설명할 수 있지만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 차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애물단지]는 어떤 뜻일까요? ‘버리지도 못하고 갖고 있기도 불편한 것‘ 혹은 ‘가지고 있으면 짐만 되는데 버릴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 정의는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물건이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실체는 [애(자식)를 묻은 단지]라는 뜻으로 [관]입니다. 

옛날에는 신생아가 죽으면 관을 짜지 않고 작은 항아리에 넣어 묻었죠. 

그런데 아이를 처음 낳은 엄마는 그 아이를 땅에 묻지 못하고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이 단어의 아픈 어원은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믿음]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믿음을 한 줄로 정의해 보십시오.

정의가 어렵다면 그리고 믿음에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 믿음은 딱 그 정도일 것입니다.

저는 믿음이란 [대안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제가 한 것은 아니고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입니다.

(출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정의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에 대해서 믿음 외에 다른 조건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시거나 사람의 믿음으로 훈계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품성과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만 보셨습니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내가 정의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을 예수님은 이방인의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한 줄로 쓴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칭찬했던 믿음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믿음이 무엇인지 사람을 통해서 알려주었습니다.


먼저 애물단지와 같은 단어 하나를 소개하였습니다.



תֵּבָה tbâh 테바

단어 뜻은

I. 궤, 방주.

1. [노아가 만든] 방주, 창 6:14 이하

2. [갓난 모세를 두었던] 상자, 출 2:5.



테바란 상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물 위에 뜬 이런 상태라고 보여주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테바를 우리는 방주 方舟라고 해석했습니다.

방方은 1. (모방/본뜰 방) 2. 모, 네모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배를 모방한 상자라고 정의할 수 있죠.

방주는 배는 아닙니다. 닻, 돛 그리고 키가 없는 네모 상자입니다.

모세가 누워있는 테바도 상자입니다.

노아와 모세의 공통점은 자신이 상자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테바 안에서 믿음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맡기고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마음이 합했다는 다윗은 시편을 통해서 믿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37:5, 새 번역]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저의 성향상 도박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저에게 도박은 질 수 있다는 확률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기질은 신앙까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언제나 플랜 B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플랜 C, D, E를 준비하고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 최악의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왜 나는 기도하지 않고 나의 플랜을 준비할까?

가요 중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비겁한 변명처럼, 기도 응답 거절로 인해서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플랜 B를 준비합니다.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안 해주실 경우를 대비한 나의 계획은 사탄적인 자기 신뢰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죠.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 새 번역]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예수님은 기본 중의 기본을 말씀하셨죠. [믿어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플랜 B를 준비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런 플랜 B를 버린 이후에 믿음은 [대안이 없는 것]이라고 정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무동력 배, 테바(상자)를 타고 있는 노아의 결심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테바(상자) 믿음을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었습니다.

[마 26:39, 새 번역]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이제 저는 플랜 B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을 기뻐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결심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은연중에 언제나 플랜 B를 만지작 거립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플랜 B 방정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믿음 따로 생각 따로 … 저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도 타락하기 전에 자신의 아버지, 다윗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잠 3:5-6, 새 번역]
5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6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주님만 의지하는 것]

말은 쉽습니다. 말은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무 위태하게 우리를 다루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항상 불안해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위험한 분입니다. 내 생각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환경으로 인도합니다. 

이런 인간을 대하는 신의 고약한 취미일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믿고 있는 믿음이 가짜라는 것과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갈대 상자에 누워있는 모세는 딱히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만, 노아는 1년 동안 흔들리는 방주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무엇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기다리면서 기도했겠죠.

우리가 인생의 배에서 자기 나름대로 배의 동력 혹은 키를 만들면 주님은 그것이 필요 없게 만듭니다. 

다들 경험하셨겠죠?


예수님의 제자가 맞이할 테바(?)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막4:38-39, 새번역]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 안에 있지만 우리는 물 위에 테바(상자) 같은 환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그리고 바울의 하나님이라면 그들이 겪었던 테바 인생을 경험할 것입니다.

저는 믿음의 상자 안에서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동력, 닻, 돛 그리고 키 같은 대안이 없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의지해야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대로 믿는 것일까요?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31:1-3, 새번역]
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2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3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버려야 합니다. 교만을

돌아서야 합니다. 오만한 길을

비전과 사역에 대해서 의지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행하시는 것만 기다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윈-윈( win-win)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버려야만 대안이 없어집니다.

예수님 외에 대안이 없는 삶. 그것이 테바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요 3:8, 새 번역]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살면서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습니까?
 내 계획대로 성공한 것이 있습니까?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을 상상한 적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없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이끄시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제 인생은 물 위에 떠 있는 상자 같지만, 저는 테바에서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주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 

https://www.wonch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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